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외국시

박설호: (2) 캄파넬라의 옥중 시편

필자 (匹子) 2022. 12. 14. 16:19

나: 일단 캄파넬라의 시 한 편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제목은 「침대를 불지르고 미쳐버린...Di se stesso, quando, ecc...」이라는 작품입니다.

 

“카이사르를 피해, 그리스와 리비아로

자유를 찾아 떠났다, 독재자의 적 카토는.

도저히 달랠 수 없는 욕망으로

자청해서 죽음 속으로 뛰어들었다.

 

망각한 권력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는 걸

영리한 한니발이 알아차렸을 때, 그는

독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

클레오파트라 역시 뱀을 움켜쥐었다.

 

경건한 마카비도 그렇게 행동했다,

브루투스와 솔론도 일순 광증에 사로잡혔고,

다윗 역시, 가트 지역의 왕에 대한 두려움으로.

 

예언자 요나가 어디론가 잠적한 뒤에

다시 돌아왔듯이, 나 또한 성스러운 마음으로

희생물을 바쳤다, 방화를 저지름으로써.“ (필자 역)

 

(D’Italia in Grecia ed in Libia scorse,/ bramando libertà, Catone il giusto;/ né potendo saziarsene a suo gusto,/ sino alle morte volontariar corse. // E’ ’l sagace Annibàl, quando s’accorse/ che schifar non potea l’imperio augusto,/ l’anima col velen svelse dal busto,/ Onde anche Cleopatra il serpe morse.// Fece il medesemo un santo Maccabeo;/ Bruto e Solon furor finto coperse,/ e Davide, temendo il re geteo.// Però, là dove Iona sommerse/ trovandosi, l’Astratto, quel che feo/ al santo Senno in sacrificio offerse.)

 

: 1602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는 이 소네트에는 여덟 명의 실존 인물이 나오는군요.

: 그렇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살로써 생을 마감했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미친 행동을 저질렀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카토는 카이사르와 대결하다가 결국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단도로 자살하였습니다. 한니발은 기원전 183년에 로마와의 전투에서 패하자, 리비사 성에서 독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 클레오파트라 역시 자신의 뱀에 젖을 물어뜯게 하여 자결하였지요?

나: 네. 유다 마카비는 시리아의 독재 권력에 대항하여 7년 동안 피비린내 나게 싸우다가, 기원전 160년경에 자신의 군대가 패배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브루투스와 솔론은 막강한 권력의 위협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광증에 사로잡힌 척 하였습니다. 왕 사울이 다윗의 모든 능력을 시기하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을 때, 다윗은 기지를 발휘하여 미친 척 함으로써 살아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언자 요나는 하나님의 분노를 달게 받기 위해서 선원들로 하여금 자신을 바다에 던지게 조처합니다.

 

: 그런데 시 제목은 끊겨 있습니다. 원 제목은 다음과 같은 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침대를 불 지르고 미치게 되었을 때, 어느 희극작가는 ‘미친 척 하는 행동은 영리하다’고 말했는데, 만민법의 법 규정에 의하면 미친 자는 판단 능력이 없다고 하므로, 이 소네트에서 언급되는 진행 과정은 잘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캄파넬라가 작품의 제목을 의도적으로 축약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그건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입니다. 고문이라는 극한의 형벌을 견디면서, 캄파넬라는 생각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을까? 하고 말입니다. 결국 캄파넬라는 끔찍한 고문으로 초죽음이 되어 감방으로 돌아옵니다. 자신이 교수형 당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 그런데 반역죄와 이단 죄는 당시 유럽에서 중벌에 처하는 범죄였지요?

: 그렇습니다. 캄파넬라는 법학의 지식을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만민법 ius gentium”에는 광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단자로 처형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날 밤 초죽음이 되어 돌아온 캄파넬라는 몰래 밀짚을 구해서 자신의 독방에 불을 지릅니다. 불이 나서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면, 할 수 없는 일이고, 만약 살아남는다면, 자신은 광인으로 간주되어 처형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 모골이 송연해지는군요. 캄파넬라는 권력의 잔악한 폭력에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미친 척해야 했을까요?

: 그럴지 모릅니다. 방화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 후에도 캄파넬라는 다시 고문당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방화사건은 14개월 후에 처형을 모면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합니다. 종신형 선고를 받았으니까요.

너: 캄파넬라는 과연 자살하려고 불을 질렀을까요, 아니면 미친 척 하려고 불 지른 것일까요?

 

: 캄파넬라는 깊은 신앙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배움에 대한 애틋한 열망 때문에 도미니크 사원에 들어갔지만, 교단의 철저한 규정에 힘들어 했으며, 이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수사들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곤 하였습니다. 사실 로마 가톨릭의 계율에 의하면 자살은 그 자체 절대로 행해져서는 안 되는 반윤리적 행위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신국 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실 기독교 역사를 고찰할 때 미덕을 지닌 자치고 자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 캄파넬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러한 견해를 반박하고 싶었을까요?

: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예언자 요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선원으로 하여금 바다에 자신의 몸을 던지게 한 사람이 아닙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자살은 적어도 캄파넬라에게는 하나의 이성적인 선택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밖에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제 3권 2장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즉 “특정한 상황 속에서 미친 척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영특하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미친 사람은 노예로 끌려가지 않아도 되고, 갈레 선에서 뼈 빠지게 노를 젓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너: 어쨌든 캄파넬라는 방화사건을 계기로 죽음을 모면했습니다.

: 이탈리아 당국은 그에게서 어떤 혐의를 계속 추궁하고 싶었습니다. 캄파넬라는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시의 제목을 축약했는지 모릅니다. 만약 자신이 쓴 글이 당국에 의해서 압수되는 날이면, 스스로 저지른 미친 행세는 들통 날 테니까 말입니다.

: 마지막 연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해줍니다. “나 또한 성스러운 마음으로/ 희생물을 바쳤다, 방화를 저지름으로써.” 캄파넬라는 광인 행세를 하는 희생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끝까지 살기를 기원했을까요? 차라리 일찍 죽는 게 더 나았다고 자책하는 것일까요?

나: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종신형의 형벌이 교수형보다도 더 잔악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희생자로서의 시인 캄파넬라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생존을 위하여 교활한 궁여지책을 활용하는 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의 삶을 망쳐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