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로베르트 무질

필자 (匹子) 2022. 1. 19. 11:07

 

 

 

 

"헤르만 브로흐 그리고 로베르트 무질이 없으면, 오스트리아 문학도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 정도로 무질이 오스트리아 문학에 기여한 바는 큽니다. 로베르트 무질은 1880년 오스트리아의 클라겐푸르트에서 공대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권고로 그는 오스트리아의 군사아카데미에 다녔으며, 이곳에서 기계 공학을 공부하여 엔지니어 자격 시험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23세가 되는 시기까지 그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행하는 범생이 아들이었습니다.

 

 

 

 

 

사진은 클라겐푸르트에 위치한 로베르트 무질의 생가입니다. "Am 6. 11 1880 wurde in diesem Haus der Dichter Robert Musil geboren." 이렇듯 작가는 생전에는 부와 명성을 누리지 못하다가, 죽은 뒤에 자신의 이름을 세인에게 알립니다. ㅠㅠ

 

 

 

 

 

 

 

클라겐푸르트는 오스트리아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남쪽에는 알프스 산맥이 솟구쳐 있습니다. 클라겐푸르트에서는 매년 6월 말에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 대회가 개최됩니다. 3일 동안에 걸쳐 젊은 작가들이 참가하여 자신의 신작을 낭독하는데, 이때 심사위원들이 심도 있게 토론하여 이들의 작품 가운데 훌륭한 작품을 선정합니다. 젊은 작가들 가운데 여러 명이 문학 상을 수상합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은 1977년에 제정되었는데,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등용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 매년 6월 말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모든 젊은 작가들 가운데 제 1차로 선정된 14명의 작가들은 발표되지 않은 산문 작품을 약 25분 동안 낭독합니다. 작품의 전문 (全文)일 수 있고 일부일 수도 있습니다. 청중과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청취한 다음에 작품의 질을 평가합니다. 2008년부터 심사위원의 수는 7 명으로 정해졌습니다.  상금은 25.000 유로입니다. (3천 700만원 정도) 사진에는 심사위원의 수가 아홉 명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2005년에 찍은 것입니다.

 

 

 

 

 

클라겐푸르트의 시내의 모습입니다. 소도시이지만 참 아름답습니다. 클라겐푸르트는 문학 도시로 알려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무질, 바흐만 그리고 라반트라는 걸출한 시인 소설가들이 이곳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클라겐푸르트의 시내 한 복판의 정경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산맥은 참으로 멋집니다.

 

 

 

 

 

클라겐푸르트의 시내에 위치한 명물, " Lindwurm"의 모습입니다. 용은 클라겐푸르트의 상징물과 같습니다. 오토 랑크 Otto Rankd의 신화 분석에 의하면 용은 무시무시한 존재로서, 항상 영웅의 "연적 Nebenbuhler"을 가리킵니다. 영웅이 용을 죽이는 것은 꿈이 그리는 공주를 차지하기 위한 사전 공작으로 이해됩니다. 동화 그리고 신화에 의하면 영웅은 용을 물리친 뒤에 피를 마시고, 꿈에 그리던 공주를 구출합니다. 이는 사랑 (짝짓기)를 갈구하는 모든 수컷의 행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클라겐푸르트에 있는 뵈르터 호수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렇듯 알프스 산맥의 입구에는 스위스든 오스트리아든 간에 아름다운 호수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산맥이 수려하므로 사이 사이에 물이 고여 호수가 형성되지요.

 

 

 

 

 

로베르트 무질은 1903년에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베를린 대학교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부전공으로 선택한 과목은 물리학이었습니다. 물론 기계공학을 공부한 바 있는 그로서는 비교적 공부하기가 용이한 과목인 물리학을 선택하였지만, 이는 나중에 현실에 대한 작가의 관찰력을 심화시키는 데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그의 관심사는 주어진 현실로 향할 뿐 아니라, 가상적 현실 (무의식 속의)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1900년에 발표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Traumdeutung"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어째서 20세기 초의 장편 소설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이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의 PPT 자료에서 설명될 것입니다.

