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박설호: (1) 흙의 시학. 송용구의 생태시

필자 (匹子) 2023. 6. 21. 10:38

 

(...) 꽃잎에 앉아 있는/ 맑은 물방울 속에서/ 사람의 눈망을을 본다// (...) 바람의 숨결 속에서/ 기쁨을 머금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다// 다사로운 저녁노을 속에서/ 연민을 가득 품은/ 사람의 얼굴이 비쳐 나온다 )송용구: 「사람을 닮았다」 일부)

 

 

1.

凸: 흔히 사람들은 21세기를 “인류세”라고 규정합니다. 이 말은 충적세의 종말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물질 이후의 생태계 파괴, 기후 위기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생존하는 80여억 명의 인간은 이기적으로 수미일관 자연환경을 훼손해 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물질과 자연의 의미, 인간 중심적인 사고와 성장의 문제를 추적해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논의 다음으로 송용구 시인의 생태시 몇 편을 논평해보려고 합니다.

凹: 중요한 주제입니다.

凸: 지금 여기에는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난제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통일 외에도 젊은 노동자의 미래 없는 삶과 노조 탄압, 빈부 차이와 사회보장제도, 꼬여 있는 국제정세,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그러한 난제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고개를 들고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상식을 지닌 분이라면 자연 파괴, 인구 폭발, 미세먼지, 온실 효과로 인한 기후 위기 등과 같은 환경과 생태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凹: 네, 시인들조차도 환경과 생태의 문제를 기껏해야 “불편한 진실”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요. 말하자면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凸: 여러 환경의 정책을 방해하는, 이른바 경제 논리의 논거로군요.

凹: 소시민들은 눈앞의 당면한 이득에 몰두하면서 살아갑니다. 환경 문제와 경제적 여건은 원시안적으로 고찰할 때 서로 엉켜 있는 난제일 것입니다.

 

凸: 말씀하신 대로 경제와 생태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고찰할 때 서로 엉켜 있는 영역입니다. 다석 유영모에 의하면 인간(人)은 말 그대로 “세계의 사이(間)에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합니다. 류영모는 “생태Ökologie”와 “살림Ökonomie”이 “거주지”라는 의미의 “오이코스οἶκος”에서 유래하였음을 지적하고, 지구와 세계가 한얼을 받드는 근본이라고 설명한 바 있지요.

凹: 좋은 지적입니다. 분명한 것은 생태계 파괴, 기후 위기 등이 인간의 과실에 의해서 파생된 인재(人災)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에 대한 일방통행의 시각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유물론의 관점에 의하면 지금까지 사람들은 인간을 능동적인 주체로, 물질을 수동적인 객체로 고찰해 왔습니다. 이제 이러한 시각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凸: 어떤 방식이 있을까요?

凹: 우리는 무엇보다도 인간 본위주의를 냉철하게 고찰해야 합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인간 삶의 가치만을 중시했으며, 이를 위해 자연과 동식물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들로 치부했습니다.

凸: 인간 중심주의 내지는 휴머니즘의 가치를 파괴하거나, 전환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가령 여성과 아이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것을 “착취하는 인간”, 즉 “호모 라피엔스Homo rapiens”의 폭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야 하겠지요?

凹: 그렇습니다.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의 사고방식은 「창세기 」 1장 28절에 그리고 지오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의 「인간의 품위에 관한 연설Oratio de homini dignitate」에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인문학이 아니라, “흙철학”이며, 인본주의가 아니라, “토본주의(土本主義)”라고 여겨집니다.

 

2.

凸: 토본주의라는 말을 처음 듣습니다.

凹: 그것은 현대적 관점의 애니미즘과 관련되는 전문용어입니다. 모성으로서의 어머니(mater)가 바로 흙 내지는 지구를 가리키지요. “토본주의Chthonism”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세기 스위스의 신화학자 요한 야콥 바흐오펜이었습니다. 그는 『모권Das Materiarchat』이라는 책을 집필했는데, 오랫동안 지구와 흙에 관해서 고심했습니다.

凸: 네.

凹: 바흐오펜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여신들을 떠올리면서 모든 풀과 나무에게 결실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늪을 유추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나일강의 물을 머금은 흙 말입니다. 물을 머금은 토양은 스위스 연구자의 뇌리에는 자유롭게 성생활을 누리면서 모든 열매를 생산하는 여성, 특히 창녀로 각인되었지요. 물질(mater)은 세상의 사물을 산출해내는 모체(mother)로 이해되었지요.

 

凸: 지구와 흙을 창녀로 간주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네요. 그밖에 아메리카 인디언들 역시 땅을 그들의 어머니로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凹: 그렇습니다.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토본주의와 관련하여 섬뜩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인간이란 바로 썩어 문드러지는 쓰레기와 같은 존재, 다시 말해서 퇴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인간성Humanities”이 아닌 “부식토성Humusities”을 띈다는 것입니다.

凸: 인간에 대한 혐오적 정서가 물씬 풍기네요.

 

凹: 그러나 극단적인 혐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세계는 생명체가 살아가기 힘든 오염의 파괴적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물질은 마치 보이지 않는 무기력한 존재처럼 보였으나,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의 물질적 욕망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생명체를 병탄(併呑)해나간 존재가 물질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습니다. “지구는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가 얽힌 기괴한 아상블라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凸: 아상블라주는 무슨 뜻이지요?

凹: “아상블라주Assemblage”는 “기괴한 배치”라는 뜻을 지닙니다. 브뤼노 라투르는 “행위자 – 연결망 이론ANT”이론에서 이전에 들뢰즈와 과타리Deleuze & Guattari가 사용했던 조형 예술과 관련되는 그 단어를 다른 맥락에서 원용했습니다. 지구는 라투르에 의하면 인간과 비-인간, 다시 말해서 인간 그리고 생명체와 무기질이 마구 뒤섞인 파탄의 집합체로 인지된다고 합니다.

凸: 아 그건 최근에 인문학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신유물론의 쟁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凹: 네, 인간이 아니라, 비-인간으로 요약되는 미지의 영역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관점에서 사물과 세계를 고찰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자연과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욕구에서 비롯한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는 게 신유물론자들의 공통되는 주장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