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김사인 시인의 명시 한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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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김사인
얼빠진 집구석에 태어나
허벅지 살만 불리다가 속절없이 저무는구나
내 새끼들도 십중팔구
행랑채나 지키다가 장작이나 패주다가 풍악이나 잡아주다가 행하 몇푼에 해해거리다 취생몽사하리라.
괴로워 때로 주리가 틀리겠지만
길은 없으리라
친구들 생각하면 눈물 난다.
빛나던 눈빛과 팔다리들
소주병 곁에서 용접기 옆에서 증권사 전광판 앞에서 엎어지고 자빠져
눈도 감지 못한 채 우리는 모두 불쏘시개.
오냐 그 누구여
너는 누구냐.
보이지 않는 어디서 무심히도 풀무질을 해대는 거냐.
똑바로 좀 보자.
네 면상을 똑 바로 보면서 울어도 울고 싶다.
죽어도 그렇게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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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에 실린 시입니다. (102 - 103쪽) 옛 선조들이나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가난한 "집구석"에 태어나, 눈앞의 이득에 집착합니다. 언제나 몇푼 벌어들이는 데 그저 해해거리다가, 나중에는 나이들어 죽습니다. 김사인 시인은 그게 과연 올바른 삶인가? 하고 은근히 묻습니다. 그게 취생몽사가 아니라면, 과연 인간의 진정한 삶은 무엇인가? 하고 묻습니다.
모두가 젊은 시절에는 꿈을 키우는 초립동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눈빛"은 언제나 형형했습니다. 팔다리를 열심히 놀리면 반드시 성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합니다. 삶에 찌들어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대접 받지 못하고 살다가 결국 엎어지고 자빠집니다. 시인은 이러한 삶이 과연 무엇인가? 하고 묻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불쏘시개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고 진지하게 묻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가난한 젊은이가 나중에 아무런 변함이 없이 가난한 늙은이가 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열심히 일한 다음 저녁 시간에 소주병으로 피곤한 몸을 달래거나, 제 아무리 증권사 전광판 앞에서 일확천금을 바라더라도, 그것은 결국에 이르면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거둬들이는 자는 다른 사람입니다. 이렇듯 민초들의 고달픈 삶이 한국사의 끝없이 이어지는 흐름이라면, 이를 끊어낼 방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시인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전해주는 대신에 자신을 나무랍니다.
재미있는 것은 세 번째 연입니다. 보이지 않는 어디서 마구 풀무질을 해대는 자는 바로 시인 자신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심히 살아가는 귀족이 아니라, 무지렁이들과 함께 있습니다. 과연 자신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을 훈계할 자격이 있는가? 하고 시인은 자문합니다. 시인의 자기비판은 놀랍게도 사람들의 상처가 바로 자신의 상처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용접기 옆에서 일하는 자들과 함께 살아가며, 이들에 대해 인정을 나누는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아닌 일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똑 바로 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김사인 시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고유한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 주위의 정황을 인지해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기 전에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죽어도 참답게 죽을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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