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외국시

박설호: (4) 캄파넬라의 옥중 시편

필자 (匹子) 2022. 12. 15. 11:27

(앞에서 계속됩니다.)

 

너: 마지막으로 한 편의 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의 시는 캄파넬라의 대표작인가요?

나: 네, 「나라를 지닌 자가 왕이 아니라,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왕이다. Non è re chi ha regno, ma chi sa reggere」를 대표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권력의 본질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붓과 물감을 가진 자가 괴발개발 그림 그려

벽과 먹지 더럽힌다면, 그는 화가가 아니리.

설령 먹, 펜, 필통이 없더라도, 그림 그릴 능력을

지니면 그가 참다운 화가이리라.

 

삭발한 머리, 성의가 성직자를 만들지 않듯이

거대한 왕국과 땅을 지닌 자는 왕이라 할 수 없지

예수와 같이 천한 노예 출신이라도 마치 혹성, 팔라스와

화성처럼 그는 차제에 반드시 왕이 되겠지.

 

현명함의 관을 쓰고 세상에

태어나면, 나중에 왕이 되지만, 인간은 처음부터

왕관 쓰고 태어나지 않는 법이야.

 

그렇기에 우리는 왕 없는 공화국을 만들든가,

어리광과 꿈으로 살아온 자 대신에 시련을 겪은,

역량 있는 왕을 꼭 선택해야 하리라.“ (필자 역)

 

(Chi pennelli have e colori, ed a caso/ pinge, imbrattando le mura e le carte./ pittor non è; ma chi possede l'arte,/ benché non abbia inchiostri, penne e vaso.// Né frate fan cocolle e capo raso./ Re non è dunque chi ha gran regno e parte,/ ma chi tutto è Giesù, Pallade e Marte,/ benché sia schiavo o figlio di bastaso.// Non nasce l'uom con la corona in testa,/ come il re delle bestie, che han bisogno,/ per lo conoscer, di tal sopravvesta.// Repubblica onde all'uom doversi espogno,/ o re che pria d'ogni virtù si vesta./ provata al sole, e non a piume e 'n sogno.)

 

: 캄파넬라는 이 시를 통해서 무엇을 주장하려고 했을까요?

나: 단순하게 생각해 봅시다. 예컨대 사과를 먹어봐야 우리는 그게 진품인지 아닌지를 알게 됩니다. 서점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은 특정도서의 훌륭함을 알지 못합니다. 책을 끝까지 읽어봐야 비로소 그 책의 진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귀어 봐야 그분의 사람 됨됨이에 감복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권력자의 근본적 자질은 그 사람이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뒤늦게 나타나지요.

: 왕의 자질 역시 권좌에 앉은 후에야 비로소 드러내겠군요.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권력자에게 끝없이 속아 넘어가게 되는군요.

 

나: 네. 첫 번째 연에서 시적 자아는 예술가의 진면목에 관해서 논평하고 있습니다. 상당수의 화가 내지 시인들은 시작품을 “괴발개발” 끼적거림으로써 자신의 글재주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화폭에 그리고 원고지에 남기는 것은 수없이 반복되는 재주일 뿐, 예술가의 근본적인 자질이 아니라는 게 캄파넬라의 생각입니다.

너: 예컨대 악기 연주와 노래에 서툴다 하더라도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자는 진정으로 가수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겠군요?

 

: 비유가 그럴듯하군요. 시작품은 기득권 내지 특권 계층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진정한 미가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지, 겉으로 드러난 피상적인 재주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성직자 그리고 고위 수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일부 종교인들 자신의 “성의 (聖衣)”가 그 자체 권위라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수많은 신도들을 거느리고 있는 목사는 자신이 마치 유일무이한 신의 하수인이라고 착각합니다. 그의 눈에는 나머지 인간은 어리석은 양떼로 비칠 뿐입니다. 양과 목자는 처음부터 신분이 다르다고 합니다.

