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성수자의 시, 「꽃대」

필자 (匹子) 2022. 1. 12. 11:09

친구아버지 장례식에 갔다 돌아오는 길

밀리는 차창가로 꽃집이 보인다

꽃집 앞에 차를 멈추고

물끄러미 꽃을 바라본다

어둔 빛 금새 사라지는 환한 기분

꽃피웠던 한 생애 그만의 꽃들은

숱한 나날 속에 얼마나 진지하고 꽃다웠던가

피었던 아름다움을 알고 가는 길

기어이 꽃집 안으로 들어간다

멀쑥이 꽃대 세워 현란한 보라색 또는 순백색으로

피어난 양란이 눈부시다

“아저씨 이 꽃은 이렇게 예쁜데 잎은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보여요?“

“꽃대 세울려고 힘이 들어서 그래요”

그래 그냥 꽃 피는 게 아닌 혼신의 힘을

기울인 잎과 꽃대와 뿌리의 희생이 숨은 것을

잎이 힘들어하는 화분을 안고 나온다

퇴근길 도로는 체증에 시달리고

꽃대를 밀어 올리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불을 켜고 기다린다

 

성수자의 「꽃대」

(실린 곳: 성수자, 잎맥처럼 선명한, 2002, 32 - 33쪽)

 

나: 오늘은 길 찾아 떠나는 구도의 시인, 성수자의 시 「꽃대」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너: 성 시인은 『잎맥처럼 선명한』외에도 1996년에 『안개 밭에서』라는 시집을 출간했는데요. 상당히 많은 시편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꽃대」를 선정하셨지요?

나: 한마디로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시작품 속에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름다움의 가벼움과 생명의 무거움이 동시적으로 뒤엉켜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분명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1) 형식적 측면, (2) 시의 구조와 작품의 배경 설정, (3) 시적 주제, 다시 말해 꽃대를 통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추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나: 첫째로 형식적인 측면에 있어서 「꽃대」는 담시, 즉 발라드Ballade에 해당합니다. 담시는 시학에 있어서 고유의 장르에 해당합니다. 말 그대로 이야기시지요. 서양의 담시는 세 가지 특징, 운율이라는 시적 요소, 스토리라는 산문의 요소 그리고 대화라는 드라마의 특징이 바로 그것입니다. 괴테의 「마왕 Erlkönig」이라는 시를 읽으면, 담시의 특성이 드러납니다. 성 시인의 「꽃대」는 짤막한 시인데도 운율, 이야기 그리고 대화가 모조리 담겨 있어요.

 

너: 발라드라고 해서 나는 발라드, 댄스와 같은 음악의 장르를 연상했지요.ㅎㅎ 두 번째로 시의 배경과 구조의 특징은 어떠한지요? 작품의 배경으로서의 장면을 고려하면,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친구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꽃집을 거쳐 퇴근길 도로로 연결되지 않습니까?

나: 그렇습니다. 독서 시에 우리는 시적 장소가 다음과 같이 이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장례식 -> 2. 꽃집의 꽃들 -> 3. 꽃집 -> 퇴근길 도로.

 

너: 꽃집에서 생명과 살림 속에 숨어 있는 사랑과 희생의 의미를 접하게 되는군요. 뒤이어 시인은 퇴근길 도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불을 켜고” 살아가는 모습을 유추합니다.

나: 그렇습니다, 장례식에서는 죽음이 엄습해 있는데, 시작 자아는 꽃을 바라보면서 일순간 생명과 살림에 관한 밝은 분위기와 조우합니다. 꽃집에서 “화분을 안고” 나온 시인은. 돌아가는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열정과 마주지고 있지요.

 

너: 그렇다면 시적 주제 역시 이러한 구도와 연결되고 있겠지요?

나: 그렇습니다. 시적 자아는 친구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참석한 다음에 귀가하고 있습니다. 어느 꽃집 앞의 꽃들을 바라보니, 가슴이 환하게 뚫리는 것을 느낍니다. 일순간 떠나가신 분의 삶이 다시 한 번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꽃피웠던 한 생애 그만의 꽃들은/ 숱한 나날 속에 얼마나 진지하고 꽃다웠던가”. 시적 자아는 가신 그분의 삶이 어떻게 점철되었는지는 세밀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그게 무척 현란하고 진지했음을 유추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예의 주시해야 하는 것은 “현란한 보라색 또는 순백색으로/ 피어난 양란”이 아니라, “잎과 꽃대와 뿌리”입니다.

 

너: 이것들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나: 나이가 드니까 꽃보다도 잎사귀에 더욱 애착이 가곤 합니다. 꽃은 일순간의 영화로움 그리고 갈망과 상처의 흔적을 담고 있지만, 잎사귀는 계속 이어지는 생명의 잎맥을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시적 자아는 아름다운 꽃 근처에는 힘없는 꽃대가 자리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한 송이 꽃을 만개시키기 위해서 “잎과 꽃대와 뿌리”가 그야말로 “꽃대 세울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는 것을 간파하게 되지요.

너: 아름다움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면, 이를 지탱하고 있는 생명의 에너지는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로군요.

 

나: 네, 한 존재의 삶은 다른 존재의 사랑과 희생에 의해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다음의 사실입니다. 우리의 눈에 띄는 것은 찬란한 꽃일 뿐, 잎사귀, 줄기 그리고 뿌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존재들은 이런 식으로 “가슴에 불을 켜고” 사랑하는 존재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는데, 이는 쉽사리 우리의 눈에 띄지 않아요.

 

너: 재미있는 것은 시작 자아가 장례식장에서 죽음을 바라본 다음에 우연히 꽃집에서 이를 깨닫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 그렇습니다. 비근한 예로 레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Смерть Ивана Ильича』에는 죽음에 관한 의미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주인공 이반은 병들어 죽기 직전에 삶의 어떤 중요한 가치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측은지심과 헌신의 자세를 가리키지요. 이러한 깨달음은 그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도록 작용하지요.

 

너: 인간 삶의 가치가 주위의 불행한 인간에 대한 연민 내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지요?

나: 그렇습니다. 마치 꽃이 “잎과 꽃대와 뿌리”의 보이지 않는 헌신에 의해서 생명력을 유지하듯이, 이반 역시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됩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사랑과 헌신은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보편적인 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퇴근길 도로"에서의 운전자들의 기다림은 시인의 눈에는 오로지 “꽃대를 밀어 올리려는” 열정으로 비치고 있으니까요.

너: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