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귄터 쿠네르트

필자 (匹子) 2021. 10. 29. 11:56

 

 

 

귄터 쿠네르트 (1929 - )는 구동독 출신의 작가 가운데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작가입니다. 그는 시작으로 출발하였으나, 나중에는 산문을 많이 썼습니다. 그의 작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시보다도 산문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작품은 오늘날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인 고은이 만인보를 집필하지만, 그 역시 아마도 만 편의 시를 족히 썼을 것입니다. 귄터 쿠네르트는 1929년 베를린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 혈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1940년에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의 전쟁 체험은 소설 "모자들의 이름으로 Im Namen der Hüte에 자세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브레히트의 극작품을 싣고 있는 문고판들입니다. 브레히트만큼 후배 작가와 시인들에게 실질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친 작가도 없을 것입니다. 귄터 쿠네르트는 전쟁이 끝난 뒤에 디자인 Grafik을 공부하였습니다. 5학기 공부한 뒤에 자신의 재능이 문학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독서로 소일합니다. 1948년에는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SED)에 가입합니다. 

 

 

 

 

 

 

쿠네르트는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두 작가를 꼽습니다. 오른쪽의 인물은 요하네스 베허입니다. 베허는 쿠네르트에게 문학적 배움의 길을 터주었습니다. 라이프치히의 문학 연구소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연구소는 나중에 요하네스 베허 연구소로 바뀌어졌으며, 자라 키르쉬 등 수많은 문인들에게 작품 수련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쿠네르트는 자신에게 실질적 영향을 끼친 작가로서 브레히트를 꼽았습니다. 그는 브레히트와의 만남에 관해서 즐겨 언급하였습니다. 브레히트는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 친구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는 쿠네르트와 같은 젊은 작가들과의 대화에서 언제나 질문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새장에 갇혀 살아가는 새는 자유를 그리워합니다. 물결 앵무는 거울 속의 이상형을 쳐다보면서 상대방에게 재롱을 떱니다. 쿠네르트가 자유를 인지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1960년대에 이르러 서서히 구동독의 문화 정책으로부터 거리감을 취합니다. 말하자면 체제파괴적 시각을 견지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폐쇄적인 구동독의 사회에 식상하여, 70년대에 외국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72년에는 오스틴의 텍사스 대학에, 75년에는 영국의 와윅 대학교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날짐승의 삶을 몹시 부러워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물결 앵무는 여권 없이 국경을 지나치며 날 수 있습니다.

 

 

 

 

쿠네르트는 구동독의 많은 개개인들이 그들의 자유를 박탈당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강요된 아웃사이더로 살아가야 하는 까닭은 당국의 정책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동독은 마르크스 엥겔스가 갈구하는 평등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엘리트 관료"의 시스템으로 영위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쿠네르트는 이를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를 예를 들어서 모든 것을 은근히 다루었습니다. 상기한 책은 "어떤 다른 K"라는 방송극을 싣고 있습니다. 죽은 K의 비밀을 찾는 탐정 그롤하머는 자신의 탐정 일에 회의감을 느낀 나머지 음독자살하는데, 이는 동독 문화 관료를 비아냥하기 위한 범례로 이해됩니다.

 

 

 

사진은 베를린 한 복판에 있는 체크 포인트 찰리의 모습입니다. 분단 시대에는 미군들이 이곳을 관장하며, 사람들의 통행을 가로막던 시설이었습니다. 귄터 쿠네르트는 1977년 볼프 비어만이 동독으로부터 추방당하자, 동료 작가들과 함께 추방령 철회를 요구하는 공개 서한에 사인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동독 정부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혀, 감시당하면서 살았습니다. 결국 1979년 쿠네르트는 더 이상 구동독에 살아야 하는 필연성을 느끼지 못하고, 서독으로 이주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이주를 "자의에 의한 거주 이전"으로 규정합니다만, 강요된 이주인가, 자의에 의한 이주인가? 하는 물음에 정확하게 답하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Weh dem, der aus Liebe wandert.

