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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슈티프터의 늦은 여름 (1)

필자 (匹子) 2021. 1. 18. 12:22

친애하는 S,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1805 - 1868)는 고전적이고 소박한 미덕을 중시한 오스트리아 작가입니다. 그의 장편 소설 "늦은 여름 Der Nachsommer"은 도합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857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이미 40년대 말에 슈티프터는 “나이든 가정교사”라는 제목의 소설을 집필한 바 있는데, 이는 세 편의 미완성 작품으로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1852년 “새의 친구”라는 제목으로 고유한 작품 집필을 시도하였습니다. 1853년 6월 9일 헤켄나스트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슈티프터는 자신의 작품을 “늦은 여름”이라고 명명하고 싶으며, 이미 거의 완성 단계에 돌입했다고 기술하였습니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은 자꾸 미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슈티프터는 병행하여 집필하던 보헤미아의 역사 소설 "비티코 Witiko"를 먼저 끝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작품 "늦은 여름"은 슈티프터가 처음으로 거대 장편의 형식으로써 완성한 대작이며, 오스트리아 문헌학자들에 의해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즉 슈티프터의 작품은 위대한 교양 소설로서,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그리고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학자들은 이러한 입장을 뒤집습니다. 가령 뮌헨의 독문학자 프리드리히 젠글레 Friedrich Sengle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늦은 여름"에서 중요한 것은 장르에 관한 문제 뿐 아니라, 독일어권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오스트리아 지역은 오래 전부터 신성로마제국에 속했으며,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곳 역시 문화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독일과 구분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오스트리아 문학을 독일 문학과 구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두 지역은 국가로 분리되어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같은 문화 같은 언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가 아닌 과거의 문학을 논할 때 독일과 오스트리아 문학은 구분되기 힘듭니다. 다만 우리는 독일 민족과 슬라브 민족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억압당하던 작센과 보헤미안 지역 사람들의 고유한 문화권을 생각하면서, 광의적 의미에서 독일의 문화와 오스트리아 문화를 흐릿하게 구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슈티프터의 늦은 여름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은 여름』 속에서도 자전적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은 체코 지역인 어느 농가에서 옷감과 실을 제작하는 포목 공의 아들로 태어난 슈티프터는 12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와 농사를 지으면서 힘든 청년기를 보내었는데, 외할아버지의 도움으로 1818년에 크렘스뮌스터에 있는 베네딕트 김나지움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슈티프터는 1826년까지 라틴어 고전 문학 등을 공부했는데, 나중에 당시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1826년부터 빈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학비를 벌기 위해서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장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가정교사 직이었습니다. 그때 슈티프터는 파니 그라이플이라는 이름을 지닌 부잣집의 딸을 사랑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평생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파니 그라이플의 부모는 딸을 가난한 대학생과 갈라놓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결국 슈티프터는 사랑하는 임과 헤어져야 합니다. 술로 이별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하다가, 성적이 나빠졌고, 결국 학교를 그만 두게 됩니다. 나중에 아달베르트 슈티프터는 평범한 농촌 여성인 아말리아 모하루트라는 처녀를 가볍게 사귀게 되었는데, 1837년에 그미와 결혼하게 됩니다. 아말리아와 홧김에 결혼하게 된 것은 파니 그라이플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836년에 파니는 플라이산데른이라는 돈 많은 재정 공무원과 성대한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슈티프터는 평생 파니 그라이플을 잊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사랑했다고 합니다.

 

슈티프터의 사랑의 삶에서의 비극은 그의 작품 속에 용해되어 있습니다. “늦은 여름”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늦여름은 여름이 끝나갈 무렵의 계절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안온한 여름날로서 “성숙한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늦은 여름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집착 내지 장년기의 사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19세기 오스트리아 지역입니다. 하인바흐 그리고 슈테르넨호프 등이 바로 이 지역이지요. 당시는 비더마이어 시대였습니다.

