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최두석의 시 '산목련이 백목련에게'

필자 (匹子) 2023. 9. 5. 17:16

산목련이 백목련에게

최두석

 

너는 잎도 없이 꽃망울 터트리지
수백 수천의 꽃눈 붓끝처럼 세우고
추운 겨울을 견디면서
벼르고 벼르다가
온몸으로 봄볕을 느끼며 한꺼번에
수백 수천의 꽃망울 터트리지
사람들은 너의 환한 꽃그늘 아래 서서
마음껏 봄날을 즐기곤 하지

하지만 나는 떨군 꽃잎이
쓰레기가 되어 발길에 밟히는 게 싫어
산 속에 산다네
햇볕 가릴 만큼 가득 잎을 펼친 다음에
꽃은 한 송이씩 차례로 피운다네
사람들의 번거로운 눈길에서 벗어나
아는 이만 맡게 되는 향내는
한층 그윽하고 깊다네.

 

....................

 

최두석 시집: 두루미의 잠 , 문학과 지성 2023.

 

필자는 이 시를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1. 아름다운 시골 처녀가 서치라이트 불빛 아래에서 박수 세례를 받는 여배우에게 드리는 말씀 같습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세상에는 당신보다 더욱 아름다운 여성분들이 많이 있어요." 2. 늙음이 조용히 젊음에게 드리는 조언 같습니다. "눈앞의 문제에 혈안이 되어 살면, 나중에 후회한답니다." 3. 흙수저가 금수저에게 전하는 푸념 같습니다.. "오래 살면 나에게도 볕들 날 있겠지요." 4. 한적한 시골 들판이 복잡한 여의도 공원에게 느끼는 시기심 같습니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네요.Les tendances passent." 5. 꽃 그늘 아래 사라지고 없는 존재가 영화로움의 쓰레기 밟히는 존재에게 보내는 편지 같습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고 해요" 6. 숨어서 시를 써온 무명 시인이 열 권의 시집을 간행한 중견 시인에게서 느끼는 부러움 같습니다. "문학 작품의 진가는 다음 세대에 정밀하게 밝혀진다고 하네요." 7. 영원이 순간에게 전하는 글발 같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 알면서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