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박설호: (4) 흙의 시학. 송용구의 생태시

필자 (匹子) 2023. 6. 30. 11:01

7.

: 문제는 인간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동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무슨 일이 들이닥칠지 예단하지 못합니다.

: 그렇지만 우리는 최소한 종말의 여러 가지 징후를 감지할 수 있지요?

: 사람들은 사회적 갈등으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윤석열 정권과 노조가 싸우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눈앞의 문제로 서로 투쟁하는 동안에, 세상은 서서히 물에 잠기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의 자손, 노아는 그의 방주에 과연 무엇을 실어야 할까요?

: 그것은 물과 식량 그리고 풀과 나무, 몇몇 반려동물일지 모르지요. 로빈손 크루소의 프라이데이는 어쩌면 치유와 위안을 가져다주는 페티시즘의 물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지막으로 지녀야 할 것은 물질의 소중함, 다시 말해 실체와 에너지를 포괄하는 존재인 여성적 수평적 물질일지 모릅니다. 여기서 토본주의의 관점은 다시금 중요성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송용구 시인의 작품 하나를 언급하고 대화를 끝내려고 합니다. 다음의 작품은 시집 녹색 세입자에 실린 이라는 시입니다. “나의 몸은/ // 나의 머리카락은/ // 나의 눈은/ 하늘을 비추는/ // 나의 코는/ 만물의 숨결이 오고 가는/ .

: 이는 탄복을 자아낼만한 시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 존재가 ”, “”, “그리고 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물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생명체만은 아닙니다.

 

: 유기체뿐 아니라, 무기질 역시 생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씀이로군요.

: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기질과 유기체의 구분을 일차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생기론적 유물론이 고려의 대상일 수 있어요. 페미니즘의 물질 이론가, 제인 베넷Jane Bennett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은 걷고 말하는 무기질이다.” 그미는 인간을 생동하는 물질로 규정하면서, 물질을 사물과 에너지가 혼합된 무엇으로 정의 내렸습니다. 인간이 물질에 포함(包涵)되는 게 아니라, 포함(包含)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겸허한 자세로 우리 스스로가 자연의 부분이자 내부임을 깨닫게 되겠지요.

 

8.

: 맨 처음 인용한 송용구 시인의 사람을 닮았다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 , 삼라만상은 인간과 동등한 물질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송 시인의 발상은 무척 신선합니다. 인류세의 시점에서 인간은 흙, 물질 여성적 존재와 연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흙, 물질, 여성성을 지금까지 좌시해 왔습니다. 스위스 출신의 연금술사이자 의사였던 파라켈수스는 천체Macanthropos의 내부를 불카누스Vulcanus라고 명명했고, “인간Anthropos의 오장육부를 아르케우스Archaeus라고 설정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늘의 기운과 인간의 기운은 그런 식으로 상호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파라켈수스는 인간의 건강과 질병을 은하계 행성의 운행과 결부시킨 바 있습니다.

: 그런데 문제는 파라켈수스가 관심을 기울인 대상은 하늘()과 사람()에 국한되어 있군요.

 

: 바로 그 점이 중요해요. 지구와 흙은 스위스 의사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놀라운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의 존재는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도 천체와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인간 중심적 사고가 태동하였지요. 흙과 지구에 해당하는 지령(地靈, chthonische Seele)은 서양의 세계관에서 기껏해야 사악한 존재 내지는 여성의 사악함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마녀로 몰린 여성들이 주로 행했던 일감은 약초에 관한 지식을 섭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해당하는 인류세에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천체도 아니고, 인간도 아닙니다. 오히려 땅, 흙 그리고 지구가 가장 절실한 물질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토본주의의 가치는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정립되어야 합니다. 고대와 중세에 중요한 것이 하늘, 상부, 점성술그리고신학이었다면, 르네상스 이후에 중시된 것은 한마디로 인간, 지상, 연금술그리고 인간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류세를 맞이하여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지구, 하부, 지질학그리고 페미니즘이 아날 수 없습니다.

: , 이제야 토본주의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장시간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