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Bloch 흔적들

블로흐: (2) 행운의 손

필자 (匹子) 2023. 11. 13. 09:59

(앞에서 계속됩니다.)

 

쇼텐은 일순간 비명을 터뜨린 다음에,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절망적 상태란 바로 지금 이순간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다급한 순간 소름이 끼치고 온몸에 땀이 흘렀다. 구원의 기도를 반복해서 암송했다. 랍비가 건네준 촛대 위에는 여전히 빛이 환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왜 랍비가 촛대를 건네주었는지 깨달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촛대는 현재 무엇을 해야 할지를 비단 상인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쇼텐은 일단 죽은 친구를 관에서 꺼내어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눕혔다. 그 다음에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죽은 친구는 마치 자신이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뒤이어 그는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가, 널빤지 아래의 공간으로 자신의 몸을 숨겼다. 거의 질식할 것 같아서 가끔 머리를 내밀고, 깊은 숨을 들이마셔야 했다. 주위는 고요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갑자기 조용히 문에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열쇠로 문을 여는 것 같았다. 몇 명의 사내가 침대로 다가왔다. 그들은 도끼, 혹은 몽둥이로 바하라흐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의 머리는 다시금 박살나고 만다. 가방이 문 쪽으로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들은 서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목소리는 분명히 여관 주인 그리고 하인임에 틀림없었다. 뒤이어 문이 다시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흐른 뒤에 쇼텐은 널빤지 아래의 공간에서 기어 나와,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에 붙어 있는 격자를 조심스럽게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힘들게 창문 접착제를 제거했을 때 비로소 유리창이 빠졌다. 쇼텐은 창밖으로 나왔다. 처마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특히 여관 건물의 뒤에 있는 작은 도로를 오래 응시했다. 행여나 행인이 발견될 경우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동이 틀 무렵 몇 명의 상인들이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리를 질러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생각했으나, 포기해야 했다. 행여나 여관 주인이 그의 목소리를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인들 속에도 바하라흐를 살해한 공범이 섞여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섯 시의 종이 울려 퍼질 무렵에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바로 이때 그는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동업자, 골트슈티커가 길의 코너를 돌아오는 것을 목격했다, 친구들을 만나러 이곳 여관에 들어가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쇼텐은 처마에서 그에게 몇 마디 외쳤다. 그것은 성스러운 외침이었다. 골트슈티커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도록 이른바 유대 독일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골트슈티커는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는 곧장 여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아침 무렵 경찰이 여관에 들이닥쳐서, 계단 위로 올라왔다. 잠긴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자, 쇼텐이 초췌한 모습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관집 주인과 하인은 처음에는 거짓말로 모든 것을 얼버무리려고 했다. 그러나 사실적 정황은 그들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침대 위의 시신 그리고 바닥 아래의 증거들이 모든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쇼텐은 며칠 동안 그 도시에 머물러야 했다. 살인 사건에 대한 증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5주 후에 쇼텐은 다시 발셈 랍비를 찾아갔다. “랍비, 무척 놀라워하는 군요, 어느새 백발이 된 상인을 다시 만나다니 하고 말이지요.” 뒤이어 그는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째서 내가 당신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할까요? 나에게 촛대를 건네줄 때 당신은 이미 내가 무슨 일을 할지 알고 계셨지요?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아마도 불쌍한 바하라흐의 옆에 영면하고 있을 테니까요. 이곳을 떠날 무렵에 나를 위해서 죽음의 기도를 들려주셨지요, 그렇지요?”

 

랍비는 돌려받은 촛대를 원래 위치하던 테이블 위에 얹어놓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주께서 귀히 여기는 분을 구제하리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촛대는 당신의 성스러운 언어와 마찬가지로 당신을 도왔어요. 그런데 촛대는 다만 촛대일 뿐이지요. 성스러운 언어 역시 당신을 도왔고요. 기적은 존재한답니다. 신은 기적을 간단하게 행하지는 않아요.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에 대해 감사를 표해야 할지 잘 모른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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