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임 혹은 애타게 갈구하는 장소로서의 여자
나: 그렇군요. 이와는 달리 분류된 소재는 무엇이며, 이에 해당하는 작품들로서 어떠한 것들을 들 수 있습니까?
너: 셋째로 물화된 삶과 인간 소외를 지적하는 작품들로서 「조류독감」, 「육식」, 「실종」*, 「물리치료」, 「별」이 있습니다. 앞에서 선생님은 이정주의 시를 “현실의 칼날에 의해 찢겨나간 마음의 대팻밥”으로 비유하셨지요? 그것은 이러한 작품에서 재확인되고 있습니다.
나: 이 가운데 「물리 치료」라는 작품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시적 자아는 어깨의 통증 때문에 물리 치료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통증은 물리적인 게 아니라, 심리적 아픔과 관련됩니다.
(...) 하지만 미진하다
이 통증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내 팔은 다은 것을 찾고 있다.
지난 여름의 돌을 더듬고 있다.
돌에 걸려 넘어져 얼굴이 처박혔던
백사장을 더듬고 있다
얼굴 쳐들고 하늘로 뿜었던 욕설을 그리워하고 있다
옆에서 박수 치며 웃던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다.
여기서 시적 자아는 물리치료사로부터 치료 받고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임으로서의 “여자”와 재회하고 싶어 합니다.
너: 이정주의 시에서 “여자”라는 시어는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나: 네. “여자”는 단순히 사랑하는 여인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애타게 갈구하는 장소”라는 폭넓은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미는 이를테면 아쉽게 멀리 떠나야 했던 “현수” (「시계」), 혹은 어딘가에 숨어서 시적 자아를 그리워하던 “검은 스타킹을 신은 여자” (「부활」)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애타게 갈구하는 장소, 이를테면 “갠지스” 강이라든가 (「침례」). 비둘기 날아오르는 “물가” (「집」)일 수도 있어요.
시인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가장 안온하고 행복한 땅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여덟째로 분류될 수 있는 시편들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시인이 주어진 현실에서 조우하는 사람은 임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직업인들밖에 없습니다. “어깨 아래 핫백을 밀어 넣는” 물리치료사 (「물리치료」) “키 큰 여자 마네킹” (「집」), “물수건을 나누어주”는 식육식당의 여자 (「육식」), “면장갑을 낀 아가씨” (「조류독감」) 등을 생각해 보세요.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물화된 삶과 인간 소외를 상징하는 군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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