 

의식의 흐름.pptx

 

 

 

 

 

 

위의 도표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자아의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자아는 항상 내적으로 두 가지 사항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그 하나는 사회적 계율 내지 의무로 행해야 하는 도덕적 강령인 초자아 (Super-ego)이며, 다른 하나는 내적인 본능과 충동에 의해서 파생된 이드 (Id)입니다. 의무로서의 강령으로서의 초자아 그리고 본능적 욕구로서의 "이드"로 인하여 인간은 언제나 상반된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오관은 무질에 의하면 인간 삶의 모든 것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한게성을 지닙니다. 인간에게는 감각 외에도 자신의 상상을 통해서 주어진 현실 외에도 다른 현실을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합니다. 무질에게 현실이란 두 가지 의미로 구분됩니다. 그 하나는 현실적인 의미 Realitätssinn이고, 다른 하나는 가상 의미 Möglichkeitssinn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주어진 현실 외에도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또 다른 현실에 의존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로베르트 무질은 자신의 소설 "어린 퇴를레스의 혼란"을 발표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습니다. 이 작품 속에는 주어진 관습 도덕 그리고 법 속에서 젊은 영혼이 얼마나 고통스러움을 당하다가 끝내 불행을 맛보는가? 하는 사항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인간 개인은 사회와 국가 그리고 권위주의의 질서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질은 이를 지적하기 위하여 동성 연애, 학교 폭력 등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어린 퇴를레스의 혼란은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에 의해서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다음을 클릭하면, 영화의 일부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Oz_RsCiz6Ns

 

 

 

 

로베르트 무질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체험하였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예비 장교로 근무하여 국가로부터 무공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섬세한 심성의 소유자인 무질은 전체주의 국가의 폭력 그리고 폭력이 자행되는 정치판을 혐오하였습니다. 이로써 모든 정치적 야망을 저버리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다섯 시기로 요약하였습니다. 1. 전쟁 전의 시기, 2. 전쟁 시기 (1차 세계대전), 3. 전쟁 후의 시기, 4. 전쟁 전의 시기, 5. 전쟁의 시기 (제 2차 세계대전)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어느 건물, 무질은 1921년에서 1938년까지 빈의 라주모프스키 가 20에 있는 이 건물에서 살았습니다. 이 시기에 무질은 많은 글을 집필하였습니다. 소설과 에세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무질의 책은 히틀러 치하에서 금서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의 문학은 체제파괴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었습니다. 1938년에 무질은 아내와 함께 스위스로 망명을 떠납니다.

 

 

 

로베르트 무질의 대표작 "특성 없는 남자"의 표지입니다. 이 작품은 도합 6000 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으로서 줄거리 요약이 무척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에피소드가 삽입되어, 일관된 줄거리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울리히는 수학을 전공한 기술자입니다. 얼마 전에 장교로 군 복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1913년 8월에 모든 일을 접고 약 1년간 여행을 떠납니다. 아버지는 사촌 누이의 회사에서 일하라고 하지만, 주인공은 이를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사촌 누이의 일터는 오스트리아 정치가들과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대 사회의 "위기"가 "학문" 그리고 "영혼" 사이의 커다란 간극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두 개의 영역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20세기 유럽 시민 사회의 병적 징후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울리히는 주어진 현실과 가능성의 현실을 제각기 축조합니다. 전자는 실제 현실이며, 후자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 세계의 현실입니다. 

 

 

 

 

 

사진은 일반 부부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왼쪽의 아내는 오른쪽의 남편에게 제발 높은 사람에게 비위를 맟추면서 경제적 수입을 늘이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을 벌기 위하여 높은 사람에게 고개 숙이는 것을 끔찍한 수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주인공 울리히 역시 구걸하며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는 오랫 동안 집을 떠나 타향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황급히 오스트리아의 고향 마을로 향합니다. 그때 울리히는 자신보다 다섯 살 나이어린 여동생 아가테를 처음으로 만납니다. 울리히는 아름다운 여인 아가테에게서 묘한 애욕을 느낍니다.