 

 

 

 

쿠네르트는 서독으로 이주한 뒤에도 펜을 꺾지 않고 집필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사진의 책은 1985년에 쿠네르트가 뮌헨의 한저 출판사에서 간행한 "기억의 저편"이라는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여기에는 독문학, 그리고 시대에 관한 놀라운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맨 마지막의 글 "발문 Nachwort"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쿠네르트가 탈-희망의 전언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지만, 참담한 현재 현실에 대한 솔직하고, 올바른 비판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일화

 

 

 

 

위의 사진은 쿠네르트의 프랑크푸르트 시학 강의를 묶은 책을 보여줍니다. 제목은 "노아의 방주로서의 시"입니다. 기독교의 신화에 의하면 홍적세를 맞이한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필요한 물건 들, 이를테면 채소, 가축 등을 싣고 항해합니다. 모든 인간이 대홍수로 인하여 몰살하였지만, 노아는 충적세에 살아남았습니다. 시는 쿠네르트에 의하면 노아의 방주의 역할을 담당하리라고 합니다. 어느 맑게 개인 날 아침 갑자기 세상이 온통 물에 잠기기 전에, 시는 현대인들에게 모든 구원의 메세지를 전하리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오늘날 시구 한 페이지는 햄버거를 포장하는 종잇조각보다도 더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당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날아다니는 자동차 "에로모빌 Aeromobile"을 가리킵니다. 과학 기술은 그 자체 도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양날의 칼과 같은 무엇이지요. 다시 말해서 최신 기술 개발로 고성능의 도구를 만들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태계 파괴를 낳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 기술을 필요악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쿠네르트는 자동차를 "굴러가는 판도라의 양철조각 die rollende Blechbüchse der Pandora"이리고 정의 내렸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중세에 다음과 같이 예견하였습니다. "먼 훗날 빨리 달리는 사자가 나타나서 대기를 오염시킬 것이다." 이는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쿠네르트는 조만간 세상이 몰락하리라고 단언합니다. 이를 사전에 차단시키는 과학 기술적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가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자식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이란 말인가요? 

 

 

 

사진은 독일에서 간행된 CD Sacred Spirit 의 표지입니다. 사이키델릭과 인디언의 노래를 가미한 것으로서 유럽 사람들에게 위안을 가져다주는 음악입니다. 관심있는 분은 다음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Sacred Spirit I http://www.youtube.com/watch?v=KK_0dzhLBio 

Sacred Spirit II (44분 50 초) http://www.youtube.com/watch?v=BOSQ019dFpo

 

쿠네르트는 인디언의 세계관을 서양 문명의 그것과 반대되는 무엇으로 평가합니다. 다음은 귄터 쿠네르트의 시 "무제" 전문입니다. "너는 나에게 땅을 경작하라고 명령한다./ 내 어찌 칼을 들이대며/ 어머니의 가슴을 도려낼 수 있는가?/ 내가 죽으면 그녀는/ 내가 그녀 곁에서 휴식하는 것을/ 거절하리라.// 너는 나에게 보석을 캐라고 명령한다./ 내 어찌 어머니의 피부 속에 있는/ 뼈를 마구 헤집을 수 있는가?/ 내가 죽으면 나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그녀의 몸속으로/ 되돌아 갈 수 없으리라.// 너는 나에게 식물을 베고/ 건초를 만들어 팔라고 명령한다,/ 하여 백인들처럼 부유하게 되도록./ 내 어찌 어머님의 머리칼을/ 함부로 잘라낼 수 있는가?/ 그녀는 나의 시신을 동여매리라." (동독문학 연구, 제 10장 참고)

 

 

 

 

사진은 카이스보르스텔이라는 지역입니다. 귄터 쿠네르트는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2000년 이후의 쿠네르트 작품이 문학적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약간 노망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김지하가 최근에 박근혜 정부를 옹호하면서, 자신의 원고료에 대해 과도한 집착을 드러내는 것 역시 노망의 징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카이스보르스텔은 북독의 항구도시이지만, 조용한 숲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요양지로서 적합합니다. 공기가 맑고 일교차가 없어서, 특히 폐 질환자에게 더 없이 좋은 장소라고 합니다. 재독 교포 어수갑씨는 말했습니다. 독일이 재미 없는 천국이라면,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쿠네르트는 자기 자신을 "인간 혐오자 Misanthrop"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식이 없고, 고양이 다섯 마리 그리고 아내가 살아 있을 뿐입니다. 쿠네르트는 21세기의 인구 폭발에 대해 끔찍한 우려를 표명해 왔습니다. 자고로 "폭발 Explosion"이란 일회적 사건으로서 한 번의 일회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다이너마이트 폭발을 생각해 보세요. 그러나 21세기의 인구 증가는 수십년에 걸쳐 출현하는 만성적 현상이기 때문에 인구폭발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1500명 혹은 2000명의 아이들이 물 부족으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그냥 목 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다산 (多産)의 정책"은 인구 증가의 세계적 추세와 일치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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