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 44

서로박: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 (3)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자유로운 인디언으로 살려는가, 아니면 프랑스 노예로 살려는가?:상기한 토론을 통해서 라옹탕은 유럽 사회가 어떻게 잘못 발전해 왔는가를 은근히 지적합니다. 아다리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충고를 받아들여, 휴런 사람이 되게. 우리가 처한 현실적 정황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이제 모조리 알 것 같네. 내 육체의 주인은 바로 나야. 그래서 나는 마음에 드는 것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네. 나라는 존재는 내 민족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사람이야.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아. 내가 고개를 숙이고 굴복하는 것은 오로지 거대한 정신일 뿐이야. 이에 비해 자네는 육체와 정신을 그대의 왕에게 송두리째 바치고 있네. 그대의 부왕은 그대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

32 근대불문헌 2022.12.17

서로박: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 (2)

(앞에서 계속됩니다.) 6. 라옹탕의 삶 (4):1690년 그리고 1692년에 라옹탕은 루이 드 부아드Louis de Buade의 특별 사절단으로 프랑스로 여행합니다. 이때 그는 가문의 유산을 돌려받기 위하여 당국에 청원서를 제출합니다. 그밖에 라옹탕은 왕궁을 직접 방문하여, 식민지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 군사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의 두 가지 시도는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물론 라옹탕은 1692년 중위로 승진하여, 영국군으로부터 뉴펀들랜드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의 안전을 돌보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배속된 상관과 여러 번 마찰을 겪습니다. 도저히 자신의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그는 1693년 12월에 당국으로부터 허가도 받지 않은 채 프랑스로 되..

32 근대불문헌 2022.12.17

서로박: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 (1)

1. 비-국가주의의 인디언 유토피아: 라옹탕의 유토피아는 “고결한 야생bon Sauvage”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 사회와는 전혀 다른, 신대륙의 문화와 관련되는 것으로서, 어쩌면 인디언 문화를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고결한 야생”은 이른바 “수치스러운 서구문명”과 정반대의 사항으로 이해됩니다. 실제로 유토피아의 상은 시대 비판을 간접적으로, 우회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라옹탕의 유토피아에서 17세기 유럽의 절대 왕정의 사회에 대한, 우회적이지만 노골적 비판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시대 비판과 관련하여 17세기 프랑스에서 출현한 라옹탕의 문학 유토피아는 국가주의의 모델 그리고 비국가주의의 모델에 관한 분명한 선을 긋게 해줍니다. 왜..

32 근대불문헌 2022.12.17

콜럼버스와 상상력 (2)

라스카사스는 신대륙의 만행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범선을 타고, 카를 5세를 만나려고 유럽으로 떠납니다. 황제는 여러 나라를 순방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카를 5세를 만날 수 있게 된 라스카사스는 알현 시에 원주민의 신체구조가 백인에 비해 연약하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이로써 원주민들이 힘이 없어서 강제노동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알리며, 흑인 노예들을 동원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하였습니다. 그의 말은 씨가 됩니다. 뒤이어 에스파냐 정복자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흑인을 “사냥”하기 시작했습니다.. 라스카사스의 후회 “흑인의 권리는 원주민의 권리만큼 소중하다.” - 미국에서 흑인들이 살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때부터 행해진 흑인 노예 파견 ..

12 세계 문화 2022.12.16

콜럼버스와 상상력 (1)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451 - 1506) 의 초상화. 그는 찬란한 땅 인도를 발견하기 위해서 대서양을 횡단하였습니다. 인도는 동쪽에 위치하는 지역이었으나, 사라센 제국이 지나가는 사람을 살해하기 때문에 육로로는 갈 수 없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처음부터 지구는 둥글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플루타르코스의 말을 신봉하였습니다. "만약 달이 지구의 거울이라면 그 어두운 부분은 틀림없이 발견되지 않은 어떤 대륙을 보여주고 있다."(Plutarch). 그는 신대륙을 발견하였지만, 죽을 때까지 그곳이 인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날 "서인도제도"라는 이름은 콜럼버스의 착각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에는 원래 Non plus ultra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