 

 

 

 

울리히는 자신이 두 개의 분열된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것을 느낍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는 아가테와의 사랑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남매 사이의 근친상간 Inzest으로 이루어집니다. 작가는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남매 사이의 사랑을 20세기 "병든 유럽의 현실에 대한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울리히의 친구 발터는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입니다. 그는 국가의 미래가 어떻게 되어도 자신만 잘 살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발터는 주인공 울리히를 "특성 없는 사내"라고 심각하게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주어진 현실에서 능숙하게 살아가는 인간이 아니라, 체제파괴적인 몽상가의 삶을 고수하기 때문입니다. 

 

 

 

 

 

 

무질은 20세기 유럽이라는 병든 시민 사회의 몰골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주인공 울리히의 애정 행각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의 친구 발터에게는 클라리세라는 아내가 있습니다. 클라리세는 질서 보다도 자유를, 정상인 보다는 예술적 삶을 추구하는 여자입니다. 그미는 니체 그리고 클라게스의 퇴폐적인 글을 즐겨 읽습니다. 클라리세는 남편 발터와의 동침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그미는 주인공 울리히를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미는 울리히와 동침하여 그의 아기를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를 거절합니다. 울리히에게는 보나데아라는 또 다른 여성이 존재합니다. 무질은 보나데아를 통해서 주인공의 성적 열망과 도덕 사이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특성 없는 남자"는 유럽의 병리 현살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이를 남녀의 근친상간의 삶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사진은 클라겐푸르트에 있는 로베르트 무질 문학관의 전경을 보여줍니다. 문학관 앞에는 오스트리아 문학을 빛낸 세 명의 작가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로베르트 무질이, 중간에는 잉게보르크 바흐만이, 왼쪽에는 시인 크리스티네 라반트의 사진이 있습니다. 크리스티네 라반트 (1915 - 1973)는 귀머거리 시인으로서 우리나라의 문둥이 시인, 한하운을 방불케 합니다.

 

 

 

라반트는 오스트리아의 그로스 에델링에서 광부의 아홉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선병질 (腺病質)로 인해 유년 시절 열병과 화농 증세 등으로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1921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거의 병원에서 지냈습니다. 라반트는 혼자 걸을 수도, 들을 수도 없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였습니다. 1930년에 중이염이 발작하여, 거의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1931년 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혔으나, 그미는 수채화에 몰두하여, 이를 어느 정도 극복합니다. 나중에 시력마저 상실합니다. 이때 소설을 써서 그라츠에 있는 라이캄 출판사에 보냈으나, 거절당합니다. 이때 라반트는 그때까지 창조한 모든 습작품을 불태워버립니다. 1933년 심한 우울증으로 클라겐푸르트 정신요양소에 입원합니다. 그미는 남매의 도움으로 살면서, 뜨개질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자신의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게 해준 것은 깊은 신앙심 그리고 시쓰기였습니다. 시쓰기는 문학 치료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시인 한하운 (1919 - 1975)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는 나병을 앓으면서 훌륭한 시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흉칙하게 보이는 얼굴 아래에 숨어 있는 순수한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한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 한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나의 얼굴/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시장끼냐// 도대체 울음이란 얼마나/ 짓궂게 왔다가는 포만증 (飽滿症)이냐" 한하운의 시 자화상 가운데 일부.

 

 

 

 

무질은 1942년에 스위스에서 가난과 고독 속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말년에 그는 어느 독지가의 지원으로 힘든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무질이 사망한 뒤에 그의 문학 작품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사진은 제네바의 공원에 위치한 로베르트 무질의 기념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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