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박미소의 시(조), "지족 바다"

필자 (匹子) 2022. 1. 26. 11:07

 

경사진 밤 건너온 여자들의 생을 안고 만 마리 물고기가 반짝이며 솟구치듯

달빛에 온몸이 감겨 까무러치는 파도여

 

박미소: 푸른 고서를 앍다, 들꽃세상 2020, 14쪽

 

 

: 박미소 시인의 작품 가운데에는 암송하고 싶은 것들이 참으로 많은데, 선생님께서는 일견 소품과 같이 보이는 「지족 바다」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 「지족 바다『는 짤막한 시조입니다. 짤막하다고 해서 소품으로 취급하면 곤란합니다. 단순성 속에는 놀라운 사상 감정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일견 이 작품은 밤바다에 관한 놀라운 인상을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작품을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시가 독자에게 직관적으로 전해주는 분위기라든가 아우라가 약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살펴볼 시구들이 있어요. 예컨대 “경사진 밤”이라는 표현은 기발한 조합입니다. 어째서 시인은 “경사진”이라는 공간적 의미의 형용사를 “”이라는 시간적 명사와 합치시켰을까요?

: 글쎄요. 함부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특이하고 아름답습니다.

 

: “건너온 여자들”은 너무나 많은 생각을 유추하게 해주는 시어입니다. 대체 여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건너왔단 말일까요? 고향을 떠나온 인간군을 가리킬까요?

: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항을 유추할 수 있지요.

: 시적 화자가 머물고 있는 공간이 섬이라면, 우리는 단순히 육지에서 “건너온” 여성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우리는 단순히 여행객으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 그밖에 우리는 가부장주의의 사회가 도래한 뒤부터의 여성들의 핍박당한 삶을 유추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존재 내지는 망각의 대상이었지요. 이러한 감정은 알을 낳으러 한 곳으로 모이는 “만 마리 물고기”의 이미지와 착종되고 있습니다.

 

: 수많은 물고기는 무엇일까요? 멸치일까요, 아니면 정어리일까요? 확실한 것은 작은 생명체들로서 떼 지어 유연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큰 물고기 혹은 큰 동물에게 포식당하기 때문에 뭉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물고기가 아닐까요?

나: 지족 바다가 어딘지를 유추하면, 우리는 물고기들이 멸치 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의 눈에는 알을 낳기 위해서 “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은 하나의 장관으로 비칩니다. 이러한 모습은 시인에게는 일순간 “만 마리의 생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숙명으로 비칩니다.

 

 

: 이어지는 세 번째 행에서 독자는 놀라울 수밖에 없어요. 앞에서 이야기한 모든 것들이 “파도”에 대한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 그렇습니다. 달빛에 의해 솟구치는 파도의 속살은 일순간의 백색을 띄고 있습니다. 파도는 마치 수많은 멸치 떼처럼 어떤 기쁨으로 솟구치고 있습니다. 파도는 “달빛”에 감겨 까무러치고 있어요. 이러한 상은 오래 지속되는 삶의 슬픔과 고통 속에서 순간적으로 접하게 되는 오르가슴의 상과 같습니다.

: 밤바다의 너울을 이런 식으로 “물고기” 떼의 솟구침으로 비유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기발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목에 관해서 설명해주시지요?

 

: “지족 바다”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 시어입니다. 지족이란 한편으로는 불교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하는 시어입니다. 욕망을 다스리고 분수를 지킬 줄 안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 가운데 네 번째 영역이 지족천이라고 하지요.

: 미륵보살을 모시는 정토 신앙에서 거론되는 이야기지요? “지족 바다”란 욕망을 감내하고 이를 극복할 줄 아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작품을 그런 방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요. 다른 한 편 “지족”은 지명일 수도 있습니다. 경상남남도의 남해에는 지족리가 있습니다. 혹시 “죽방렴”에 관해서 들어보셨나요?

: 금시초문인데요.

: 아는 체해서 죄송합니다만, 남해에 있는 지족 해협은 물살이 세기 때문에 양식업이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부들은 죽방렴이라고 하는 방식으로 물고기를 포획합니다. 일단 대나무를 엮어서 삼각형의 죽방을 만들고 그 안에 둥근 통발을 설치해 놓습니다. 그러면 멸치 떼는 밀물과 썰물이 교차될 때 통발 속에 갇힐 수밖에 없지요. 이게 바로 오래 전부터 내려온 전통 어업의 방식이라고 합니다.

 

: 아 바로 그 때문에 “만 마리 물고기”가 멸치 떼를 가리킨다고 말씀하셨군요.

: 시인은 추측컨대 초여름 남해의 지족리의 발그림자를 걸어간 것 같습니다. 잠들 수 없는 밤에 깨어나 남해의 밤바다를 바라봅니다. 이때의 시상은 작품으로 영글게 됩니다. 창작의 순간은 이처럼 가슴벅찬 감동을 안겨줍니다.

 

경사진 밤 건너온 여자들의 생을 안고 만 마리 물고기가 반짝이며 솟구치듯

달빛에 온몸이 감겨 까무러치는 파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