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독일의 계몽주의 작가인 레싱 역시 13세기에 열광적 자세를 취하던 이단자들을 떠올리면서 이들을 언급하고 있다. 레싱은 『인류의 교육Erziehung des Menschengeschlechts』 (1780)에서 조아키노의 단계 이론 그리고 그의 관용 사상을 계몽주의에 접목하였다. 기독교 사상을 기초적으로 연구서라고 소개되는 문헌은 무엇보다도 이성에 입각한 메타 종교의 유형으로 출발하고 있다. 레싱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조심하라, 그대 탁월한 능력을 지닌 그대여. 이 기초적 서적의 미자믹 페이지를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어떤 놀라운 밝은 열기를 품고 있구나. 그대가 맨 처음, 혹은 여러 번 예리하게 탐색하는 무엇을 옆에 앉아 잇는 무력한 친구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자신을 보호하라. (...)
영원한 복음의 새로운 시대는 반드시 도래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는 기초적 서적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지 않았는가? 13세기와 14세기의 열광주의자들은 새로운 영원한 복음의 어떤 찬란한 광채를 수용하지 않았는가? 이때 그들은 이러한 시대가 조만간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출현하리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그들이 마련한 세 번째 제단은 결코 공허한 착상이 아니었다. 과거의 단체뿐 아니라, 새로운 단체 역시 모조리 폐기처분헤야 한다고 열광주의자들이 가르친다면, 그들의 견해는 결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다만 그들은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동시대인들보다 먼저 깨어나서 성급하게 행동했을 뿐이다. 그들은 세 번째 제국에 걸 맞는 무엇을 실천하게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매우 애타게 갈구했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하나의 계몽주의의 사상으로 결집하지도 못했다.”
우리는 레싱의 이러한 놀라운 발언에서 독일 계몽주의 정신의 핵심적 사항을 간파할 수 있다. 가장 용기 넘치고 가장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는 역사의 세 단계를 지적하면서, 기독교의 사고를 극복하려고 한다. 이는 헤겔의 견해에 의하면 기독교를 파괴하는 행위이자, 기독교를 보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레싱에 의하면 가부장이 지배했던 과거는 곤충의 애벌레의 시대이고, 교회가 지배했던 중세의 시대는 이성의 측면에서는 번데기의 시대였는데, 이제 시민 혁명의 시대는 마침내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의 시대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오늘날에는 그 자체 골동품처럼 진부하다고 한다. 역사는 이른바 계급 사회에 해당하는 실질적 역사의 진행 과정으로부터 가장 멀리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세 번째 단계는 흐릿한 여건에서 여전히 인간적 행복의 상태를 내세우려고 한다. 그것은 어쩌면 사회주의 혁명을 부추기는 사고일 수 있는데, 태양 아래에서 아주 정밀하게 주어진 현실이 변화되도록 추동하고 있다.
실제로 제삼제국에 관한 사상적 불꽃은 레상의 마음속에서 그토록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러나 레싱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불꽃은 안타깝게도 부르주아의 승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지거나, 세인에 의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채 그저 간헐적으로 출현하곤 했다. 이를테면 우리는 철학자 셸링의, 후기 작품, 『계시의 철학Philosophie der Offenbarung』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간간이 반동주의로 매도된 바 있다. 셸링의 글에는 실제로 레싱이 그토록 찬탄해 마지않던 미래 사회에 관한 혁명적 예언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셸링은 철학의 관점에서 나타나는 역사의 내용은 명징하게 지적하지 않고, 오로지 시대 변화의 틀만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셸링은 오로지 신의 내적인 세력을 강조하면서, 교회사의 시대를 인위적으로 구분한다. 이로써 인간의 전체적 역사는 그냥 형식적으로 세 단계로 나누어질 뿐이다. 셸링에 의하면 세 개의 제국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고 한다. 베드로, 혹은 가톨릭이 고려하는 세계는 성부의 제국이고, 바울, 혹은 프로테스탄트가 고려하는 세계는 성자의 제국이라고 한다. 요한은 미래의 세상을 관장하는 교회를 위해서 복음서를 집필했다고 한다. 셸링은 자신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세 개의 제국의 순서는 하나의 논리적 일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치성은 순수 신학적으로, 영지주의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데, 셸링은 이를 조아키노의 사상에서 뒤늦게 발견했다고 술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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