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스”는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 “오레스테스”는 원래는 4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가멤논”, “무덤가의 희생자들” “복수의 여신들” 그리고 “프로테우스”). 여기서 마지막의 “프로테우스” 편은 앞의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서 씌어졌는데, 안타깝게도 오래 전에 유실되어 오늘날 전해지지는 않는다. 세 편의 작품들은 제각기 네 개의 장면으로 나누어지며, 이 장면들은 사건의 진행상 평행을 이루고 있다. 극작품은 기원전 458년에 아피드나 출신의 크세노클레스 (Xenokles)에 의해서 맨 처음으로 상연되었다고 한다.
일단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해 보자. 트로야에서 귀환한 왕, 아가멤논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오랫동안 그리스를 떠나 있었으므로, 그의 아내, “클뤼티메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와 살고 있었다. 아이기스토스는 남편의 사촌 동생이었다. 그런데 클뤼티메스트라는 하나의 계략을 꾸민다. 즉 남편을 살해하고, 정부인 아이기스토스를 권좌에 올려놓는다. 아들 오레스테스는 이러한 끔찍한 사건을 예의주시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복수극을 저지른다. 즉 어머니, 클뤼티메스트라 그리고 5촌 아저씨인 아이기스토스의 살해가 바로 그 복수극이었다. 오레스테스는 존속 살해범으로 몰린다. 복수의 여신들, 에리뉘엔들은 오레스테스를 찾아 나선다. [상기한 복수의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자주 거론된 바 있다. 호메로스 (Homer)는 “오디세이아”에서 이에 관해 다룬 바 있다. (1권 29행, 3권 255행 이하, 4권 512행 이하, 11권 397행 이하). 나아가 아트리덴 왕가의 “귀향 이야기 (Nostoi)”에서도 이에 관해 언급되고 있다.]
맨 처음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왕과 그의 부하들은 만찬에 참석하여, 거나하게 술에 취해 있었는데, 아이기스토스는 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클뤼티메스트라는 “오디세이”에서 노비로 데리고 온, 트로야의 공주이자 예언녀인 카산드라를 살해한다. [이 내용은 아이스킬로스의 극작품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 핀다로스 (Pindar)는 피티아 제 11편에서, 스테시코로스 (Stesichoros)는 “오레스테스”에서 이를 자세하게 묘사한 바 있다. 두 작가들은 특히 살인을 저지르게 된 내적 동기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스테시코로스의 경우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 이피게니를 제단의 제물로 바친 적이 있다. 그렇기에 클뤼티메스트라는 딸의 목숨을 잃게 한 남편, 아가멤논을 저주하며, 직접 그를 살해한다. 나중에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어머니를 살해한다. 살해 동기는 남편 살해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가령 신 아폴론은 이를 명령했으며, 복수의 여신들, 에리뉘엔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라는 뜻에서 오레스테스에게 활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건의 그럴 듯한 이유로 다루어지고 있다. 죄의 뒤엉킴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처벌 등은 아이스킬로스의 극작품의 극적인 사건으로 나타난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가 그리스 비극에서 수준 높은 작품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특정한 주제를 포괄하는 극적 일원성에 기인한다. 그래, 아이스킬로스는 오레스테스 사건 자체를 세밀하게 다루면서, 극작품의 기본적 골격을 바로 세워놓았다. 가령 “아가멤논”과 “무덤가의 희생자들”은 정확히 어떤 병렬적 구조로 직조되어 있다. 전자에서는 왕녀 (클뤼티메스트라)가 정부 (아이기스토스)와 놀아나서 아가멤논과 카산드라를 죽이려고 하고, 후자에서는 왕자 (오레스테스)와 공주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그들의 어머니와 그미의 정부 (情夫)를 죽이려 한다.
다시 말해 전자의 경우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의기양양하게 귀향한 아가멤논과 그의 노예, 카산드라”는 아직 권력을 지니지 않은 아내에 의해 살해되고, 후자의 경우 권력 찬탈자, 아이기스토스와 클뤼티메스트라는 아직 힘없는 아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남자가 먼저 살해되고, 그 다음에 여자가 살해되는 것도 병렬적이다. 두 사건 이후에 재판이 나란히 거행되는 것도 병렬적이다.
세 번째 작품 “복수의 여신들” 편에서는 상기한 병렬적 구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작품은 어떤 일원적인 요소를 지닌다. 세 작품은 제각기 네 단락의 이야기로 나누어진다. 작품의 첫 번째 대목에는 항상 질문이 제기된다. 아가멤논의 승리와 트로야의 몰락을 알리는 봉화는 언제 나타나는가? (아가멤논 1 - 39행). 아가멤논의 귀환 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258 - 354행). 아가멤논의 무덤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하는가? (무덤의 희생자들 1 - 21행). 오레스테스는 귀국 후에 아버지의 죽음에 어떻게 복수하는가? (무덤의 희생자들 84 - 305행).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로부터 과연 도망칠 수 있는가? (복수의 여신들 1 - 234행).
개별 작품에는 제각기 맨 처음의 판결이 내려진다. 어느 사신은 트로야의 몰락을 확인하고 왕의 귀환을 알린다. (아가멤논 489 - 680). 오레스테스는 아폴론 신의 명령대로 복수를 결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계획을 세운다. (무덤의 희생자들 306 - 584행). 여신 아테네는 오레스테스와 복수의 여신들 사이의 싸움을 주선하고 재판을 소환한다. (복수의 여신들 234 - 489행).
