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백무산의 시 '유허비(遺墟碑)'

필자 (匹子) 2023. 10. 27. 09:48

백무산의 시 유허비를 다시 읽습니다. 아래의 글은 정지창 교수의 명문장입니다. 필자가 첨언할 것은 하나도 없어서 글을 그냥 인용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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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백무산)는 탁발승처럼 이곳저곳을 떠돌며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맨다. 고향 영천에는 웬지 돌아가고 싶지 않고, 정처 없는 발길은 방어진과 장생포, 선불산, 토함산, 경주 남산, 운문사 등지로 그를 데려간다. 그리고 순례하듯 폐사지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예전에 살았던 울주군의 산골짜기 허름한 마을을 찾아가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웬 비석이 세워져 있다. 최제우 선생의 처가가 있던 동네(여시바윗골)라고 유허비를 요란하게 만들어 놓은 것. 수운 선생은 젊었을 적에 형편이 어려워 처가살이를 하며 장사를 다녔다고 한다. 그도 나처럼 실패를 거듭하여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구나.

 

 

예전에 이 동네에서 살았던 적 있지

야산 자락에 등이 휘고 손이 거친 사람들

겨우 기대어 살던 마을

옛길 하나 옛집 하나 남김없이 다 밀고

새로 들어선 마을 다시 와 보니

최제우 선생의 처가가 있던 자리라고

선생의 유허비가 요란하게 서 있네

처가 터에 무슨 유허비냐고?

 

그렇지, 변변찮은 사내 하나 있었지

삼세끼 피죽 끓여먹더라도 처가는 넘보지 말랬더니

숫제 처자식을 처가에 떠넘기고 떠났다가

노숙자 꼬라지로 돌아온 일도 다반사라던데

그대가 떠난 길은 “밖”이던가, “ᄇᆞᆰ”이던가

그것이 무엇이든 가야만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에 대해서

가는 내가 길이 되고 통과하는 내가 문이 되어서도

다시 또 가야 하는 일에 대해서

나도 사무친 일이 있네. 그렇다네

변변찮은 사내여, 어쩐지 그 일은 내게도

전생에 못다 간 길처럼 가슴이 더워지네

나를 데려가시게, 변변찮게 살고 싶네

 

백무산의 시 「유허비」 시집 『갈무리』 (2004)에 수록

 

백무산은 변변치 못한 사내. 처가살이를 하며 장사에 나섰다가 다 털어먹고 노숙자 꼬라지로 돌아오기를 거듭했던 못난이 최제우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래, 나처럼 나이 사십이 되도록 이렇게 철저하게 실패하고 좌절하며 회한을 곱씹었던 최제우는 무엇을 찾으려고 다시 길을 나섰을까? 그는 무엇 때문에, 무엇이 그리 사무쳤기에 쫓기듯이 길을 찾아 여시바윗골을 나섰단 말인가?가는 내가 길이 되고 통과하는 내가 문이 되어서도/ 다시 또 가야 하는 일”,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요, 도(道)란 말인가? 자네처럼 변변찮은 나도 그 길을 나서고 싶네. 사람답게 살고 싶네.

 

그런데, 어리석음을 구제한다는 제우(濟愚)라는 이름은 광제창생(廣濟蒼生), 고통에 빠진 백성들을 널리 구하겠다는 큰 뜻을 세운 후에 새로 지은 이름이고, 변변치 못한 처가살이 시절에 자네 이름은 제선(濟宣)이었다니. 나도 “봉석”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돈 없고 빽 없는 무지렁이 노동자들을 구하겠다고 다짐하며 “무산”으로 이름을 고쳤었지. 그러나 이제 돌이켜보니 “무산”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추구했던 노동해방과 민중혁명은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남은 것은 쓰라린 좌절과 회한, 그리고 세상의 비웃음 뿐이네.

 

실패한 나는 낙오자 최제선이 어떻게 자기 정화의 과정을 통과하여 허물을 벗고 최제우로 다시 태어났는지 나는 알지 못하네. 그러나 외세에 쫓기고 탐관오리들에게 짓밟히고 전염병에 시달리는 백성의 뜻을 일으켜 세워 스스로를 한울님으로 모시자는 자네의 큰 뜻은 어렴풋이 짐작은 가네. 나도 한때 그런 뜻을 품은 적이 있었지만, 보다시피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았지. 더 철저하게 깨지고 망가지면서 나를 지우고 내 욕심을 비우지 못한 탓이겠지.

 

그러나 백성들의 절망과 고통이 질벅거리는 저잣거리를 떠나 두문불출 면벽수련한다고 도통과 득도가 이루어지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네. 따지고 보면 나 자신도 금방 스러져 없어질 먼지와 같은 존재이고 우리의 아등바등하는 삶 자체가 헛되기만 한데, 뜻을 일으켜 세상을 바꾼다는 것 또한 허망한 짓거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제선이, 자네는 어찌하여 자신의 허망한 전 생애를 녹여 한 자루의 칼을 만들어 호탕하게 세상을 내리쳤는가? 텅 빈 것이야말로 가장 충만한 것이라는 역설을 깨우친 건가. 그것은 서학으로 조립한 혁명의 칼이 아니라 동학의 깨우침으로 빚은 개벽의 칼이었네. 실패한 낙오자 최제선이 동학의 스승, 최제우 선생으로 태어나 자신의 목숨을 던져 허공 세상을 허공의 칼로 내려 쳐 새 세상, 개벽의 문을 열어젖힌 비밀을 나는 알 길이 없네.“

 

(정지창: 「백무산이 만난 최제선」, 실린 곳: 정지창: 문학의 위안 한티재 2020, 125 – 1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