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필자 (匹子) 2019. 3. 3. 11:51

 

친애하는 K, 오늘은 어제에 이어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당신에게 들려줄까 합니다. 소포클레스 (BC. 497 - 406)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인데, 기원전 401년 손자, 소포클레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소포클레스는 테베의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를 소재로 하여 다시금 극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이미 20년 전에 그는 불후의 명작, “오이디푸스 왕”을 창조한 바 있습니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앞의 작품에 비해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영국의 작가 T. S. 엘리어트의 극작품 “정당한 수상”을 논외로 한다면 말입니다.-


같은 소재로 소포클레스가 다시 극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당시의 역사적 사건 때문입니다. 기원 전 407년에 아테네 기병대는 히피오스 콜로노스라는 지역에서 진군해오는 테베 기병대를 격파하였다고 합니다. 콜로노스 지역에는 오이디푸스 왕의 묘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극작가는 전투의 승리를 오이디푸스와 결부시키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작품 내에서 다음의 내용이 자주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즉 도시 아테네는 오랫동안 영광을 누렸고, 눈멀고 나이든 오이디푸스에게 망명과 휴식처를 제공했다는 내용 말입니다. (특히 1518행 이하를 참고하세요.) 상기한 내용은 작품을 쓰게 된 여러 가지 동기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친애하는 K, 당신도 아시다시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극작가가 행한 최후의 노래에 해당합니다. 90세에 이른 소포클레스는 생의 마지막에 자신이 살았던 아테네 그리고 자신의 고향 콜로노스 (그곳은 콜로노스 아고라이오스입니다.) 등을 찬양하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극작가가 거주하던 곳과 오이디푸스가 묻힌 곳은 우연하게도 일치합니다.


두 번째의 오이디푸스 비극은 첫 번째의 것과는 달리 조용한 주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테베의 지배자, 오이디푸스는 평생 수많은 재앙을 체험해야 했습니다. 신의 뜻에 따르면서, 오랜 방랑 끝에 거지가 됩니다. 거지 오이디푸스는 아테네 근처에서 저주와 복수의 여신들, 에리뉘엔들의 도움으로 그들의 작은 숲에서 휴식하며, 내적인 평화를 찾습니다. (에리뉘엔들은 아이스킬로스의 작품 “오레스테스” 3부작에 등장한 바 있지요.) 이때 오이디푸스는 비밀스러운 상황에서 신들에게 소환됩니다.


소포클레스는 신들의 비난을 극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두 가지의 예술적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 하나는 신화를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오이디푸스 왕” 그리고 “안티고네”와는 정반대로 묘사하는 방식이지요. 이를테면 오이디푸스는 권력에서 물러난 뒤 딸이자 여동생, 안티고네와 함께 나라에서 쫓겨납니다. 자신의 두 아들 그리고 사위인 크레온의 추격을 당합니다. 그러니까 오이디푸스의 딸들은 크레온의 보호 하에 있지는 않습니다. 이는 주인공과 함께 황무지로 향해서 떠나도록 극작품을 꾸미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오이디푸스가 아티카에 당도한다는 내용은 새로운 것입니다. -앞의 작품,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다만 키타이론 산 (山)만 언급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로써 극작가는 두개의 신화적 장소를 내세우면서 극적 긴장감을 유발시킵니다.


테베에 있는 오이디푸스 후계자들은 두 파로 나뉘어서 내전 속에 휩싸입니다. 즉 크레온 왕과 오이디푸스의 아들, 에테오클레스가 한쪽 부류라면, 오이디푸스의 다른 아들, 폴리나이케스는 다른 한쪽 부류입니다. 두 그룹은 서로 피비린내 나게 싸웁니다. 여기서 신들은 다음과 같이 예언을 내립니다. 두 파 가운데 백발의 오이디푸스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쪽이 최종적으로 승리를 구가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극작가는 이렇게 작품을 설정함으로써 여러 가지 기술적인 형상화에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두 개의 대립되는 파를 설정함으로써 지리멸렬한 기본적 이야기에 흥미를 불어넣습니다.


맨 처음에 (1 - 665행) 오이디푸스는 저주와 복수의 여신들이 거주하는 작은 숲에서 휴식을 찾습니다. 처음에 콜로노스 사람들은 그가 이 지역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거절합니다. 그렇지만 이곳을 다스리는 왕, 테세우스의 동의 하에 주인공은 콜로노스에 거주할 수 있게 됩니다. 아테네의 왕은 아티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인간적 따뜻함을 지니고 있지요. -테세우스의 이러한 인간적 면모는 에우리피데스 (Euripides)의 “헤라클레스”에서도 묘사된 바 있습니다.- 그는 오이디푸스의 입국을 허용할 뿐 아니라, 신변의 안전까지 보장해 줍니다.


다음 장면 (720 - 1043행)에서 정말로 주인공에게 위험이 찾아옵니다. 크레온이 나타나 오이디푸스를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크레온 왕의 어투는 처음에는 공손하지만, 나중에는 과히 폭력적으로 드러납니다. 오이디푸스가 크레온과 함께 가기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간에 오이디푸스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계략을 꾸밉니다. 가령 주인공의 두 딸이자 여동생인, 안티고네 그리고 이스메네를 납치하는 게 바로 그 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크레온의 이러한 간교한 계획은 테세우스의 중재로 결국 실패로 돌아갑니다. 테세우스는 납치된 주인공의 두 딸을 찾아서 주인공에게 되돌려줍니다.


친애하는 K, 인간이란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법이지요? 오이디푸스가 그러했습니다. 이어지는 장면 (1096 - 1210행)에서 크레온 왕의 적, 폴리나이케스가 등장합니다. 폴리나이케스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의 출현으로써 다시금 똑같은 위기가 반복됩니다. 오이디푸스는 위협당하고 있으며, 테세우스는 그의 안전을 돌봅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기본 유형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뒤집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과거에 주인공에게서 권력을 빼앗은 자들은 부탁하는 비굴한 인간으로서 등장하고, 위협당하는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비록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잠재적인 구원자의 역할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은 아들이 함께 가자고 애걸하지만, 이를 거절합니다. 폴리나이케스는 오이디푸스에게 아들이 아니라, 적대적 태도를 취했던 다른 편의 권력자였던 것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저주의 말을 터뜨리며, 두 아들 모두 몰락하게 되리라고 예언합니다. 남매 (안티고네와 폴리나이케스)가 작별시에 나누는 대화는 소포클레스의 다른 작품 “안티고네”를 연상시킵니다. 결국 맨 처음에 극작가가 암시했던 내용은 유효하게 됩니다. 즉 오이디푸스는 세상을 떠나 신의 품으로 귀의합니다. (1447 - 1555행.)  

 

여기서 주인공의 특성은 어떠할까요? 콜로노스에서의 늙은 오이디푸스는 장년의 오이디푸스 왕과 유형적으로 거의 일치되고 있습니다. 소포클레스는 두 작품의 세부적 사항을 치밀하게 정확히 묘사합니다. 오이디푸스는 첫 작품에서는 재앙을 찾아 나서지만, 둘째 작품에서는 구원을 찾아 나섭니다.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특히 둘째 작품에서 소포클레스는 주인공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즉 오이디푸스는 아무런 죄 없이 행동합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그는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행할 뿐입니다.

 

 

참고문헌: 임철규: 그리스 비극

복도훈: 눈 먼 자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