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박설호: (2) 문창길의 시,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필자 (匹子) 2023. 10. 31. 11:42

(앞에서 계속됩니다.)

 

3.

B: 아, 미얀마에서는 단기출가가 하나의 성년식으로 인정되는군요.

A: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은 이러한 수련을 통해서 “높은 산 저 안개밭보다 무궁한/ 고행”을 체험하게 됩니다. 코코 아웅은 절에서 스님으로서의 수련에만 몰두하는 게 아닙니다. 이전에 아이들과 대나무 공을 차고 풀밭을 돌아다녔듯이, 같은 절에서 만난 도반과의 우정을 갈고 닦습니다. 모든 것은 넒은 의미에서의 교육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코코 아웅

내일이면 스님으로 불러야 한다

그러다 열흘 후면 다시

속세의 어린 친구로 돌아올 것이다

오늘 그의 엄마는 파르라니 빛나는

아들의 머리를 매만진다

그래 이제 엄마를 떠나거라

너의 고향은

너의 모태는

궁극적 평안에 이르는 니르바나에 있느니라

 

B. 두 번째 연은 코코 아웅이 절로 떠나기 전에 어머니 곁에서 치르는 간단한 예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A: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벗어던지고 단기간이나마 “스님”이라는 칭호를 얻습니다. 특이한 것은 단기출가가 “열흘”로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B: 문창길 시인은 아마도 의도적으로 “열흘”이라고 칭했을까요?

A: 그럴지 모릅니다. 시인은 여기서 단기간만을 의식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엄마가 “파르라니 빛나는/ 아들의 머리를 매만진다”라는 시구는 의미심장합니다.

B: 왜 그렇게 생각하지요?

A: 코코 아웅은 얼마 동안이지만 어머니와 떠나있어야 합니다. 피교육자가 가정을 떠나 다른 낯선 곳에 머무는 체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심리적 독립심을 키우고 입신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지요. 수학여행과는 별개의 체험학습이라고 할까요?

 

4.

B: 어머니가 아들의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에서 하해와 같은 사랑을 느낄 수 있지요?

A: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며 삶에서 무언가를 깨닫게 합니다. 그것은 생활비를 버는 방법을 찾으라는 게 아니라, “궁극적 평안”에 도달할 수 있는 도를 찾으라는 부탁입니다. 궁극적 평안이야말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구하고 획득해야 하는 삶의 목표이지요. 자아를 포기하고 (無我), 탐욕, 분노, 어리석음 (탐진치 貪瞋癡)을 제거하는 일이야 말로 불자의 궁극적 가르침이지요. 여기서 탐진치는 열반으로 향하는 스님이 떨쳐야 하는 세 가지 독()과 같습니다. 재화에 대한 욕심과 공명심을 떨쳐야 하고, 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며,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는 안목을 지녀야 합니다. 이는 비단 입적하려는 스님에게 해당하는 교훈이 아니라, 범인(凡人)들 또한 견지해야 하는 덕목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이러한 깨달음을 너무나 경시하지 않는가요?

 

스님의 엄마는 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과 왕관을 씌운다

붉은 흙가루와 나뭇잎을 개어 화려한 분장을 하고

마을에서 뽑은 붉은말 잔등이에 올려주며

순진무구한 너의 세계를 지키라 한다

불성은 너의 손바닥 안에 있느니

너의 집에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B: 훌륭한 지적입니다. 세 번째 행은 단기출가를 떠나는 코코 아웅이 치르는 예식을 서술합니다. 코코 아웅은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왕관” 또한 쓰고 있습니다.

A: .미얀마의 부유층은 아이를 붉은 흙가루와 나뭇잎을 개어", 왕자로 치장한 다음에 자가용에 태우지만, ”산간마을의 가난한 부모들은 아이를 소나 말에 태우거나, 자신의 어깨에 무등을 태운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귀인이 되라는 부모의 갈망처럼 화려한 분장을 하고 붉은말을 타고 있지요. 이러한 모습은 자의 미래를 축복하고 반드시 대성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정성이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B: 그런데 마지막 대목이 의미심장합니다.

A: 동의합니다. 시인이 아이에게 바라는 바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불성은 너의 손바닥 안에 있느니/ 너의 집에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코코 아웅의 어머니의 애타는 노심초사가 잘 용해되어 있습니다.

 

B: 어디 그뿐일까요? 시구는 코코 아웅이 부디 “불성”을 깨닫고 귀환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경을 유추하게 합니다. 대승불교의 경전인 부모은중경(父母恩重経)에는 부모의 10가지의 은혜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여덟 번째의 은혜는 먼 길을 떠난 자식을 잊지 않고 걱정해주시는 고마움입니다. 어쩌면 시인의 어머니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어린 문창길을 위해서 정화수를 떠 놓고 비손하던 시인의 어머니의 모습 또한 묘하게 겹쳐지지 않는가요?

A: 좋은 해석이로군요. 필자 역시 이 시를 읽었을 때 돌아가신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1980년대 초에 한반도를 떠나려고 김포 공항에 도착했을 때 부모님은 내 손을 붙잡고 격려해 주었지요. 비록 모자라는 게 많지만 노력하면, 자수성가할 수 있으리라고 말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