2 나의 글

서양 문학 속의 호모 아만스. 서문

필자 (匹子) 2021. 4. 27. 09:18

“산문작품은 낯선 지역으로 들어서는 통로이며, 자신을 낯설게 반추할 수 있는 거울이다.” (필자)

“’이 배는 오 분 후에 가라앉는다.‘ 신드바드의 이러한 외침은 먼 훗날 잠수함을 발명하게 했다.” (필자)

 

1. 친애하는 J, 본서는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심리학』(울력, 2017)의 속편으로서 자료집 내지 사례집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통상적인 사례집과는 좀 다릅니다. 왜냐하면 필자는 인간 삶의 제반 사회심리적인 갈등, 개개인의 고뇌와 해원 등을 무엇보다도 서양의 문학작품 속에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서양문학에 나타난 사랑과 성에관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정리하였습니다. 이야기들은 당신을 감동시키거나, 당신으로 하여금 타자의 어떤 심리적 하자를 간파하게 할 것입니다. 이로써 새롭게 간행되는 두 번째 책,『서양문학 속의 호모 아만스. 스토리텔링 치료.』는 첫 번째 책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2. 첫 번째의 책,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심리학』은 프로이트, 아들러, 융, 라이히, 블로흐, 라캉 그리고 버틀러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심리학을 고찰하면서, 한국 사회의 관습, 도덕 그리고 법 등과 관련되는 현대인들의 삶 내지 사랑의 패턴을 탐색하였습니다. 이로써 필자는 호모 아만스의 개념으로써 처음부터 인종, 성 그리고 나이를 구분하지 않는 평등한 인간형을 제시하려 하였습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유교주의의 질서에 근거한 가부장적 씨족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장단점이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이 장점이라면, 타인과 이방인에게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은 단점입니다. 이로 인하여 생겨나는 성향은 한편으로는 타인의 행복에 대한 질투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싱글, 성소수자, 성노동자 그리고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배타적 거부감입니다. 이러한 사항을 비판적으로 파악하는 일이야 말로 첫 번째 책의 핵심적 관건이었습니다.

 

3.『서양문학 속의 호모 아만스. 스토리텔링 치료.』는 수월하게 읽혀지며, 그 자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 책의 내용을 별도로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에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짤막한 논평을 삽입했습니다. 본서는 13개의 소제목들로 나누어졌습니다. 제 1강의: 치료의 매개체로서의 이야기들, 제 2강의: 사랑과 성, 얽힘과 섞임, 제 3강의: 콤플렉스 혹은 타부, 제 4강의: 가상과 본질로서의 사랑, 제 5강의: 성과 결혼 그리고 계층, 제 6강의: 가족 치료의 난제들, 제 7강의: 성도착, 또 다른 성욕, 제 8강의: 불가능한 사랑과 아웃사이더, 제 9강의: 가부장 사회 속의 여성, 제 10강의: 결혼이데올로기와 자아정체성, 제 11강의: 유럽 시민사회와 간통, 제 12강의: 사랑과 죽음 그리고 죽임, 제 13강의: 사회주의 사회와 성. 친애하는 J, 필자는 이러한 분류를 토대로 문학 텍스트들을 선별하여 집필에 임했습니다.

 

4. 본서에 기술된 문학적 범례들은 우리의 개별적 문제점을 해결하고 상처 입은 자아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서에 채택된 문학 작품들은 개별적 상황에 대한 범례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필자는 문학작품의 기능, 즉 상상력의 극대화를 강조하려고 합니다. 혹자는 문학을 주어진 현실과는 다른 영역으로 치부합니다. 물론 문학작품 속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가상이라고 속단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작품 속에는 “지금 여기”의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타자의 삶에 관한 뜬금없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고 매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답거나 끔찍한 과거를 기억할 뿐 아니라, 때로는 추악한 미래를 떠올리고 불안해하기도 하고 찬란한 미래를 갈구하기도 합니다,

 

산문작품 한 권이 이따금 우리에게 애틋한 감동을 전해주는 까닭은 타자의 이야기가 우리 자신의 불안을 달래주고, 심리적 아픔을 달래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문학 작품 속에 담긴 여러 범례는 독서하는 우리의 내면적 아픈 곳을 건드립니다. 이로써 스토리텔링은 어떤 치유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셈이지요. 놀라운 것은 독자들이 처음부터 문학 작품 속의 현실을 가상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자들은 주어진 이야기가 자신과 무관하지만 일부 자신의 문제점을 전-의식적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자신의 심리적 상흔과 접목될 수 있음을 처음부터 숙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체험과 유사한 삶의 이야기는 어떠한 저항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5.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떤 낯선 현실로 들어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통로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것은 나아가 다른 공간에서 역으로 자기 자신을 낯설게 성찰할 수 있는 거울처럼 작용합니다. 독자에게는 처음부터 “지금 여기”라는 제한된 현실을 뛰어넘어 타인의 삶 속으로 뛰어든 다음에, 다시 빠져나올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때 작동되는 공감의 능력은 어떤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상상해내는 행위와 연동되어 있습니다. 물론 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처해 있는 “지금 여기”의 삶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게다가 작품 수용에 있어서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 역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학적 오해도 이해 행위의 일부이며, 드물게는 어떤 창조적 오해가 더욱 놀라운 기능을 발휘합니다. 요약하건대 서양문학을 대한 우리가 느끼는 거리감, 즉 시간적 공간적 차이점은 아마도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서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습니다.

 

6.필자는 가급적이면 어떠한 “선입견Vor-Urteil”을 내세우지 않은 채 서양문학 속의 호모 아만스를 서술하려고 하였습니다. 필자의 이러한 조심스러운 태도는 어쩌면 천일야화의 이야기꾼, 세헤라자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샤리야르 왕과 같은 특정인의 병적인 징후를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으며, 가급적이면 이야기 전달자의 역할에 충실하려 합니다. 친애하는 J, 흔히 삶에서는 하나의 유일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서울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니까요. 

 

그렇기에 우리는 평생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점과 씨름하다가, 스스로 해결책을 발견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에 비하면 제 삼자로서의 카운슬러의 직접적 조언은 그다지 커다란 도움이 되지는 못하지요. 삶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깨달음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워나가는 일이 아닐까요? 통합적 심리학의 선구자, 프리츠 펄스Fritz Perls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파고들면, 그것의 위치를 알려고 애를 쓰면, 인성은 저절로 변화된다.” 이에 대해 필자가 첨부할 사항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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