12 세계 문화 2022.12.16

가족 중심으로부터 사회 중심으로

나의 외국인 친구 K에게 1. 친애하는 K.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서로 만난 지 이미 몇 달이 흘렀지만, 가끔 형이 생각납니다. 형을 생각하며, 나는 그냥 평소 생각을 전하려고 합니다. 언젠가 당신은 지구상에서 한국인만큼 인정 많은 인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거의 타당한 말씀입니다. 한국의 부모 자식 사이의 정은 대체로 매우 두텁습니다. 한국인들은 노래 부르기를 즐기며, 특히 노인들을 공경할 줄 압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횃불을 피워놓고 들판에서 노래 부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늙은이들의 경우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유럽인들은 매사에 솔직하나, 인간미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당신은 한국의 삶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지요. 언젠가 공항에서 당신은 말했습니다. 대부분..

2 나의 글 2022.12.16

박설호: (4) 캄파넬라의 옥중 시편

(앞에서 계속됩니다.) 너: 마지막으로 한 편의 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의 시는 캄파넬라의 대표작인가요? 나: 네, 「나라를 지닌 자가 왕이 아니라,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왕이다. Non è re chi ha regno, ma chi sa reggere」를 대표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권력의 본질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붓과 물감을 가진 자가 괴발개발 그림 그려 벽과 먹지 더럽힌다면, 그는 화가가 아니리. 설령 먹, 펜, 필통이 없더라도, 그림 그릴 능력을 지니면 그가 참다운 화가이리라. 삭발한 머리, 성의가 성직자를 만들지 않듯이 거대한 왕국과 땅을 지닌 자는 왕이라 할 수 없지 예수와 같이 천한 노예 출신이라도 마치 혹성, 팔라스와 화성처럼 그는 차제에 반드시 왕이 되겠지. ..

22 외국시 2022.12.15

박설호: (3) 캄파넬라의 옥중 시편

(앞에서 계속됩니다.) 너: 이에 관해서는 오랜 대화가 필요할 것 같군요, 이번에는 시집에 관해서 언급하기로 합시다. 그렇게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데, 어떻게 시집이 간행될 수 있었는지요? 제가 알기로는 1622년에 그의 시집이 프랑크푸르트에서 간행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시기에 그는 나폴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지 않았나요? 나: 네. 시집이 간행된 데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1612년은 캄파넬라가 나폴리 교도소에 수감된 지 12년 째 되는 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독일의 인문학자이며 법률가인 토비아스 아다미 (Tobias Adami, 1581 – 1643)는 자신의 제자와 함께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는 작센의 귀족이며 나중에 군주가 되는 제자, 루돌프 폰 뷔르나우와 함께 그리스, 예루살렘 그리고..

22 외국시 2022.12.15

박설호: (2) 캄파넬라의 옥중 시편

나: 일단 캄파넬라의 시 한 편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제목은 「침대를 불지르고 미쳐버린...Di se stesso, quando, ecc...」이라는 작품입니다. “카이사르를 피해, 그리스와 리비아로 자유를 찾아 떠났다, 독재자의 적 카토는. 도저히 달랠 수 없는 욕망으로 자청해서 죽음 속으로 뛰어들었다. 망각한 권력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는 걸 영리한 한니발이 알아차렸을 때, 그는 독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 클레오파트라 역시 뱀을 움켜쥐었다. 경건한 마카비도 그렇게 행동했다, 브루투스와 솔론도 일순 광증에 사로잡혔고, 다윗 역시, 가트 지역의 왕에 대한 두려움으로. 예언자 요나가 어디론가 잠적한 뒤에 다시 돌아왔듯이, 나 또한 성스러운 마음으로 희생물을 바쳤다, 방화를 저지름으로써.“ (필..

22 외국시 2022.12.14

서로박: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토마스 아퀴나스 (1225 - 1274)의 "신학대전 Summa theologia"는 1266년부터 1273년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약 200년 후에야 비로소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 부분적으로 간행되었다. 토마스의 방대한 문헌 속에는 하나의 폐쇄된 이론으로서의 미학적 테마가 특별히 할애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아름다움의 본질 species sive pulchritudo”에 관한 문제는 그의 사고의 핵을 이루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테면 특히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스의 저작물 「신들의 이름에 관하여 Ρερι ϑειόν ονοματον」 (520년 경)의 주해서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밝혔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아름다움과 선은 동일하다. 선이란 오직 추구의 대상으로서, 추구의 대상..

24 신학이론 202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