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이교상의 시, "댓잎이 별의 집이 되는 이유"

필자 (匹子) 2022. 2. 22. 09:03

알아도 어쩌지 못한 상처가 너무 많아

 

으슥한 그림자를 끌고 어디론가 자꾸 도망 다니는 악몽을 꿀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백태 낀 혀로 제 몸 핥아먹고 마음대로 우묵해진 여름 손등으로 문지를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노숙의 풍경들이 나무 그늘 속에 검은 얼굴을 묻고 요란한 매미의 울음소리로 허기를 채울 때 별이 보였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럭무럭 웃자란 가시넝쿨 그 새빨간 거짓을 지울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거리에 버려진 비닐들이 아버지의 서러움으로 느껴질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산을 오르다가 우연히 마주앉은 풀꽃들을 아주 귀하게 읽을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떨쳐내려 할수록 더욱 집요해진 슬픔을 그러안을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봄이면

그 무수한 상처가 반짝반짝

말을 합니다

 

(실린 곳: 이교상, 독경, 들꽃 세상 2020, 43-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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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사설시편 「담양에서 쓴 편지」의 일부이다. 이교상 시인의 시는 절제된 감정을 드러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독 시 분석의 작업을 거부하게 한다. 시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깊은 감흥은 시 분석이라는 학문적 작업을 차단시킨다.

 

아,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점직한 죄송스러움과 죄의식, 핍박당한 순간, 가난과 굶주림, 성장의 아픔, 비닐을 둘러싼 과거의 기억, 슬픔으로 덧난 상처의 흔적들 - 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체득한 과거의 편린들이 아닌가?

 

시인이 어디서 유년의 시절을 보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아이들은 모두 하늘에 떠 있던 별들을 사랑했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별들을 바라보던 그날 밤이 떠오른다. 순간적으로 목이 매여, 한 마디 절규만 남겨야 할까?

 

시인에게 상처의 치유는 댓잎을 닮아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