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Y, 오늘은 로마의 시성으로 알려져 있는 베르길리우스 (Vergil, BC. 70 - BC. 19)의 불멸의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다루어보기로 합시다. 베르길리우스는 죽기 직전 12년에 걸쳐 이 작품에 매진하였고,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바로 그 날까지 책상 위에는 원고와 펜이 얹혀져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이네이스”는 위대한 미완성 작품입니다. 친애하는 Y, 나는 미완성 작품을 몹시 사랑합니다. 미완성은 어떤 가능성을 담보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천재성에 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다만 대리석에서 다만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낸 일밖에 없습니다.”이라고 말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완성 작품을 유독 싫어했습니다. 그토록 심혈을 기울인 자신의 노력이 완성을 통해서 끝나는 것을 지켜볼 때의 심정은 아쉬움과 착잡함,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위대한 까닭은 제 3악장과 제 4악장이 개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Y, 당신의 사랑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미완성은 우리에게 어떤 기대감 그리고 가슴 설레는 희망을 안겨주지 않습니까?
다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원래 주인공의 운명적 이야기는 트로야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영웅, 아이네이스는 트로야의 몰락 이후에 살아남은 부족을 이끌고 기원전 5세기에 에트루리아 (이탈리아 중부 지역)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에트루리아를 정복함으로써 라틴 부족 사람들 (현재의 이탈리아)을 해방시킵니다. 친애하는 Y, 로마의 원조가 되는 영웅은 말하자면 몰락한 트로야의 유민인 셈이지요. 로마 사람들이 자신의 위대함을 만 천하에 공개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원조는 어느 몰락한 작은 도시 국가 트로야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목청 높여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더라도 따지고 보면 일본 문화 역시 대 가야의 문화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르길리우스는 당시에 전해 내려오던 문헌들을 토대로 하였습니다. 가령 스테시코로스 (Stesichoros) 그리고 할리카르나소스 출신의 디오니시오스 (Dionysios)의 서사시는 작품의 토대가 되었지요. 맨 처음 라틴어로 영웅을 묘사한 사람은 베르길리우스가 아니라, 그나에우스 나에비우스 (Gnaeus Naevius)였습니다. 나에비우스는 기원전 200년경에 “포에니 전쟁 (Bellus Poenicus)”에서 로마의 문명이 트로야에서 유래하였음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 역사가 티마이오스 (Timaios)의 문헌에서 많은 것을 착안했습니다. 특히 나에비우스는 주인공 아이네이스와 아름다운 여왕, 디도 (Dido) 사이의 사랑과 증오의 관계를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정치적 갈등으로 확장시켜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언급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Y, 위대한 작품은 무에서 그냥 창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불멸의 작품은 원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제반 문헌들에 관한 철저한 사전 지식 이후에 비로소 씌어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작가의 창의력이란 텅 빈 머리에서 그냥 탄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아셔야 할 것입니다. [가령 파우스트 역시 과거의 작품에 없었다면, 명작으로 거듭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르길리우스는 집필 이전에 나에비우스의 서사시 이외에도 크빈투스 에니우스 (Quintus Ennius)의 “연감”, 그 밖의 여러 저술가들의 문헌을 세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M. P. 카토 켄소리우스 (M. P. Cato Censorius), M. 테렌티우스 바로 (M. Terentius Varro) 등과 같은 작가도 있습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작품 내용을 개관해보기로 합시다. 1. 유노 여신은 원래 트로야를 증오하는 여신이었습니다. 그미는 정처 없이 방황하는 “보트 피플”을 모조리 죽이려고, 아이네이스와 그의 사람들에게 폭풍을 안겨줍니다. 이때 주피터는 배를 리비아 지역에 도착하도록 돕습니다.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는 이들을 따뜻하게 영접합니다. 2. 아이네이스는 디도에게 트로야의 멸망 그리고 그가 어떻게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탈출에 성공했는가? 등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3. 아이네이스는 자신의 정처 없는 항해 그리고 육지에서의 방랑 등을 묘사합니다. 4. 디도는 준수한 용모의 멋진 사내, 아이네이스를 처음 보는 순간 뜨거운 감정을 느낍니다. 그것은 사랑의 열기,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피터 신은 두 사람의 사랑을 끝내 방해합니다. 주피터가 아이네이스에게 계속 항해하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디도는 어디론가 항해하려는 주인공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이 때 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임에 대한 증오심으로 돌변합니다. 디도는 아이네이스를 증오하며, 결국 자살합니다.
