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문학이란 무엇인가?

필자 (匹子) 2021. 6. 18. 09:26

김훈: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필자: 문학이 하찮은 것이라는 그의 고백은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 그렇지만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자그마한 것이지만, 완전히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갈망과 해원을 기술하는 일이다. 또한 자기 성찰과 기다림이 문학 속에는 있다. 인간의 갈망과 현실적 가능성 - 문학작품은 김훈의 말대로 실제 삶만큼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무작정 폐기처분할 수는 없을 정도로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김훈: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필자: 틀린 말씀이 아니다. 문학은 삶에 있어서 부차적이다. 말과 글은 행위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견유문학론」에서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의 생계에 보탬이 되는 생활인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의 심리를 이해해주는 예술가를 더 애호하곤 한다.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은 가장 하찮은 문학에 깊이 공감하고, 시인과 작가를 흠모하기도 하고, 그들을 사랑하기도 한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질까? 문학의 흡인력 때문일까? 문학 속에 도사린 이러한 작은 흡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주어진 현실은 얼마나 암담하고 황량할까?

 

김훈: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하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필자: 주어진 현실에서는 언제나 칼이 펜보다 강하다. 그런데 이성을 지닌 인간은 펜이 칼보다 강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칼을 휘두르고 살육과 만행을 저지른 자는 역사에 언급되지 않지만, 이를 방어한 무인은 존경받고, 펜으로 무언가를 해결한 지식인은 역사에 언급되곤 한다. 다시 말해 후세 사람들은 말과 글로써 시대를 구원한 사람을 기억하고, 깊은 마음으로 존경하는 것이다.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해서, 정의로움, 역사, 참말과 올바른 글은 불필요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지구 어디선가에서 돈 없고 힘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갈구하고 어떤 구원을 바라고 있다. 그들의 행위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우리가 감히 함부로 매도할 수 있는가? 노벨상에는 어째서 “재벌 상”이 없고, 문학상이 존재하는가? 김훈의 말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의 발언 속에는 “자기 비하에 근거하는 거짓된 실용주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