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 Ernst Bloch, Erbschaft dieser Zeit, Frankfurt a. M. 134 -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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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나라에 대한 갈망이 공교롭게도 지옥과 같은 지하실 공간을 연상하게 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지하실은 끔찍한 고문실과는 달리, 지상의 천국은 지하 공간이기는 하지만,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제삼제국에 관한 꿈의 토대는 이를테면 기원후 3세기에 활동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오리게네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리게네스의 사상은 기독교 문서를 해독하는 세 가지 가능한 방법을 설파하였다. 그것은 육체적인 방식, 영혼적인 방식 그리고 정신적인 방식을 가리킨다. 육체적인 방식은 자구적인 해석이며, 영혼적인 방식은 도덕적이고 알레고리를 동원한 해석을 가리킨다. 그런데 세 번째의 정신적인 방식은 성서의 베일에서 벗어난, 성서의 본질에 해당하는 “영원한 복음”을 밝히는 해석을 가리킨다.
이러한 세 가지 인식의 단계는 12세기의 성령 교단에 속하는 성 빅토르의 리샤르 그리고 성 빅토르의 위고의 순수 명상적 사상에서 다시 나타나게 된다. 이들은 조아키노와 돌시대에 살았던 신앙인들이었는데, 믿음의 내적 의미를 추구한 위대한 심리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육체적 방식은 이들에 의하면 “생각cogitatio”, 즉 물체의 세계를 파악할 수 있고, 영혼의 방식은 “명상meditatio”, 즉 세계 내부를 파악할 수 있으며, 정신의 방식은 “시험contemplatio”으로서 “신의 성스러운 투시력visio beatifica Dei”을 견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리샤르와 위고에 의하면 인간은 세 번째 방식을 통해서 신으로 격상될 수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 나라로 향해 나아가는 방향을 마치 발전 소설처럼 기술함으로써, 구원의 역사를 단계별로 기술한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리샤르와 위고의 사상을 맨 처음 기술된 정신 현상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신 현상학은 단순히 개인의 관점에서 기술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밖에 두 사람이 고찰하는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우리 가까이, 다시 말해서 목전에 자리한 무엇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마지막 제국은 유토피아로서 세상에 태동하기 위해서 서성거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객체를 위해서 영구히 완성된 무엇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조아키노 디 피오레는 추측하건대 성 빅토르 출신의 리샤르 그리고 위고와 안면을 익힌 것 같아 보인다. 그는 오리게네스의 성서 독해 방법에서 놀라운 역사철학적 방향성을 찾아내었으며, 두 명의 신학자에게서 자신의 이론의 촉수를 발견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조아키노는 리샤르와 위고의 신학적 논의에서 내면을 단순히 지향하는 의지를 파기했는데, 이는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그는 리샤르와 위고의 개인적이고 교육학적인 연결고리를 과감히 저버리고, 세 가지 관점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간의 어떤 영속적으로 발전하는 순서로 바꾸어 놓았다. 자고로 신비주의는 인간 영혼의 단계적 움직임을 예의 주시한다. 한 영혼의 존재 구속적 상태는 어떤 관련성에 의해서 영혼의 또 다른 존재 구석적 상태로 이행되곤 한다. 조아키노는 개별적 영혼의 변화 내지는 이행을 예의 주시하면서, 인류 역사의 전체적 과정 역시 얼마든지 이러한 단계적 변화 내지는 이행을 거친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었다. 이러한 역사의 단계적 움직임은 정신의 완전성이라는 정도 내지는 등급을 섭렵하면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도 내지는 등급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조아키노에 의하면 개별적 인간이 아니라, 오로지 제각기 주어진 전체적 시대라는 것이다. 조아키노는 누구보다도 먼저 전체적 시대 변화에 관한 놀라운 역사철학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의 추종자들은 나중에 조아키노의 사상을 언급하면서, 같은 시대에 살았던, 위대한 범신론의 유물론자, “베나 출신의 아말리히 Amalrich von Beno” (12세기)를 증언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말리히는 구원의 계시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차원에서 도달 가능하다고 언급하였다. 구약성서에는 성부가 아브라함에 의해서 인간으로 변했고, 신약성서에는 성자가 그리스도에 의해 인간으로 변모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한다. 이제 성령의 시대가 목전에 도래하였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이 개벽하면, 성부와 성자를 모시는 허례허식적인 예식은 사라지고, 유대교의 율법 역시 파기되리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말리히가 실제로 이러한 역사적 순서를 설파했는지에 관해서 우리는 오늘날 전해지는 문서를 통해서 고증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이론은 반=기독교도에 대항하는 아말리히의 격정적인 외침과는 일치되지 않고 있다. 왜냐면 그는 종교적 예식 그리고 여러 율법을 시대의 구원을 위한 전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 허구라고 단언했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역사철학적 단계의 이론은 오로지 조아키노의 사상에서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조아키노의 문헌은 그의 이름과 함께 미래 사회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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