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테오도르 슈토름

필자 (匹子) 2021. 11. 8. 09:24

 

 

테오도르 슈토름 (1817 - 1888)은 북부 독일의 소설가입니다. 1817년 그는 북독의 후줌에서 법률가 요한 C 슈토름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집은 부유한 편이라서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슈토름은 단편 장편 등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여 1842년부터 1853년까지 후줌에서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후줌은 북독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이곳에는 휴양 시설이 즐비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서해처럼 갯벌이 유명합니다.  

 

 

 

후줌에 있는 테오도르 슈토름의 생가. 1층에는 상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년이 되어 슈토름은 평생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일곱명의 자식을 키웠기 때문입니다.1864년부터 1880년까지 독일 덴마크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여, 그는 산지기 일을 자청해서 맡아서 전쟁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비교적 많은 작품들이 탄생하였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에 있는 슈토름 문학 박물관. 여기에는 친필 원고 그리고 그가 사용했던 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석판 처마가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슈토름은 1837년부터 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당시에 프로이센과 덴마크 사이에는 국경선이 명확히 그어지지 않았습니다. 슈토름은 덴마크에 대해 호의를 품지 않았으며, 스스로 독일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줌에 위치한 테오도르 슈토름 문학 박물관. 우리나라에도 많은 문학 박물관이 세워져서 예술가를 기리는 축제가 개최되면 좋겠습니다.

 

 

 

슈토름은 베를린 그리고 킬 등지에서 법률가로 성공을 걷기 위해서 공부하였습니다. 이때 역사가 테오도르 몸젠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1849년 후줌으로 돌아와서 법률 사무소를 개설하였습니다. 그해에 사촌 누이였던 콘스탄체와 결혼하였습니다. 독일에서는 200년 전에 이미 사촌과의 결혼이 가능했습니다. 우리 나라도 사촌끼리 결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은 후줌에 있는 슈토름 문학관의 내부 모습입니다. 슈토름이 사용하던 가구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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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체 슈토름 (1825 - 1865). 그미는 4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의 사진은 하일리겐슈타트입니다. 이 소도시는 중부 독일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슈토름은 자주 이곳에서 집필에 몰두하곤 하였습니다. 소도시의 모습이 무척 정취있게 느껴집니다. 슈토름의 아내 콘스탄체는 일곱 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3남4녀) 그런데 아내는 일곱 번째 딸 게르트루트를 낳다가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고 맙니다. 

 

 

 

사진은 삼색 제비꽃을 가리킵니다. 아름다우면서 약간 헝클린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삼색 제비꽃의 색은 세 가지입니다. 무엇인가요? ㅋㅋ 삼색 제비꽃 Viola tricolor 는 "거친 계모"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습니다.

 

 

 

1865년 슈토름은 일곱 아이들을 혼자 키우다가 이듬해 도로테아 옌젠이라는 여성과 재혼했습니다. 슈토름은 48세였고, 옌젠은 38세였습니다. 재혼 부부는 여러 가지 갈등을 겪었습니다. 일곱 명의 의붓자식을 키우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1868년 도로테아 옌젠은 딸 프리드리케를 출산합니다. 하일리겐슈타트에 서 있는 테오도르 슈토름 동상입니다..

 

 

 

후줌은 북부 독일의 항구입니다. 이곳은 항구 도시의 휴양지로 환영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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