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회심리론

결혼 이야기, 혹은 루신데 (6)

필자 (匹子) 2018. 8. 6. 14:22

작품은 슐레겔이 남긴 유일한 소설로서,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여성에 관한 논문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작가의 관심은 전인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여성의 유형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슐레겔은 연애가 결혼이며, 결혼이 연애라고 주장합니다. 남자는 사랑을 사랑하고, 여성은 남자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여성은 이로써 사랑을 깊이, 더욱 강렬하게 체득하지만,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은 역지사지의 자세로 다른 성의 입장에서 자신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Bildergebnis für lucinde schlegel

 

슐레겔은 연애와 결혼을 동일하게 생각하지만, 예리하게 투시하면 우리는 연애와 결혼이 기능상 서로 다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봉건 사회가 18세기말까지 부인과 연인의 기능을 엄격하게 구분해 온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슐레겔이 강조하는 것은 여성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를테면 “루신데”는 (출산, 육아, 가사 등과 같은) 여성의 일감을 미리 규정하고 남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봉건적 여성상에 반기를 듭니다. 19세기에 이르러 결혼한 여성들은 자식을 출산하고 시민사회의 직책을 수행할 뿐 아니라, 에로틱한 성적 향유를 행하는 연인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의 여성들이 행하던 의무 사항들에 대해 노여움을 표명합니다. 고대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오로지 남성과 국가의 도구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여성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를 위해서 적극적 태도를 취하는 주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슐레겔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의 입장에서 주어진 보편적인 결혼생활을 역으로 투시했을 뿐, 사회적 금기, 즉 시민사회의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라는 장애물을 노골적으로 문제 삼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작가는 시민사회의 결혼이라는 가부장적 장치에 대해서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고, 다만 사랑에 대한 여성의 적극적 개입과 실천을 미화하였을 뿐입니다. 이로써 드러난 것은 시민사회의 사랑의 주체로서의 여성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이 추구하는 사랑의 이상이 어떻게 여성의 본질적 지위와 관련되며, 차제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슐레겔의 여성상은 결국 사회적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라는 틀 내에 국한되는 것이었고, 결국 남성의 완전한 여성 소유에 그럴듯한 빌미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슐레겔이 미화한 적극적인 여성상은 여성들에게 가정주부나, 창녀냐? 하는 두 가지 직분 가운데 양자택일을 강요했던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19세기의 여성들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사랑의 객체”로 살아갈 것을 사회적으로 강요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한편 슐레겔이 추적한 시민사회의 사랑과 결혼의 이상은 19세기 유럽의 남성들에게는 어떤 이중적 의미를 안겨주게 됩니다. 그 하나는 남자들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결혼이라는 제도 내에서 충족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그들로 하여금 암묵적으로 혼외정사를 즐기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시민 사회의 이중적인 성도덕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