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서로박: (1) 권경업의 시 '꽃은 상처입니다'

필자 (匹子) 2023. 7. 24. 09:15

너: 권경업 시인의 시 「꽃은 상처입니다」를 자세히 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시집 『꽃을 피운 바람의 독백』(전망 2013)에 실려 있습니다. 권 시인의 발표한 수많은 작품 가운데 왜 선생님은 이 작품을 선택하였나요?

: 이 작품은 한마디로 생명체의 사랑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 내지 평화의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시인에 의하면 “신비적 합일unio mystica”, 다시 말해서 암수의 결합으로 귀결되는데, 이 과정에서 생명체에게 순간적 희열과 오랜 아픔을 안겨준다고 합니다. 행복은 순간적이고, 삶의 고통은 연속적으로 이어지지요.

너: 그래서 시인은 “사랑을 쉽게 말하지” 말라고 호소하는군요.

 

: 사랑은 “섬뜩하게 낯선 장검을/ 칼집에서 뽑는 소리”와 관련되기 때문이지요. (「사랑이라 쉽게 말하지 마세요」일부 157쪽) 사실 우리는 사랑에서 “사-랑, 사-르-랑”이라는 의성어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칼집에서 칼을 빼면 "사르랑"하고 소리 나지 않습니까? 사랑의 시니피앙, 다시 말해서 사랑에 동반되는 정서는 때로는 상대방을 피 흘리게 만듭니다. 칼집과 장검은 여기서 제각기 암컷 생명체와 수컷 생명체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너: 그런데 동식물 그리고 사람 가운데 피해당하고 상처 입는 쪽은 대체로 여성 쪽이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여성과 암컷들이 약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성과 암컷은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감내해야 하니까요. 시인은 꽃들도 상처의 고통을 느낀다고 유추하고 있습니다.

 

꽃은 상처입니다

안으로, 안으로 삭이지 못한

희고 붉고 연한 마음의 상처입니다

 

그리움 찾아가던

그 긴 겨울의 여정과 꽃샘잎샘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여린 속 마침내

드러내 보이고 마는 상처입니다

 

꽃이 집니다

쓰다듬고 어루만져야 할 여유도 없이

취밭목 한 그루 산벚나무

홀로이 제 몸의 아픔을 지웁니다

 

: 벌은 바람 타고 날아와서 꽃 속에서 꿀을 찾습니다. 이 와중에 꽃잎을 마구 짓이깁니다. 이러한 아픔의 과정을 통해서 대부분의 꽃은 결실을 맺게 되지요. 그런데 시인은 시간과의 관련성 속에서 꽃의 상처와 아픔을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나: 예리한 관찰이로군요. 꽃, 구체적으로 말해 지리산의 산벚나무는 “겨울의 여정과 꽃샘잎샘”이라는 참을 수 없는 과정을 겪습니다. 봄이 되면 “희고 붉고 연한” 마음을 마침내 드러냅니다. 그것도 생명체의 “그리움”의 과정 속에서 말이지요.

너: 제 3년의 내용은 생명체가 감당해야 하는 유한한 삶의 숙명처럼 느껴집니다. 시인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 아무런 위안도 받지 못한 채 “쓰다듬고 어루만져야 할 여유도 없이” 꽃이 진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적 주제는 어떻게 요약될 수 있을까요?

 

: 작품은 세 가지 관점에서 보다 깊이 있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철학적 관점입니다. 두 번째는 역사적 관점에서 나타난 여성의 상처와 관련되는 사항입니다. 세 번째는 심리적 관점으로서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피해당하는 여성의 존엄성을 되찾는 문제입니다.

너: 그렇다면 사랑과 이별에 관한 철학적 관점은 무엇입니까?

: 네, 모든 생명체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반드시 이별로 끝나게 됩니다. 어쩌면 꽃의 상처는 시간적으로 유한하고, 종족 번식이라는 생명체의 숙명 때문에 발생하는 정서일지도 모릅니다. 다음의 문장을 생각해 보세요. “모든 동물은 교접 후에 쓸쓸함을 느낀다. Omne animal triste post coitum

 

: 아, 이 문장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동독 작가, 모니카 마론Monika Maron의 소설 『슬픈 짐승』에서 이 문장이 나타나지요? 이 말은 섹스 자체를 적대시하는 기독교 사상가 상트 갈레노스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유래했지요?

: 그렇지 않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자신이 아리스토텔레스라고 칭하던, 이른바 가짜-아리스토텔레스는 『문제점들Problemata』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문장이지요. 이것은 나중에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친구였던 빌헬름 플리스Wilhelm Fließ와의 대화에서 멜랑콜리의 이론을 자세히 언급한 바 있습니다. 플리스는 후각과 여성의 오르가슴 반응의 상관관계를 연구했습니다. (Wilhelm Fließ: Die Beziehungen zwischen Nase und weiblichen Geschlechtsorganen (In ihrer biologischen Bedeutung dargestellt). Leipzig und Wien 1897.)

 

: 프로이트의 문헌을 뒤져 보겠습니다. 그런데 교접 후에 쓸쓸함을 느끼는 존재는 비단 동물만은 아니지요?

: 그렇습니다. 시인의 말대로 식물 역시 고통과 상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생명체에 비하면 그리스 신들은 영원한 삶을 누리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경박하고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불사의 존재는 이별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신들의 방탕한 삶, 질투와 미움 그리고 간계 등은 시간적으로 제한되지 않은 지루함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인간의 사랑은 언제나 이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격정적이고, 안타깝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에 의하면 이별을 연습하는 격정적 트레몰로로 이해될 수 있지요.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