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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실러의 '빌헬름 텔' (2)

필자 (匹子) 2018. 3. 4. 09:48

  

8. 2막의 내용: 2막이 오르면, 합스부르크 정권에 동조하는 스위스의 귀족들이 모여 담화를 나눕니다. 그들은 스위스 인민들 사이에 불만 내지 폭동의 기미를 느낍니다. 일부는 이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만, 일부는 의외로 자신만만해 합니다. 민초들은 어차피 힘 앞에서 고개를 숙이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슈바이츠 그리고 운터발덴 출신의 사람들은 달빛이 환한 밤 시간에 뤼틀리에서 집결합니다. 이 사건이 이른바 뤼틀리의 맹약입니다. 참석자들 가운데에는 슈타우퍼, 멜히탈 그리고 퓌르스트 등이 눈에 띄지만, 빌헬름 텔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외국 용병들을 스위스의 땅으로부터 몰아내기로 결정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필요한 세부적인 계획 역시 수립합니다. 뤼틀리의 맹세에서 중요한 사항은 빌헬름 텔의 태도입니다. 친구인 슈타우퍼가 그를 찾아와서 함께 힘을 합해서 거사를 일으키자고 종용했으나, 빌헬름은 이를 거절하면서, 오히려 침묵하고 인내하라고 충고합니다. 왜냐하면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책략을 세우는 것은 주인공의 성미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 바로 그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빌헬름 텔은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행동을 위해 내가 필요하면/ 나를 불러라, 그럼 적극적으로 참석할 테니까.” 여기서 우리는 빌헬름 텔의 솔직한 자세를 읽을 수 있습니다. 빌헬름 텔은 육체적으로 힘세고 강건한 사냥꾼입니다. 그런데 그는 심리적으로는 경건하고, 단순하게 사고하는 자연인입니다. 그는 너무 많이 생각하면, 성취하는 게 적다고 믿는 실천적 인간입니다.

 

 

스위스에는 호수가 많습니다. 여행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듭니다. 물가는 독일의 1.5배입니다. 그러나 풍경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9. 3막에서 나타난 갈등: 주인공의 자율적인 생활방식은 무한 권력의 횡포와 어쩔 수 없이 부딪치게 됩니다. 막이 오르면 빌헬름 텔은 대문을 수선한 다음에 시내로 떠나려고 합니다. 아내인 헤드비히는 일순 끔찍한 사건을 예견하고 남편을 만류하지만, 주인공은 개의치 않고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시내 한복판에는 게슬러의 모자가 뎅그렁 걸려 있습니다. 행인이라면 누구든 게슬러의 모자에 목례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목례가 합스부르크 왕국의 권력에 대한 순종을 의미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문율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헬름 텔은 목례하지 않고, 지나칩니다. 이때 총독의 부하들은 빌헬름 텔과 그의 아들을 체포하려고 합니다. 이때 게슬러가 우연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초지종을 입수한 총독은 주인공에게 한 가지를 제안합니다. 만약 빌헬름 텔이 석궁을 쏘아서 아들의 머리 위의 사과를 맞히면, 아버지와 아들을 석방하겠다는 게 바로 그 제안이었습니다. 빌헬름 텔은 두 개의 화살을 끄집어내어, 한 발로 아들의 머리 위에 놓여 있는 사과를 명중시킵니다. 총독이 다른 화살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주인공은 처음에는 대답을 회피합니다. 게슬러는 약속대로 두 사람을 훈방조처하려고 합니다. 이때 빌헬름 텔은 총독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에 첫 번째 화살이 내 아들을 맞혔더라면, 두 번째 화살은 당신에게 향했을 거요.” 이 말을 듣게 된 게슬러는 노발대발하면서, 빌헬름 텔을 묶어 감옥으로 보내라고 형리들에게 명령합니다.