 

비더마이어 Biedermeier는 시기적으로는 1815년부터 1848년까지의 중부 유럽의 문화사 내지 정신사에 해당하는 전문용어입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가 칼스바더의 협정을 계기로 사람들에게 어떠한 정치적 혁명적 발언을 허용하지 않았던 왕정복고의 보수적 분위기가 횡행하고 있었는데, 이는 젊은 예술가의 목을 조르기에 충분했습니다. 작품의 특징으로서 우리는 등장인물의 이름은 명시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제후부인, 정원지기 등과 같은 호칭이 사용될 뿐이지요. 등장인물의 이름은 소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심스럽게 명명됩니다. 하인리히, 마틸데, 나탈리, 구스타프, 에우스타흐, 롤란트, 클로틸데 등. 아마도 작가는 등장인물의 개별적 특징에 중점을 둔 게 아니라 개개인들의 보편적 삶에 관심을 기울인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슈티프터는 교양을 쌓는 개개인의 삶의 과정, 플라톤 유형의 사랑 그리고 가족사에 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하인리히 드렌도르프라는 젊은이입니다. 그는 빈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부유했기 때문에, 자식들은 젊은 시절에 많은 교양을 쌓고 다양한 지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하인리히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교사를 통해 필수적인 중등 과정을 끝낸 뒤, 자연과학의 특수한 분야를 공부하려고 생각합니다. 여러 분야를 고려하다가 그의 관심을 끌게 된 과목은 지질학이었습니다. 그러나 배움의 과정에서 그는 학교로부터 등을 돌리고, 혼자서 공부를 계속해 나갑니다. 학교에서는 자연과학의 새로운 내용들을 깊이 배울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독학파 Autodidakt”였습니다. 그는 알프스 산맥의 끝자락을 돌아다니면서, 광물을 수집합니다. 산을 헤매는 일은 무척 즐거웠습니다.

 

어느 날 폭풍과 강한 비가 몰아치게 되었을 때, 하인리히는 비를 피해야 했습니다. 이때 그는 스테른호프 지역에 있는 어느 남작의 영지에서 잠시 들어가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영지의 담 벽에 수많은 장미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남작의 이름은 구스타프 라이자흐였는데, 주인공은 그와 안면을 익히게 됩니다. 남작은 그를 오래 머물도록 권유하였습니다. 하인리히는 남작의 청을 받아들입니다. 남작은 오십 나이에 가까운 장년의 멋진 풍모를 드러내는 남자였습니다. 주인공이 남작을 자신의 우상이자 은사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지의 가옥, 정원, 농경지 그리고 오래된 가구 등을 감상할 수 있었지요. 예술 가구들은 작은 우주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세부적 사항에 이르기까지 합리적 원칙에 의해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자흐 남작과의 교우는 하인리히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왜냐하면 하인리히는 남작을 통해서 주어진 현실을 완전히 이해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남작은 놀라운 수집가로서 아스퍼호프 지역에 자신의 도서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리자흐 남작의 조언 그리고 그가 제공하는 보조 수단의 도움으로 하인리히는 자신이 추구하는 자연과학 연구를 더욱도 밀도 있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진척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인공의 관심사가 더욱 폭넓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하인리히는 예술에 대해 더욱 커다란 관심을 지니게 됩니다. 말하자면 라자흐 남작은 아스퍼호프에서 그를 제자로 삼아, 예술적 깊이를 가르쳐주었던 것입니다.

 

특히 그의 눈에 띄는 것은 예술 조각품이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로 여행하여 조각품들을 발굴하여 자신의 영지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들은 처음에는 흙이 묻어서 불결하였지만, 정성스럽게 갈고 닦고 세척하여 아름다운 조각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하인리히가 다시금 스테른호프 지역을 지나치게 되었을 때, 순간적으로 소나기에 몸이 젖게 됩니다. 소설 속에서 나쁜 날씨는 어떤 새로운 계기를 기약해주는 객관적 상관물과 같습니다. 하인리히는 라이자흐 남작의 집에서 아름다운 처녀 나우시카의 조각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때 어느 눈부신 처녀가 조각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곁을 스쳐지나갑니다. 그미의 이름은 나탈리였습니다. 찬란한 미를 자랑하는 조각상은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젊고 아름다운 피부를 지닌 나탈리와 하나게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슈티프터는 그림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