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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2) 마이어의 '여자재판관'

필자 (匹子) 2018. 12. 8. 09:18

(앞에서 계속 됩니다.)

 

작품에서 우리를 설레게 만드는 사항은 일견 근친상간과 관계되는 내용입니다. 성에 도착했을 때, 불프린은 자신의 배다른 여동생, 팔마 노벨라를 처음으로 바라봅니다. 팔마는 이제 17세의 처녀로 성장해 있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팔마 역시 배다른 오빠를 도에 넘치도록 좋아합니다. 멀리서 찾아온 오빠의 모습은 너무나 늠름했고, 자신이 오래 꿈꾸던 이상형의 남자와 같았던 것입니다. 어느 날 불프린은 그미를 데리고 근처 도시에서 개최되는 학자들과의 모임에 참석합니다. 처음에는 여동생에게 다른 남자를 소개시키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추호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다른 친구에게 여동생을 소개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이 팔마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불프린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이 순간 그를 엄습한 것은 죄의식이었습니다. 여동생에게 연정을 품다니, 그럴 수 없어.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힌 불프린은 팔마를 미리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작심합니다.

 

산길 모퉁이에서 그미를 배웅하고, 돌아서는 도중에 그는 계곡에서 어느 여자와 마주칩니다. “‘나는 파우스티네, 남편을 독살한 여자예요. 당신은 무슨 짓을 저질렀어요?’ 웃으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여동생을 뜨겁게 사랑해요.’ 이때 그미는 경악에 사로잡혔다. 파우스티네는 십자가를 그으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역시 스스로 고백한 말에 대해 몹시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 이 대목은 작가가 환상 속에 떠오르는 내용을 마치 사실인 듯이 생생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팔마는 실제로 집으로 되돌아가라는 오빠의 말을 어기고, 방향을 바꾸어 계곡으로 내려옵니다. 그미를 산속에서 실제로 다시 만났을 때, 불프린은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저버립니다. 그미와의 재회는 주인공의 마음을 뒤집어놓았습니다. 자신의 순수한 감정에 따르자. 팔마는 내 동생이 아니라, 여성일 뿐이다. 그게 사랑하는 임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때 그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팔마를 힘차게 안고,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계곡에서 어디론가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연인은 말모르트 성으로 돌아갑니다. 팔마는 오랫동안 밖에서 지낸 탓에 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불프린은 성주인 스템마에게 모든 것을 고백합니다. 즉 자신은 여동생 팔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카를 대제에게 이 사실을 밝히고, 모든 죄를 감수하겠다고 말입니다. 스템마는 일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어느 날 카를 대제가 그곳에 도착합니다. 스템마는 자신의 아들이나 마찬가지인 불프린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자신이 불프린의 아버지, 불프 백작의 살인범이라는 사실 그리고 팔마의 친아버지가 불프 백작이 아니라, 페레긴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팔마 역시 어머니의 고백을 엿듣습니다. 팔마는 육체적 질병에다, 심리적인 충격마저 받게 되어, 죽음 직전의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스템마는 카를 대제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황제는 비극적 인연을 접한 뒤에 팔마를 자신의 양녀로 받아들입니다. 그 다음에 그는 만조백관들에게 공언합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뒤에 불프린과 팔마를 위해서 성대한 결혼식을 거행하겠다고 말입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내면의 세계와 외부 세계를 번갈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19세기 후반의 시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성입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작가가 계곡에서 사랑하는 임을 안고 방황하는 불프린의 심경을 다음과 같은 꿈으로 묘사한 대목입니다. “자연의 뻗어 있는 팔들은 하늘로 향해 돌멩이들을 내치고 있었다. 바로 여기 벽으로부터 어떤 위협적인 머리가 자라났구나. 저기서 심연 위로 거대한 몸뚱이가 매달려 있었구나. 한 가운데 하얀 거품 속에서 어느 거인이 누워 있었다. 그는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가슴 위에 부딪치게 하고, 희열 속에서 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여기서 작가 마이어는 어떠한 무엇에도 조종당하지 않는 자연의 모습에서 결코 조종당할 수 없는 자신의 고유한 감정을 찾으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근친상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금기 사항이라고, 때 묻지 않는 순수한 사랑의 감정은 어떠한 금기에 의해서도 억누를 수 없는 무엇이라고 말입니다.

 

 

 

 

 

 

마이어가 살았던 킬히베르크. 린트 Lindt 초콜릿은 바로 이곳에서 생산된다.

 

 

서양문학에서 근친상간에 대한 모티프는 오비디우스 (Ovid)의 『변신 이야기 (Metamorpho- ses)』에서 처음으로 다루어졌습니다. 『변신 이야기 (Metamorphoses)』제 6권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묘사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처녀 비블리스 (Byblis)는 친오빠인 카우누스 (Cau-

nus)를 뜨겁게 사랑했는데, 결국 자신의 사랑을 지상에서 성취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참나무 계곡에서 하나의 샘으로 변신하고 맙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룰 수 없는 사랑에서 사랑의 깊이가 측정될 수 있다는 점, 사랑이란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죽음만큼의 커다란, 애틋한 격정을 우리에게 전해준다는 점이 그 사항입니다. 기실 우리 주위에는 남매라는 이유로, 사촌이라는 이유로 모든 사랑의 감정을 접고 고통을 느껴야 하는 남녀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작가 마이어 역시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그는 취리히에서 자신의 여동생 베스티를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마이어는 가끔 아내가 잠자고 있는 틈을 타서, 여동생 베스티의 침실로 향했습니다. 꼬리가 길면 밝히는 법, 주위 사람들은 담을 뛰어넘어야 했던 이 “가련한 배비장”을 자주 목격하곤 하였습니다. 그 무렵에 남매가 동거한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취리히에 널리 퍼집니다. 아내인 루이제도 나중에 이 사실을 접하고 몹시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마이어가 결혼 생활의 심각한 위기를 겪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마이어의 삶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추론해낼 수 있습니다. 즉 마이어는 작품을 통해서 자신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방어하고, 사람들이 여동생에 대한 자신의 관계가 순수한 사랑임을 증명해내려고 했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