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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1) 마이어의 '여자재판관'

필자 (匹子) 2018. 12. 8. 09:17

 

스위스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콘라트 페르디난트 마이어 (Conrad Ferdinand Meyer, 1825 - 1898)는 문학사에 남을 정도로 훌륭한 시와 소설을 남겼습니다만, 그의 문학은 유독 남한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마이어는 인간 내면에 은밀히 감추어져 있는 상흔을 즐겨 다루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계급 갈등이나 사회적 문제를 중시하였고, 심리적 질병을 야기하는 이러한 상흔 내지 병적 인간의 미묘한 감정 변화 등을 소홀히 다루었는지 모릅니다. 마이어는 주어진 스위스라는 폐쇄적 사회의 협소한 분위기에 몹시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를 자주 작품 속에 다루었습니다. 마이어는 이른바 이탈리아 르네상스라는 가상적 세계를 동경하여, 그곳으로 도피했습니다. 왜냐하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르네상스의 현실은 분열된 상이지만, 작가가 애타게 동경하는 예술적으로 지양된 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문학 작품 속에 형상화된 등장인물들의 병적 징후는 공교롭게도 당시 스위스 사람들의 내면 속의 이상 징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중편 소설 「여자 재판관 (Richterin)」는 1881년에서 1885년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1885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집필이 오래 지속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마이어는 동일한 소재를 바탕으로 극작품을 집필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어떤 특정한 역사적 분위기를 생각하다가, 중편이라는 장르를 택하여 모든 것을 자유롭게 창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게다가 마이어는 처음에 작품의 배경을 “테신 (Tessin)”으로 할까, 아니면 시칠리아로 할까? 하고 망설였다고 합니다. 마침내 결정된 것은 이탈리아의 로마와 레티엔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스템마 유디카트릭스입니다. 그미는 레티엔의 말모르트 성 (城)의 여주인으로서 불행하게 살아간 귀족입니다. 801년에 장년의 나이에 접어든 그미는 로마에 체류하던 카를 대제를 찾아가서, 자신 소유의 땅을 근저당 설정하는 문제에 도움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카를 대제는 나중에 자신의 신하, 젊은 불프린을 스템마에게 보내어 경제적인 문제를 처리하도록 조처합니다. 그런데 불프린과 스템마의 관계는 처음부터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불프린의 아버지, 불프 백작에 의해서 발생한 것입니다. 불프 백작은 포악하고 잔인한 폭군이었습니다. 16년 전에 아들에게 온갖 매질을 가하던 그는 끝내 자신의 조강지처를 집밖으로 쫓아내었습니다. 이때 불프린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다가, 카를 대제에게서 은신처를 찾습니다. 말하자면 아들은 아버지의 포악함으로부터 벗어나, 카를 대제의 도움으로 교육받고, 나중에 그의 신하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불프 백작은 아내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다음에 젊은 스템마에게 청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미의 마음은 페레긴이라고 불리는 젊은 수도사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이를 눈치 챈 백작은 자객을 보내어 자신의 연적을 살해하도록 조처했습니다. 어느 날 스템마는 살해당한 임의 시신 (屍身)을 끌어안고 처절할 정도로 절규합니다. 뒤이어 그미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불프 백작과 결혼합니다. 그 후에 스템마는 우연히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다가 애인, 페레긴을 살해한 사람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미는 다시 한번 커다란 충격에 빠졌습니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뒤에 그미는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심합니다. 어느 여름 불프 백작이 자신의 요새에 당도했을 때, 스템마는 그에게 독이 든 술잔을 권합니다. 술잔을 들이킨 백작의 온몸에는 독이 퍼집니다. 그는 부들부들 떨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몇 달이 흐른 뒤에 스템마는 팔마 노벨라라는 이름을 지닌 딸을 낳습니다. 어느 누구도 팔마 노벨라의 아버지가 불프 백작인지, 아니면 살해당해 죽은 페레긴 수도사인지를 분간하지 못합니다.

 

 

 

 

 

스위스의 킬히베르크, 거대한 호숫가에 있는 소도시이다.

 

스템마는 혼자서 자신의 영지를 다스리며, 여자 재판관으로서의 명성을 쌓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미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사항이 껄끄럽게 남아 있었습니다. 재판관으로서 불프 백작의 살인 사건을 미결로 남겨둔 게 그 사항이었습니다. 하기야 자신이 진범이니, 무고한 사람을 잡아다가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16년의 세월이 흐른 뒤 카를 대제의 신하, 불프린은 레티엔에 있는 말모르트 성 (城)에 당도합니다. 이때 스템마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즉 자신이 불프 백작의 죽음과 상관이 없다고 만조백관 앞에서 공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불프린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다지 애통해하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그의 살해범에 관해서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아버지는 잔인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신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무런 감정 없이 “성주, 스템마 유디카트릭스는 불프 백작의 죽음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