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신학이론

서로박: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필자 (匹子) 2022. 12. 14. 16:04

토마스 아퀴나스 (1225 - 1274)의 "신학대전 Summa theologia"는 1266년부터 1273년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약 200년 후에야 비로소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 부분적으로 간행되었다. 토마스의 방대한 문헌 속에는 하나의 폐쇄된 이론으로서의 미학적 테마가 특별히 할애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아름다움의 본질 species sive pulchritudo”에 관한 문제는 그의 사고의 핵을 이루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테면 특히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스의 저작물 「신들의 이름에 관하여 Ρερι ϑειόν ονοματον」 (520년 경)의 주해서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밝혔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아름다움과 선은 동일하다. 선이란 오직 추구의 대상으로서, 추구의 대상인 사물을 소유하게 되면 휴지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하면 아름다움은 그냥 아름다운 대상을 보는 순간 흡족하고 만족하게 만드는 무엇이다. “아름다움이란 고찰되는 가운데 만족되는 것”으로 명명된다. 따라서 아름다움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미적인 편안함을 부여하는 특정한 영혼과 자연 등을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토마스는 “직관” 그리고 “인지” 등의 개념으로써 무조건 감각적 행위만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오관 (주로 시각과 청각)이란 이성과 동일하고, “인지”란 주어진 대상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란 -선과는 약간 달리- 지각 능력과 관련되며, 미를 지각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의 질료 가운데 어떤 인식될 수 있는 구조로서의) “형태 forma”를 인지하는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미적 만족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주어져 있으며, 인간의 감각은 이와 상응하게 아름다움을 열망하고 인지하기 위해서 사물로 향한다.

 

동시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미적 즐거움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무관심성”을 들 수 있다. “아름다움은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인식과 관계를 맺는다.” 이 점에 있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은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스의 미에 관한 구상을 뛰어넘고 있다. 아름다움은 -토마스에 의하면- 본질적으로 상기한 “형태”의 “예지성 (Intelligibilität)”, 다시 말해 오직 지성에 의해서만 파악되는 특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가령 사이비 디오니시우스는 미의 특성으로서 “균형” 그리고 순수한 “색채감”을 중시한 바 있다. 이에 비해 토마스 아퀴나스는 무엇보다도 “통합 혹은 완전성 (integritas sive perfectio)”을 내세우며, 이를 (하나의 사물 속에 자연적으로 구현되는) 아름다움의 제반 조건으로 간주하였다.

 

"신학대전"에서 발전된, 아름다움에 관한 이론은 예술의 이론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아름다움은 -구체적 사물이든 정신이든 간에-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이에 비하면 예술 (ars)은 인간에 의해 예술적으로 창조된 것 (factio)이다. “예술이란 창안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다.” 따라서 예술의 근원이란 예술가가 (사물에 대해 품고 있던) 상상 내지 인식으로서, 구체적 양태를 동원하여 작품속에 담으려는 무엇이다. 예술 작품의 훌륭함이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예술가의 작업 솜씨에 의해 확정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작품이 예술가의 구상 내지는 창작 목표와 일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에 달려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예술의 유형을 지엽적으로 다루었는데, 연금술과 같은 유용한 예술, 음악과 같은 편안한 예술, 극적 유희 그리고 심지어는 우상 등까지 좋게 여겼다. 특히 그의 관심을 끈 장르는 시 예술이었다. 왜냐하면 기독교학의 방법론적 표현을 위해서는 이른바 어떤 구상적 언어의 사용이 절실히 요청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학”, 다시 말해 시의 이론은 -자연에 대한 단순한 모방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저열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의 개념은 신-스콜라 학문에 영향을 끼쳤고, 20세기에도 수용되었다. 가령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영웅 스티븐 (Stephen Hero)" (1944)이 좋은 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