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凹: 이는 물에 관한 천문학적 측면과 관련되는데, 솔직히 나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연과학의 방식으로 추론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뫼비우스의 띠”, 혹은 “클라인의 작은 병”을 생각해 보세요. 뫼비우스의 띠에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습니다. 클라인씨의 병의 주둥이는 다시 병 안으로 들어가 있지요.
凸: 그러니까 우리가 거주하는 세상은 삼차원의 공간을 벗어나서,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제한된 영역일 수 있다는 말씀이로군요.
凹: 그렇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 『인터스텔라』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이언스 픽션 영화인데, 주인공은 우주선을 타고 토성 뒷면에 있는 “웜홀Wormhole”을 통해서 은하계로 탈출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5차원의 공간을 활용하여 어른이 된 딸이 사는 영역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을 거둡니다. 이때 외부에서 자극을 가해서 딸이 살고 있는 방의 책 한 권을 아래로 떨어뜨리게 되지요. 5차원의 시공간에서는 안과 밖의 구별이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물은 우리 앞에 존재하는 객체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물속에 들어가 있다고 상정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물속에 포함(包含)되어 있지만, 포함(包涵)되어 있지는 않아요.
凸: 납득하기 어려운데요?
凹: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소금이 물속에 들어 있을 경우 우리는 소금이 물속에 용해되어 있으므로 포함(包含)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숟가락이 물속에 들어가 있을 경우 우리는 숟가락이 그 속에 포함(包涵)되어 있다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凸: 그렇다면 시작품에서 “물 속의 물”은 내부와 외부가 서로 포함(包含)으로 엉켜 있는 영역이라는 말씀이겠군요.
凹: 네, 시인은 바로 이 점을 표현하기 위해서 “물의 살갗”에 머물지 않고, 물 속에 들어가 “돌이 되어 앉는다”고 발언하고 있습니다.
凸: 첫 연을 이해하니, 이어지는 시어의 함의가 파악되는 것 같습니다.
凹: 네, 새로운 공간에서는 일상의 상투적 의미가 사라지기 마련이지요. 물은 시적 자아로 하여금 “닳아진 귀”를 씻게 하고, “주름진 마음”을 활짝 펴게 합니다.
凸: 마지막으로 세 번째 윤리학적 측면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凹: 네, 그것은 물의 특성과 관련됩니다. 물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해주지만, 정작 자신은 더러워집니다. 인간은 항상 부귀영화를 탐하며 높은 곳으로 향하지만,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지 않나요?
凸: 그렇습니다. 시적 자아는 여기서 물이 지닌 본연의 기능을 감지하고, 이를 “얼비치는 그림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凹: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노자의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노자는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 것을 “도(道)”라고 말했습니다.
凸: 좋은 비유로군요. 물이야말로 도의 특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인간은 물을 통해서 깨끗해지고, 생명을 유지하지요. 물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지만, 정작 자신은 인간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凸: 물은 어머니의 손이고, 우리의 유년의 향기이며, 첫사랑의 흔적이겠네요.
凹: 그러한 비유도 가능할 것 같네요. 물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지만, 정작 자신은 우리로부터 아무 것도 얻는 게 없으니까요. 물은 한마디로 “얼비치는 그림자”입니다. 송용구 시인은 물 속에서 어떤 “얼”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물은 생명의 얼과 같다는 것입니다.
凸: 이러한 깨달음이 있기에 우리는 물이라는 자연 주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물 속의 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며, 나아가 물의 “얼비치는 그림자”를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凸: 이어지는 시작품은 송용구 시인의 「귀향」이라는 작품입니다.
