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제삼제국에 관한 언급은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의 초창기에 쓴 드라마, 「황제와 갈릴레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데,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 작품은 어떤 유형의 휴머니즘을 청년 양식이라는 새로운 각도에서 고취하게 한다. 작품의 주제는 후기 시민 사회의 해방에 관한 여운을 전해주고 있다. 작품의 분위기는 약간 변덕스러움으로 퇴색되어 있고, “필연이라는 세 주춧돌의 상징성이 드러나고 있다. 첫 번째는 구약성서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가리키고, 두 번째는 기독교의 시대를 가리키며, 세 번째는 이 두 가지를 종합한, 시대로서 ”아름다움과 진리“가 혼합된 시대라는 것이다. 이를 실현할 사람은 마치 로마의 율리아누스 황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즐거운 귀족“이 다스리는 제삼제국이 출현하게 되리라고 한다. 여기에는 1930년대 독일 사람들이 특별히 갈구하는 희망 사항이 반영되어 있다. 여기에는 히틀러, 괴링, 괴벨스와 같은 칠장이 내지는 귀족의 관점이 은근히 반영되어 있다. 이들은 말하자면 아름다움과 진리를 종합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 사항은 나치가 제삼제국이라는 용어를 교활하게 베꼈다는 사실이다. 추측컨대 그들은 입센에게서가 아니라, 도스토옙스키에서 문학적으로 빌어왔다. 묄러 반 덴 부르크는 인종주의 사내의 향기를 풍기면서, 도스토옙스키 문학을 독일어판으로 편찬하지 않았던가? 그가 인용한 제삼제국에는 한편으로는 러시아 황제의 분위기가 도사리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언적 요소가 담겨 있다. 그리하여 묄러 반 덴 부르크의 책, 『제삼제국』은 나치 사상의 대표작으로 승격되었고, 파시즘 운동의 엘리트들은 히틀러의 문장 표현 그리고 로젠베르크의 문헌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묄러 반 덴 부르크의 책을 열정적으로 수용하였다.
묄러는 ”아프리카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타국에 대한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표명하였다. 그는 잘 알려진 ”프로이센 양식의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했다. 원래 러이사의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나라에 새로운 비잔틴 제국이 성스러운 영혼과 함께 뿌리를 내리면서 서로 어우러지기를 애타게 갈망하였다. 말하자면 이러한 성령과 함께 하는 새로운 제국이 ”러시아 민족의 내면에 하나로 뭉쳐진 신성(神性)이기를 기대했던 작가가 바로 도스토옙스키였다. 그렇기에 찬란한 신의 나라에 대한 꿈은 볼테르 사상과는 정반대되는데, 이것이 바로 묄러 반 덴 부르크에 의해서 독일로 이전되었다. 이로써 독일은 독점 자본의 국가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혁명 운동은 위협당하고, 경제 위기가 출현하게 된다.
제삼제국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기이한 방향으로 정당화되고 말았다. 나치의 제삼제국은 조아키노와 레싱이 갈구하던 바람직한 나라와는 정반대되는 나라가 되었다. 불타는 어둠이 온 나라를 덮치게 되었고, 피 터지는 밤과 사탄이 활개 치는 세상이 도래하게 되었다. 오래전에 사람들이 갈구하던 사랑과 정신에 관한 꿈은 현실에서 정반대의 끔찍한 모습으로 출몰하게 된 것이다. 계몽주의자 레싱은 어떤 합리성에 입각한 기쁨의 전언을 전하려고 했으나, 히틀러는 이와는 전혀 다른 현실적 맥락에서 “나의 투쟁”을 부르짖고 말았다.
파시즘은 거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두 가지를 획책하였다. 그 하나는 일반 사람들의 경제적 무지를 역이용하는 일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과거의 천년 왕국에 관한 혁명적 기대감과 희망의 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일이었다. 그리스도의 재림 – 이것은 반드시 차제에 반드시 학문적으로 깊이 다루어져야 할 핵심적 사항이다. 천년 왕국에 관한 이론은 –언젠가 마르틴 루터의 표현에 의하면- “모든 날강도의 속임수 자루 내지는 포대기”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갈망은 루터가 살던 시대에는 폭동을 일으키는 농부들이 즐겨 불렀던 전투의 노래로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제삼제국이 도래하리라는 생각은 히틀러가 권력을 차지한 다음부터 본연의 의미가 완전히 퇴색되어, 더럽게 타락한 형체로 변하고 말았다. 이로써 천년왕국설은 완전히 마비되어 반동주의의 희생물로 전락하게 되었다.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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