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노동과 나날 (εργα και ήμεραι)”은 6각운, 828행으로 씌어진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신들의 탄생”과 함께 후세에 전해졌다. 헤시오도스는 경건한 마음으로 제우스를 모시는 시인이었다. 또한 호메로스와는 달리 농촌 중심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으며, 자연을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헤시오도스의 작품은 시인이 얼마나 모든 것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성찰하고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상기한 내용을 염두에 둘 때 “노동과 나날”이야말로 “신들의 탄생”을 뛰어넘는 수준 높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헤시오도스의 시는 취약점을 지닌다. 가령 폐쇄적 나열이라든가, 후세 사람들의 가필 정정 등으로 인해 원래의 작품이 손상되었다는 점은 하나의 취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이 다른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들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일까? 그 하나는 시인의 사회비판적인 기본자세이며, 다른 하나는 시골 생활에서의 근심 걱정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동과 나날”을 비관적이고 염세주의적인 작품이라고 무조건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헤시오도스는 시골에서의 비참한 삶을 묘사하는 대신에, 올림포스 신들의 권능을 경건하게 신뢰하며,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 (Δικη)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신들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제우스에 대한 짧은 찬가로 시작된다. 제우스는 세계의 주인이고 법의 수호자이다. (1 - 10행) 말하자면 시인은 맨 처음에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높은 음으로 드러내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리스 문학사에서 맨 처음으로 자신의 형 페르세스가 작품의 수신자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노동과 나날”은 어떤 당면한 계기에 의해서 작품이 씌어졌다. 페르세스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유산을 받았지만, 이를 탕진하고, 거짓 맹세 그리고 뇌물 공여 등을 통해서 동생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한다. (11 - 26행)

 

프롤로그의 두 번째 단락이 찬가에 이어지며, 이때 진실이 공개된다. 이는 통상적 신화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가령 갈등과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등장하지만, 그미는 두 개의 면으로 나뉘어져 있다. 에리스의 선한 부분은 평화로운 경쟁을 수호하지만, 에리스의 사악한 부분은 증오와 투쟁을 부추긴다. 제우스신은 특히 에리스의 선한 부분을 마치 식물 한그루처럼 대지의 품속에 심어 인간들로 하여금 많은 구원을 얻도록 조처하였다. 이는 서사시 주제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 신화 내용이다. 에리스 신화의 내용은 서사시의 곳곳에서 재확인되고 있다. 가령 그것은 페르세스 사건의 구체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어떤 보편적 경험과 경고로 확장되고 있다.

 

페르세스는 사악한 의도에서 비롯한 형제간의 갈등을 그만두어야 한다. 시인은 이러한 결론을 맺으면서, 여신, 디케의 숭고함을 성찰한다. 페르세스는 에리스의 선한 부분에 의해 지지받으며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애를 써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헤시오도스는 시골에서의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올바른 삶을 찬양하였다. 헤시오도스의 묘사는 생기 넘치며, 그의 경고는 명확하고도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시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무척 다양하고, 서술 과정은 찬란하다. 신화적 내용에 대한 설명과 페르세스를 둘러싼 사건의 이야기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전개된다. 가령 시인은 페르세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즉 페르세스는 많은 결실을 가져다주는, 선한 에리스의 뜻을 따라야 하지, 악한 에리스의 뜻을 따라서는 안 된다. (27 - 41행)

 

페르세스를 둘러싼 재판이 진행된다. 사실 심문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시인은 다음의 사실을 첨가한다. 즉 페르세스의 동생이 기대하는 노동 (농사짓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제우스는 “노여운 심장의 영양”을 몰래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가령 위대한 신은 프로메테우스의 범죄를 벌하기 위해서 끔찍한 재앙을 전해줄, 이른바 “판도라”라는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42 - 105행). (이는 “신들의 탄생” 제 521행 이하에서 반복되는 내용이다.) 이로 인하여 “지상에는 재앙이 빈번하고, 인간은 홍수나 범람에 시달리며, 밤 동안에 징병이 인간을 엄습하고, 낮 동안에는 죽는 존재인 인간은 파멸을 맞이한다. (..) 그리하여 제우스의 의지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 번째 신화적 내용은 “역사적” 관점에서 인간 존재의 불행한 운명을 설명해주고 있다. 헤시오도스는 세계를 다섯 시대로 나누고 있다. (106행 - 201행). 가령 인간은 크로노스 (Kronos)가 지배하던 황금의 시대로부터 은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 인류가 살고 있는 철의 시대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아래로 향하는 이러한 길은 네 번째 단계인 신적 영웅들의 시대에서 중지되었다고 한다. “만일 내가 다섯 번째 시기의 남자들의 동시대인으로 살지 않는다면, 나는 이미 그 전에 죽었거나, 아니면 후세에 살고 있으리라.” 이와 관련하여 헤시오도스는 자신의 세계를 우화로 설명한다. 자신이 처한 세계는 “마치 독수리의 발톱에 대해 탄식을 터뜨리는 뻐꾸기”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202 - 2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운명이 결코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페르세스야, 그대는 법을 중시하고, 오만한 마음을 저버려라!” 이러한 문장으로써 제우스와 디케의 위대한 선물이 시작된다. 제우스는 인간 삶의 모든 것을 간파하고, 공로에 따라 파렴치안 인간을 징벌하고, 정의로운 인간에게 축복을 선사해준다. (213 - 285). 정의로움을 행하는 것은 노동하는 일이다. “노동이 아니라 게으름이 굴욕감을 가져다주노라 (...) 주어진 것을 확장하는 자는 끓어오르는 굶주림을 면할 수 있으리라 (...) 만약 너의 마음속에 풍요로움에 대한 의미가 가득 차 있다면, 열심히 일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라. 생산에 대해 생산적으로 활약하라.” (286 - 382행)

 

여기서 형에 대한 동생의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경고는 끝난다. 뒤이어 시인은 농사일의 연륜, 북두칠성의 가라앉음, 논과 밭을 일구는 작업 등에 관해 훌륭하게 묘사한다. (383 - 617행) 또한 작품은 그리스인들의 항해를 묘사하고 있다. 이는 첫 번째 그리스의 식민지 확장의 시기에 해당한다. (618 - 694행) 물론 헤시오도스는 아버지가 들려준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이를 서술하고 있지만, 식민지 쟁탈에 대해서 결코 호의적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헤시오도스는 여러 가지 개별적인 규정들을 열거하며, 이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린다. 가령 결혼, 우정, 손님 대접, 청결과 제식에 관한 문제 등이 그것들이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부분적으로 미신과 다름없는 비합리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695 - 764행)

 

작품 “노동과 나날”은 여러 가지 내용을 무질서하게 집결시켜 놓고 있으며, 수많은 혼란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제자들 혹은 후세 사람들이 원작에 마구 손질한 탓도 무시될 수 없다. 사실 헤시오도스의 작품 속에 나타난 역사 발전에 관한 내용 역시 부분적으로 가필 수정된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이른바 금, 은 그리고 철이라는 “금속”으로 비유한다는 것 자체가 몹시 낯설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시오도스의 기본적 입장이 완전히 훼손되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가필 수정된 부분은 전체 작품 가운데에서 경미하게 발견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