 

: 그러나 캄파넬라는 한 인간의 직분, 겉모습 그리고 그의 의복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요? 가령 고대 그리스인들은 누더기를 걸친 아리스티포스를 현자로 대해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부처의 무량한 마음을 터득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분이야 말로 진정한 종교인이 아닐 수 없을 텐데요? 믁자墨子도 상현 (尚賢)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면서 이에 관해서 말한 바 있지요. 상현이라는 것은 신분에 관계없이 현자를 현자로 모시는 태도가 아닙니까?

나: 예리한 지적입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왕관을 쓰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마에 금테 두른 뒤 자궁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요약하건대 캄파넬라의 시는 인간의 평등 그리고 왕 없는 공화국을 예찬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게도 자연법사상을 선취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왕은 나라를 지닌 자가 아니라, 백성을 자비롭게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현명한 판단과 도덕적 품격이야 말로 왕의 자질을 측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고 합니다.

 

: 신영복 선생도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재미있는 말씀을 남겼어요. 인간은 자신의 능력의 70퍼센트의 자리에 앉아야 아무 탈이 없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득위 得位”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100쪽 이하) 만약 무능한 자가 높은 직위를 차지하고 있으면, 거짓과 위선 그리고 아첨으로 자신의 함량 미달을 채우려 하지요, 캄파넬라 역시 이와 유사한 “잘못된 득위”를 언급하려 한 게 아닐까요?

: 네, 캄파넬라는 주어진 폭정이 품격을 지니지 않은 독재 왕권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려 했습니다. 이를테면 『태양의 나라』에 등장하는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공동체 전체의 안녕을 위해서 선을 실천하지 않습니까?

 

: 작품은 인간 존재가 평등하지만, 인간의 능력에는 개별적 차이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처음부터 특권을 누리면서 높은 자리에 오른 인간에게 허리를 굽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마치 찬란한 팔라스와 화성과 같은 “예수”를 존경해야 합니다. 예수는 인간신으로서 영특함과 지혜로운 인간신입니다. 그는 가난과 불운이라는 역경을 딛고, 끝없이 노력하여 찬란하게 입신한 분들니다. 여기서 그가 유명한지 아닌지 하는 사항은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 캄파넬라는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열정을 찬양했지만, 상명하달의 모든 일감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법관은 법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가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돕고, 법적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의사는 전문의 자격증으로 이득을 챙기는 자가 아니라, 병자를 불쌍하게 여기는 심의 心医여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사는 제자들을 일방적으로 훈계하는 자가 아니라, 학생 스스로 선함이 무엇인지, 책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너: 좋은 말씀입니다.

 

: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용시가 말하고자 한 바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인간 평등이며, 다른 하나는 가진 자, 배운 자가 지녀야 할 겸허한 자세를 지칭합니다. 첫째로 인간은 평등합니다. 특권을 지닌 자는 세상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둘째로 지식인은 겸허한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도 (道)는 “길을 걸을 때 머리 (首)를 낮추는 자세”에서 시작되지 않습니까? 「루카의 복음서」 14절 11절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지요. 캄파넬라는 어떻게 해서든 인간이 고통 없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태양의 나라』 역시 바로 이러한 믿음에 입각해서 집필된 것입니다. 1. 사유 재산제도의 철폐, 2. 하루 네 시간 노동, 3. 고문의 철폐, 4. 절제된 여가 시간, 5.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가족 및 결혼 제도의 타파, 6. 강제적 사형 집행의 철폐 등의 슬로건은 캄파넬라가 꿈꾼 사회 유토피아에 관한 갈망의 상이지요,

너: 이해할만 합니다. 그런데 강제적 사형 집행의 철폐가 무슨 말인가요?

: 『태양의 나라』에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는 달리 사형제도가 존속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는 특정 사형수가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처형당해야 한다고 스스로 작심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형 집행을 미룹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권을 중시하는 캄파넬라의 자세를 읽을 수 있습니다.

너: 장시간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