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루신데』를 살펴보기 전에, 두 명의 여성의 삶을 언급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도로테아 슐레겔과 카롤리네 레싱이 바로 그 여성들입니다. 두 여인은 작품의 집필 뿐만 아니라, 독일 낭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영혼들입니다.
도로테아 슐레겔은 1764년에 원래 독일의 계몽주의자인 모제스 멘델스존의 둘째 딸로서 베를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유대인의 학문과 전통을 받으면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미는 낭만주의 음악가 멘델스존의 고모인 셈입니다. 도로테아의 나이 불과 18세가 되던 1783년에 도로테아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자신보다 열 살이나 나이 많은 유대인 상인인 시몬 바이트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미는 아들을 네 명 낳았는데, 두 명은 죽고, 요나스와 필립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미의 두 아들은 나중에 화가 내지는 화구상으로 이름을 떨칩니다. 도로테아는 영리하고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1797년 7월에 그미는 베를린의 어느 살롱에서 독일 낭만주의의 이론적 틀을 쌓게 될 프리드리히 슐레겔을 사귀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자신보다 8살이나 나이 많은 유부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도로테아 역시 난생 처음으로 아름다운 남자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초상화 사진이 이상하게 그려졌는지는 몰라도 몸이 불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 후 1799년 1월에 도로테아는 남편과 이혼하게 됩니다. 유대교에 의하면 이혼하려는 유대인 여자는 더 이상 다시 결혼할 수 없으며, 세례를 받을 수도 없고, 자식들에게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요구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도로테아 슐레겔은 이러한 약속을 지키겠노라고 서약한 뒤에 남편인 바이트와 이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로테아는 이 가운데 한 가지 약속을 과감하게 깨뜨립니다. 유대인 여성에게 엄격한 유대교의 관습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기독교로 개종해버린 게 바로 그것입니다. 그 후에 그미는 프리드리히와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합니다. 1799년 그미는 프리드리히 슐레겔 그리고 빌헬름 슐레겔 그리고 그의 아내 카롤리네와 함께 예나로 이주합니다. 그들은 예나에서 낭만주의 문학 운동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1829년 남편 프리드리히가 재산 한 푼 남기지 않고 혈혈단신 세상을 떠났을 때, 그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거주하는 아들 필립에게 가서 함께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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