오래 지녀왔던 병(病)을
흙 위에 내려놓는다
눈 코 입이 비뚤어진 돌멩이들과 함께
목련나무 발치에 둘러앉아
한 나절 빈 몸뚱이로 빈둥거린다
싱싱한 햇빛의 실타래 풀어
새 옷을 지어 입고
청진기 대신 바람의 손마디로
맥박을 짚어보면
가장 효험 있는 처방을 알게 된다
곁에서 숨 쉬는 돌멩이 중에
가장 미더운 놈의 어깨를 베고 누워
몸뚱이에 풀꽃이 수북이 덮일 때까지
타악기 소리처럼 숨통 들썩이며
낮잠을 들이마신다
두견이 물총새 휘파람새
나를 돌보는 가족이 되어
메마른 혈관 속으로
노래의 피톨을 수혈해준다
내 손의 엽맥(葉脈)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소리
흙을 적신다
凹: 작품을 맨 처음 접하면, 고향으로 돌아오는 시적 자아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땅 속에 파묻히는 한 생명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凸: 한 생명체는 땅에 파묻히면서, 고향으로 되돌아온다는 말씀인데, 이는 목화(木化), 다시 말해서 나무가 되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凹: 그렇지만 이러한 회귀의 과정은 전혀 슬프지도 않고, 고통스러움을 가져다주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나절 빈 몸뚱이로 빈둥”거리면, 생명체는 햇빛으로 “새 옷”을 지어 입습니다. “바람”은 맥박을 짚을 수 있는 “청진기”가 활용되고, 주위의 새들은 “가족”이 됩니다.
凸: 새들은 생명체에게 “노래의 피톨을 수혈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피톨이란 비타민 E K1의 합성체로서 불포화 1급 알코올에 해당하는데, 생물학자의 해명에 의하면 잎사귀에서 생성되는 양분을 식물 전체의 몸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凹: 생물학 연구에 의하면 식물에는 눈이 없지만, 여러 광수용체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가령 식물은 “방향성 청색광 directional blue light”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광수용체가 식물의 성장과 발육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기능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凸: 놀라은 지적이로군요.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어째서 송 시인은 인간을 식물로 묘사했을까요?
凹: 흙의 기능을 강조하려고 한 게 아닐까요? 흙은 동-게르만어에 의하면 “토양”이라는 의미 외에도 행성인 “지구”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여기서도 “인간은 퇴비다.”라는 도나 해러웨이의 토본주의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말하면, 나무는 인간과 거의 유사한 존재라고 합니다. 토본주의야말로 페미니즘의 존재론적 당위성을 마련해주는 사고라고 여겨집니다. 흙과 지구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식물의 결실을 도와줍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이르러 지구의 영혼은 혼탁해지고 썩어가고 있습니다. 생명체는 비-생명체와 뒤섞여서 썩어 문드러지든, 영원히 존속되든 간에 어떤 기이한 “아상블라주”로 남아 있거든요.
凸: 어쩌면 인간과 나무는 생명을 지닌 통일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凹: 바로 그 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대 인도의 철학 경전 『우파니샤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나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니/ 사람의 털은 나뭇잎이요, 피부는 나무껍질이로다.// 그 피부안에 피가 흐르듯/ 나무껍질 안에 수액이 흐른다./ 그러므로 사람이 다치면 피부에서 피가 나고/ 나무가 다치면 껍질에서 진이 나오도다.// 사람의 살은 나무의 속살이며/ 사람의 힘줄은 나무의 가장 안쪽의 속살과 같도다./ 이 둘은 모두 단단하다./ 사람의 뼈가 안에 들은 것처럼/ 나무로 그러하며./ 사람의 골수는 나무의 진과 같다.”
凸: 이미 고대에 “목인 동형(木人同形)”의 철학적 사고가 존재했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凹: 나무, 불, 흙, 금속 그리고 물은 만물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원소들이지만, 금속을 제외하면 나무 (엽록소), 불 (햇빛), 흙 (토양) 물 등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구성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중요한 것으로 인지된 남성적 수직적 이원론에 있습니다. 서양의 이러한 이원론적 사고 속에 근본적인 하자가 도사리고 있지요. 이에 관해서는 본고의 첨부 자료인 「미국문명과 토본주의에 관한 13개의 테제」에서 재론할 것입니다.
凸: 그 점이 바로 송 시인이 추구하는 생명 시학의 발상일 수 있어요. 여기에는 인간이 물질 속에 얼마든지 포함(包含)된다는 시적 상상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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