친애하는 Y, 주인공 역시 디도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대의를 위하여 사적인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장부의 마음을 당신은 잘 이해하시겠지요? 사랑의 상실 때문에 끝내 그녀가 목숨을 끊었을 때 주인공 역시 오장 육부가 쓰려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5. 아이네이스와 그의 사람들은 모든 회한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항해하다가, 마침내 시칠리아 섬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떠난 아이네이스의 아버지, 안치제스를 위하여 즉시 추모극을 개최합니다. 안치제스는 도착 직후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6. 주인공은 아버지를 만나러 지하 세계로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운명 및 후손들의 삶에 관한 예언을 들려줍니다. 친애하는 Y, 안치제스는 평화를 사랑하고 자유를 갈구하는 현명한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풀과 나무를 사랑하고,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7. 이제 베르길리우스는 서사시의 두 번째 부분을 착수합니다. 그는 사랑과 시심을 관장하는 여신 에라토 (Erato)로부터 어떤 필연적인 사명을 전수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아이네이스와 그의 부하들이 라틴 제국에 당도한 뒤의 모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주인공과 그의 부하들은 라틴 제국 사람들과 갈등을 빚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들 사이에 무력적 충돌이 발생합니다. 라틴 제국은 투르누스 지배 하에 있는 루툴러 사람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루툴러 사람들과 라틴 사람들은 아이네이스와 그의 군대를 쫓아내려고 결탁한 것입니다. 이때 주인공은 이들에 맞서서 완강하게 싸웁니다. 어느 날 라틴 제국의 왕은 무술 시합을 개최하여, 자신의 딸, 라비니아를 우승 상품 (?)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미와 결혼하는 위대한 전사는 미래의 제국을 이끌어 가리라고 했습니다. 아이네이스는 이에 응하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Y, 서사시의 줄거리를 계속 들려드리겠습니다. 8. 아이네이스는 적의 수가 많아서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그리하여 그는 팔라틴에 체류하고 있는 오이안더 왕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하여 오이안더의 아들 팔라스는 대군을 이끌고 아이네이스의 편에서 싸우려 합니다. 불의 신, 불카누스는 주인공을 위하여 멋진 문장 (紋章)과 함께 갑옷을 만들어줍니다. [이 문장은 나중에 로마의 전통적 문장으로 사용됩니다.] 9. 루틀러 사람들을 다스리던 투르누스는 아이네이스가 팔라틴으로 떠난 틈을 타서, 그의 함선을 몰래 습격합니다. 이때 트로야에서 이곳까지 동고동락하던 주인공의 부하, 니수스 그리고 오이랄루스가 안타깝게도 야밤에 암살당합니다. 10. 아이네이스는 팔라스와 함께 진영으로 돌아옵니다. 투르누스는 정말로 무술이 뛰어난 힘센 왕이었습니다. 팔라스도 그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는 투르누스와 결투하다가 전사합니다. 팔라스의 죽음에 아이네이스는 분노의 피를 토합니다. 주인공은 군대를 몰고 복수극을 감행합니다. 그는 에트루리아 지방의 왕, 메첸티우스와 그의 아들 라우수스를 살해합니다.
11. 휴전 협정이 발효된 뒤에도 아이네이스 군대와 라틴 제국의 군대 사이에서는 끊임없는 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아이네이스의 부하는 사비니아의 영웅녀, 카밀라를 살해합니다. [그미는 마치 펜테질리아처럼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던 여자였습니다.] 12. 아이네이스와 투르누스는 사생결단으로 결투합니다. 루툴러 사람들은 자신의 왕이 승리하도록 결투의 조건을 어깁니다. 이에 분노한 아이네이스 군대는 즉시 라틴 제국을 침공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이네이스는 투르누스의 가슴에 칼을 꽂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네이스는 젊고 아름다운 공주 라비니아와 결혼하게 됩니다. 친애하는 Y, 영웅이야기는 반대 세력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끔찍합니다. 그러나 당사자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네이스의 신화적 용맹은 그 자체 승리감을 만끽하게 해줍니다. 실제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후세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어떤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친애하는 Y, 서사시가 오늘날까지 칭송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지요? 그것은 세 가지 측면으로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시인은 라틴어를 탁월하게 구사하고 있으며, (2) 줄거리 그리고 작품 배경 구성이 마치 건축학적으로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고, (3) 작품 속에는 신화적 내용에 대한 깊은 신학적 해석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로 베르길리우스는 오비디우스 (Ovid)의 인위적으로 짜 맞춘 서술 기법을 철저히 배제하였습니다. 그의 언어 구사는 루크레티우스 (Lukrez)의 완강한 언어를 뛰어넘을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후세 사람들은 키케로 (Cicero)를 라틴어 산문의 대가로, 베르길리우스를 서사시의 대가로 손꼽았습니다. 