세 작품의 세 번째 장에서는 제각기 궁극적인 결정이 내려진다. 첫 작품에서 누군가 아가멤논과 카산드라를 강제로 왕궁으로 들어가게 한다. 두 번째 작품에서도 누군가 클리튀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강제로 왕궁에 들어가게 한다. 거기서 등장인물들은 모조리 살해당한다. (아가멤논 810 - 974행, 1035 - 1330행), (무덤의 희생자들 652 - 718행, 838 - 934행). 오레스테스는 아테네의 투표로 인해서 찬반을 가릴 수 없게 되자 자유인으로 풀려난다. (복수의 여신들 566 - 777행)
세 작품의 마지막 대목인 제 4장은 제각기 극작품의 결론을 다루고 있다. 이는 제 3장에서 드러난 중요한 사건의 결과이기도 하다. 클뤼티메스트라 그리고 아이기스토스는 아르고스의 노인들 앞에서 자신의 거사가 정당했다고 호소한다. (아가멤논 1372 - 1673행). 마찬가지로 오레스테스는 아르고스의 여자들 앞에서 자신의 복수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을 술회한다. (무덤의 희생자들 973 - 1075행). 이 두 장면은 나중에 세 번째 작품의 법정에서 반복되고 있다. 아테네는 재판 후에 복수의 여신들을 달래준다. 아테네의 바람에 의해서 복수의 여신들은 선한 마음을 지닌 축복의 여신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인간들을 선하게 다스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오레스테스”는 비교적 아이스킬로스의 후기 작품에 속한다. 극작가는 네 개로 나누어진 사건의 진행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결코 경직되지 않은 극적 과정으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묘사는 작품 내에서 어떤 예견 내지는 암시로 나타나고 있다. 가령 클뤼티메스트라는 남편 아가멤논을 붉은 자주색 양탄자 깔린 궁으로 들어오게 한다. 양탄자의 색은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암시하고 있다.
카산드라는 황홀한 환영 속에서 아가멤논과 자신에 대한 살인극을 예견하며, 어머니를 죽이는 오레스테스의 환영을 직시한다. 클뤼티메스트라는 꿈속에서 기이한 용을 낳는다. 이 용은 자신의 젖을 빠는데, 젖은 붉은 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나중에 발생하게 되는 끔찍한 사건에 대한 암시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암시는 아이스킬로스의 이전 작품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은 사건 뿐 아니라, 사건에 대한 성찰을 은밀하게 접할 수 있게 된다.
제반 성찰은 합창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다. 맨 처음의 합창은 “아울리스 (Aulis)”에서의 사건 그리고 극작품의 주요 테마들을 차례로 설명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강요 (신들은 특정 인간에게 무언가 행하기를 요구한다), 내적인 죄의식, 신의 규정에 대한 맹목적인 일탈 행위 그리고 신의 계명에 대한 순응 등이 그것들이다. 가령 법의 여신 디케 (Δικη)의 “고통을 통해서 배워라”라는 계명은 몹시 쓰라리기 이를 데 없다. (아가멤논 250행). 모든 계명의 규칙을 관장하는 자는 제우스신이다. 제우스는 아이스킬로스에게 가장 탁월한 신이지만, 아폴론, 아테네 그리고 저주와 복수의 정령의 어두운 세력도 인간 삶에 관여하고 있다. 그들은 뭍 인간에 의해서 파괴된 디케의 질서를 다시 바로 잡으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가멤논이 속해 있는 아트레우스 왕가는 오래 전부터 어떤 저주에 시달려 왔다. 이 저주는 이후의 세대에서 끊임없이 출현한 것이다. [선왕인 아트레우스는 아들, 펠로프스가 있었는데, 탄탈로스에 의해 살해당한다. 탄탈로스는 아트레우스의 아들을 신의 제물로 내놓기 위해 그를 살해했던 것이다. 이때 아트레우스는 아들의 죽음과 그 살해 동기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동생, 티예스테스의 자식들을 죽여서 미리 신들에게 바친다.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부인, 헬레나는 트로야의 왕자, 파리스와 혼외정사를 맺은 뒤에 트로야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 이피게니를 죽여서 신들에게 바친다.]
사람들은 아트레우스 왕가의 저주를 무조건 맹신하지 않고, 자유로운 결정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드물게 몇몇 사람들이 사악한 영혼의 충동에 의해 이끌릴 뿐이다. 가령 오레스테스가 그러하다. 그는 아폴론 신으로부터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이라고 명령받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명령은 오레스테스의 “착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실제로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의지를 아폴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어머니를 죽인다. 수많은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그 역시 어떤 망령에 사로잡혀 비판적 자의식을 상실한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며,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린다. 이러한 감정은 결론 부분에서 완전히 제거되어 있지 않다. 오레스테스는 오로지 신의 은총을 통해서 자유로운 몸이 된다. [가령 아테네의 투표로 인하여 “가부 동수 (可否同数)”라는 결론에 이르는데, 이는 무죄를 뜻한다.] 신의 은총 행위로써 완전히 제거된 것은 다름 아니라 아트레우스 왕가의 저주이다.
상기한 측면을 고려할 때 극작품의 전체적 주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진다. (1) 아트레우스 왕가에게 내린 저주들과 이로 인한 살인 행위들 (2) 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족의 저주에 기인하는 새로운 살인이라는 최후의 파렴치한 범죄행각 (3) 죄의 굴레로부터의 마지막 행위 그리고 신들에 의한, 모든 것을 화해시키는 법 규정의 재정립 등이 세 단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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