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약 백여 년 전에 독일의 마인츠에서는 쇼텐이라는 이름의 상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의 일은 자신의 적성과 거의 일치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단을 매매하며 살아가는 성실한 상인이었는데, 매년 멀리 여행을 떠나곤 하였다. 그의 행로가 조금씩 달랐던 까닭은 그가 이따금 우회로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쇼텐은 이번에는 미헬슈타트 출신의 랍비와 만나서 경건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랍비의 근처에 머물기로 했다. 이번에 만나게 된 랍비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른바 “기적의 랍비”로 칭송되는 분이었다. 랍비의 이름은 “발셈”이었다. 사실 그는 많은 사람의 기억에 의하면 18세기 말경에 독일에서 거주한 적이 있었던 학자였다.
쇼텐은 이전에 랍비를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스위스의 도시, 상트 갈렌으로 물품을 구입하려던 참이었는데, 그전에 랍비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마차를 예배당 바깥에 세운 다음에 그는 랍비를 만나,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랍비, 오늘 이상하게도 내 기분이 참 묘합니다. 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네요. 간밤에 끔찍한 악몽을 꾸었는지, 아니면 평상시에 자주 좋지 못한 예감에 사로잡혀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번에 여행을 떠나면, 건강하게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몹시 불안합니다.” 랍비는 쇼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랍비는 상인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쇼텐은 대답을 기다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경애하는 랍비, 부탁이 하나 있어요. 나에게 행운의 징표 하나를 건네주세요. 징표라도 하나 지녀야만 마음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랍비는 집요한 감각으로써 어떤 액운을 감지했는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신경이 곤두섰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랍비는 미동도 하지 않고 말없이 앉아 있다가, 입을 실룩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의 테이블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불 꺼진 촛대 하나가 그 위에 놓여 있었다. “원하신다면, 이것이라도 가져가세요.”하고 랍비는 마침내 말했다. “주께서 우리에게 정해주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쇼텐은 고마움을 느끼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가방 속에 촛대를 챙겨 넣었다. 랍비는 여행을 잘 다녀오라는 의미로 성호를 그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윽고 쇼텐은 여행을 떠났다. 상트 갈렌에 도착하자마자, 이전에 평소와 다름이 없이 “황금의 포도”라는 이름의 여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그가 언제나 거래 파트너를 만나던 여관이었다. 코블렌츠 출신의 바하라흐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골트슈티커가 바로 그의 주요 파트너였다. 그런데 여관은 하필이면 그날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 바하라흐가 몇 시간 전에 다름슈타트 근처의 헤펜하임으로 떠났다고 언질을 주었다. 골트슈티커는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쇼텐은 바하라흐를 만나기 위해서 서둘러 헤펜하임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한 자는 여관주인이었다. 여관주인은 바하라흐의 인부 인사를 대신 전했다. 말하자면 바하라흐는 휴식이 필요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내일 아침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여관의 하인은 쇼텐을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여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계단을 한참 올라갔다. 여관집 하인은 테이블 위의 양초에 불을 켠 다음에, 쇼튼에게 인사를 건네고 사라졌다. 비단 상인은 곧장 침대로 향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섬뜩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갑자기 그의 귀에 문의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무슨 소리지? 혹시 여관의 하인이 실수로 문을 잠근 게 아닐까? 문 쪽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문은 밖에서 단단히 잠겨 있었다. 그는 다시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은 습기로 인하여 약간 부풀어 있었고, 창문에는 나무 격자가 덮여 있었다.
방안의 공기는 쇼텐의 가슴을 마구 내리 누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질식할 정도의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숨 막히게 하는 썩는 냄새, 가슴을 짓누르는 방의 분위기는 자신이 어젯밤 꿈에서 접했던 광경과 다름이 없었다. 확실한 것은 침대에서 썩는 냄새가 풍겨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방은 너무 어두컴컴하여 침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없었다. 테이블 위의 초에서 불빛이 희미하게 퍼졌다. 그것은 깜박거리더니, 흐릿한 그림자를 남기다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바로 이 순간 쇼텐은 자신의 가슴을 한 번 다독거렸다. 뒤이어 랍비가 건네준 촛대를 가방에서 끄집어내었다. 촛대에 양초를 얹고 심지에 불을 지피니, 방은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이때부터 방의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침대 밑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대의 윗덮개를 걷어내었으나.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매트리스를 걷어내었다. 그 아래에는 뜯겨진 널빤지가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어두운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내팽개쳐져 있는 것은 아니, 여러 명의 시신이 아닌가? 거기서 둥근 모형의 낡은 관이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낡은 관 속에는 최근에 얻어맞은 두개골과 아직 썩지 않은 시신 한 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뿔싸, 그것은 코블렌츠 출신의 바하라흐의 시신이었다.
(계속됩니다.)
'28 Bloch 흔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로흐: (3) 행운의 손 (0) | 2023.11.13 |
---|---|
블로흐: (2) 행운의 손 (0) | 2023.11.13 |
블로흐: 빵 그리고 유희 (0) | 2023.10.16 |
블로흐: 두 개의 액자 (0) | 2023.01.03 |
블로흐: 가난한 놈과 부유한 놈 (0) | 2022.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