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1) 타향에서 고향 찾기, 이교상의 연작시 "담양에서 쓰는 편지"

필자 (匹子) 2022. 7. 7. 10:02

1. 문제는 고향을 찾는 일이다.

 

: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교상 시인의 연작시 『담양에서 쓰는 편지』가운데 몇 편을 골라서 논평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연작시는 시집 『독경読経』(들꽃세상, 2020)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수십여 년 동안 탁월한 시조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특히 그의 시집 『시크릿 다이어리』(들꽃, 2015)는 오늘날 시조 창작의 교과서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 하필이면 『담양에서 쓰는 편지』를 선택했는지요?

: 연작시는 한마디로 망각할 수 없는 명작들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새롭게 접하는 자연 속에서 수많은 시적 감정을 찾아냅니다. 강과 나무, 바위와 정경 등은 시인에게 마치 하나의 경전과 같은 시적 소재인 것 같습니다.

 

: 네.

: 우리가 다루게 될 연작시는 타향에서 고향의 본질적 의미를 더듬고 있는데, 이로써 우리의 과거의 흔적 그리고 미래의 고향을 시적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너: 타향에서 고향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일견 모순처럼 들립니다.

 

나: 그런가요? 관점을 달리하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물론 시인이 언제 그리고 얼마나 오래 담양에 머물렀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시인은 담양이라는 지역에서 과거의 고향을 기억하지만, 어떤 더 나은 삶의 공간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새로움으로 중첩된, “습득한 희망,docta spes”을 간직한 고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 선생님께서는 미래의 고향을 염두에 두고 계시지요?

: 그렇습니다. 이교상 시인의 고향을 논할 때 우리는 바로 그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의 고향에 관해서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의 결론부에서 요약한 바 있지요. 고향이라는 주제는 나중에 이교상 시문학의 1. 지리적 의미, 2. 문학적 의미, 3. 심리학적 의미 그리고 4. 철학적 의미 등을 천착할 때 세부적으로 논하게 될 것입니다. 그 전에 그의 작품들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게 급선무일 것 같습니다.

 

2. 「그린내에게」

 

: 그러면 일단 연작시 11편 가운데 두세 편을 논평한 다음에 작품의 주제를 살펴보는 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시 「그린내에게」에서도 이러한 정조는 계속됩니다.

: 네, 작품은 시인의 놀라운 상상을 더듬고 있습니다. 모든 시적 대상은 “인 듯, 아닌 듯”이라는 표현으로 종결되기 때문입니다. 담양에서 조우한 자연은 그 자체 “위대한 잠언”과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떠나간 시간, 사라진 사람들 그리고 남아 있는 기억들을 자연을 통해서 다시 떠올립니다.

 

하늘 없는 그곳에서 당신 지금 행복한가요?

 

겨울을 실은 손수레 힘겹게 끌고 가던 할머니가 오르막에 흘려놓은 거친 숨인 듯, 먼 산에 희끗희끗 쌓인 생각인 듯 아닌 듯, 희망이라 고쳐 써놓고 다시 바라보는 창인 듯, 공중에 몸을 던져 집을 찾아 흘러가는 낮달인 듯 아닌 듯, 욕창褥瘡의 시간 훌훌 벗어던져 망상을 내려놓은 나뭇가지에 날아온 새들이 절절하게 풀어놓은 울음인 듯, 날마다 가볍게 바삭거린 허울 다 삼켜놓고 돋아나는 풀잎인 듯, 며칠 전 골짜기에서 밀려온 꽃샘잎샘 속에서 펄펄펄 내린 춘설인 듯 아닌 듯, 뜬금없는 소문에 화들짝 놀란 산수유 꽃망울 같은 사람들이 부둥켜안은 길인 듯, 내용 없는 형식들 담양에 둥글게 띄워놓고 반짝이는 시의 흣승인 듯 아닌 듯, 먹먹한 세월 깔고 누운 소쇄원 너럭바위마다 그려진 빗살무늬 꿈인 듯

 

보셔요, 저 진경산수 아침이/ 위대한 잠언箴言 아닌가요.

 

너: 시구들은 과거의 체험을 은근히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 그렇습니다. 예컨대 “하늘 없는 그곳”은 힘든 역정과 같습니다. 인생 역정은 언덕을 올라가는 할머니의 “거친 숨”이며, “욕창의 시간”이며, “새들이 절절하게 풀어놓은 울음”과 같습니다. 시인은 “낮달”을 바라보며, 방황하던 시간을 떠올립니다.

 

: 작품을 읽을 때 헨릭 입센의 극시, 『페르 귄트Peer Gynt』가 떠올랐습니다. 주인공 페르 귄트는 고향을 떠나 있다가 나이 들어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자연은 그에게 한편으로는 안온한 즐거움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한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과거의 체험 때문이었지요.

: 좋은 지적이로군요. 페르 귄트는 자신의 삶이 마치 양파와 같다고 하소연하지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삶이라는 양파껍질은 하나씩 벗겨지지만,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다고 푸념을 터뜨리면서 말입니다.

 

: 그렇지만 이교상 시인은 페르 귄트만큼 슬픔을 처절하게 드러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나: 동의합니다. 가령 시인은 그러한 꿈을 “날마다 가볍게 바삭거린 허울”이라고 명명합니다. 그것은 “꽃샘잎샘 속에서” 순간적으로 내린 봄눈처럼 스쳐 지나가는 착상이지만, 독자에게 아름다움과 허망함을 동시적으로 안겨줍니다. 물론 산수유 열매를 바라보고, 마치 동네 이웃처럼 “뜬금없는 소문에 화들짝 놀라”는 것은 일상의 순간적 자극일 수 있지요.

 

: 시인은 눈 덮인 “먼 산”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희끗희끗 쌓인 생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모든 게 막연히 사라진다는 허망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나: 어쩌면 시인은 다음과 같이 성찰했는지 모르지요. 즉 삶에서 충족되지 못한 갈망은 자연 속에 수많은 흔적으로 남아 있으며, 이를 문학 작품 속에 반영하는 게 시인의 사명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너럭바위를 바라보며, 거기에 새겨진 갈망을 “빗살무늬 꿈”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