    

 

10. 4막의 이야기: 빌헬름 텔은 나쁜 날씨에도 불구하고 총독의 부하들에 묶인 채 호수를 건너야 합니다. 이때 그는 형리들을 따돌리고 성공리에 도주하게 됩니다. 극작가는 작품 사이에 간간이 에피소드를 삽입시켜서, 왕족과 귀족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은근히 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빌헬름 텔의 뇌리에는 이제 오로지 게슬러를 사로잡아 처형시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지만 텔은 자신의 의향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깊은 상념에 사로잡힙니다. 빌헬름 텔은 독백을 통해서 자신의 과업이 개인적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보편성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다시 말해서 게슬러의 폭정은 자신과 자연을 조화롭게 합치시키며 살아가려는 자신과 이웃의 삶의 목표를 깡그리 파괴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게슬러가 어느 순간 처형된다면, 자신과 스위스 사람들의 평화롭고 자연 친화적인 삶은 지속될 수 있다고 빌헬름 텔은 확신합니다. 결국 빌헬름 텔은 골목에 숨어 있다가 말을 타고 가는 게슬러를 활로 쏘아 죽이는 데 성공합니다. 빌헬름 텔의 이러한 행위는 나중에 슈바벤 공작, 요한네스 파리시다와의 만남을 통해서 다시금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바이마르에 있는 실러하우스. 1910년에는 건물의 외벽은 흰색이었다.   

 

 

11. 구원에 관한 보편적 범례로서의 마지막 장면: 5막이 오르면 누군가 놀라운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슈바벤 공작, 요한네스 파리시다가 자신의 삼촌인 합스부르크 황제, 알브레히트를 살해했다는 게 그 소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드디어 식민지의 고통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게 되리라고 말하면서 기뻐합니다. 다른 한편 텔의 아내는 자식을 위험에 빠뜨리게 했다고 주인공을 비난합니다. 이때 요한네스 파리시다 공작이 등장합니다. 파리시다 공작은 오로지 경외심 때문에, 다시 말해서 주관적 이유로 인하여 삼촌인 합스부르크의 황제, 알브레히트를 살해했다고 주인공에게 털어놓습니다. 말하자면 개인적 측면에서 고찰할 때 공작은 가족을 살해하는 천인공노한 범행을 저지른 셈입니다. 그렇지만 공작은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억울하게 목숨을 잃을 뻔한 수천수만의 무고한 인민을 구제했습니다. 빌헬름 텔 역시 아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했지만, 그의 행동은 무엇보다도 대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스위스 사람들은 폭압을 휘두르는 합스부르크 사람들을 추방시킴으로써 구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극작품은 스위스가 전원적인 삶의 공간으로 회귀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실러는 개인과 사회가 하나로 합치되는 모습을 무대 위에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조화로운 질서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실러는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하여라는 편지 모음집에서 미적인 국가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미적인 국가 속에서는 개별적 사람들이 보편성과 개인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2. 이상적 인간형으로서의 빌헬름 텔: 실러의 미적인 국가상을 고려할 때 빌헬름 텔은 모범적 인물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빌헬름 텔은 미적인 국가의 이상적인 인물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빌헬름 텔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결코 주위 환경과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러한 한 주인공은 미적 총체성을 포괄하는 자” (프리츠 마르티니)일 수 있습니다. 독재가 자연의 거대한 힘을 인위적으로 뒤바꾸려는 행위라면, 빌헬름 텔의 자연 친화적인 무위야 말로 자연적 조화로움을 이룩하려는 자의 모범적 행위일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가 추구한 미적 국가에서 살아가는 이상적 인간의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중에 작품 빌헬름 텔19세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었습니다.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공연되는 명작의 반열에 올라서 있습니다. 그 까닭은 작품의 배후에 자연 친화적인 이상적 삶 내지 미적 국가에 관한 동화적인 갈망의 상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암시한 바 있는 범례로서 아침에 사냥하고, 오후에 고기를 잡으며, 저녁에 가축을 돌보거나 책을 읽는 전인적인 삶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