둘째로 베르길리우스는 여러 측면에 있어서 호메로스 (Homer)의 두 서사시를 모방 (Imitatio)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방은 호메로스에 대한 베르길리우스의 존경심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베르길리우스는 “일리아드” 그리고 “오디세이”에 나오는 많은 신화적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였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결코 모방으로 단정할 수 없을 정도의 의미와 지조를 그대로 견지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Y, 이제 마지막으로 아이네이스와 디도 사이의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에 관해서 다시 한 번 언급해봅시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언급된 바 있지만, 베르길리우스에 의해서 더욱 세밀하게 묘사되었으며, 더욱더 깊이 있는 내용을 지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아이네이스는 드높은 운명 때문에 디도 곁을 떠나야 합니다. 제 4권에서 주인공은 자살한 뒤 지하 명부에 거주하는 디도의 영혼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는 호메로스의 작품 “오디세이”에서 주인공이 아이아스의 영혼과 만나는 것을 방불케 합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450 - 455행에서 디도의 영혼은 서서히 주인공에게 다가옵니다. 구름 사이로 모습을 내비치는 것으로 미루어 그미는 마치 달의 여신, 디아나를 연상시킵니다. 어쩌면 두 사람의 재회는 두 남매지간의 신들 (아폴로와 디아나)의 상봉과 거의 유사합니다. 제 456 - 460행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미를 떠나야 했다고 호소합니다. 신이 그로 하여금 디도 곁을 떠나게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주인공은 그미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이라도 좋으니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그녀에게 청원합니다. 그렇지만 디도는 이를 거절합니다. 아이네이스는 그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생전에 디도가 애인을 붙잡으려고 애타게 청원했다면, 그미가 죽은 뒤에 주인공은 애인의 영혼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이때 디도는 대리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다가 자신의 전 남편 시카에우스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어두운 숲 속으로 사라집니다. (469 - 477행).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도 이러한 장면은 그대로 연출됩니다. 오디세이는 자신이 아이아스를 자살하게 만들었다고 자책하고 있지만, 아이아스의 영혼은 이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친애하는 Y,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타나는 이 대목의 의미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에 나타나는 이 대목의 의미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베르길리우스는 처음부터 아이네이스와 디도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투적 갈등 문제를 신화적으로 증명해내려고 의도했습니다. 다시 말해 민족 사이의 갈등은 두 남녀의 사랑과 화해의 정신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로마의 시성은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호메로스의 주인공이 단순히 궁금증 때문에 아이아스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면, 베르길리우스의 주인공은 디도와 근본적으로 화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자가 다만 개인적 사적인 정보를 찾아내려고 의도한다면, 후자는 어떤 궁극적인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까요? 그래, 베르길리우스는 세 번에 걸쳐 치러진 전쟁들 (트로야 전쟁, 건국 이전의 전쟁 그리고 포에니 전쟁)의 위협 내지 재앙의 숙명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위하여, 주인공으로 하여금 사랑하던 임의 영혼과 상봉하게 했습니다. 이는 그 자체 놀라운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Y, 이러한 시도를 고려할 때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그 자체 민족 간의 평화를 지향하는 작품입니다. 이 순간 나의 뇌리에는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i)”이 떠오릅니다. [에밀 아자르는 가명으로서 1980년 12월에 자살한 소설가 로맹 가리를 가리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독살 당할 뻔 했던 유대인 여자, 로자 아줌마는 팔레스티나 출신의 작은 남자아이, 모모를 친아들처럼 키웁니다. 이 작품은 두 개의 다른 민족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번지고 있던 70년대에 발표되어, 프랑스의 권위 있는 콩쿠르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증오하는 두 민족 사이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와 모모의 관계 - 그것은 비단 “자기 앞의 생”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독일의 위대한 극작가 레싱은 7년 전쟁을 야기했던 프로이센과 작센 두 민족의 분노와 증오의 관계를 화해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쓴 작품이 바로 “민나 폰 바른헬름”이 아니던가요? 작센 출신의 여자 민나 그리고 프로이센 출신의 텔하임 대령 사이의 관계는 다른 민족 간의 갈등을 사랑으로 해소하려는 인간애에서 비롯한 작품입니다. 이는 “자기 앞의 생”의 테마이며, 아울러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주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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