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서로박: 그 언덕에 세워진 이정주 시인의 탑 (3)

필자 (匹子) 2020. 8. 27. 11:17

3. “그대, 시 뽑는 기계”

 

너: 이번에 간행된 시집을 소재의 측면에서 어설프게 여덟 가지로 분류해보았습니다. 1. 기억과 관련되는 아름다움의 비밀을 추적한 작품들, 2. 실용적 가치 내지 재화만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작품들, 3. 물화된 삶과 인간 소외를 지적하는 작품들, 4. 삶과 죽음에 관한 성찰을 다룬 작품들, 5. 자아의 고독 그리고 단 한 번의 삶에 관한 문제를 다룬 작품들, 6. 버림받은 귀한 존재, 혹은 소시민으로서의 시인을 다룬 작품들, 7. 시와 예술에 관한 성찰을 다룬 작품들, 8. 사랑과 결혼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 이러한 분류가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나: 네. 작품에 대한 일차적 접근으로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작품이 한 가지 사항 속에 국한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너: 물론입니다. 작품들 가운데에는 두세 가지의 주제를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있고, 상기한 카테고리에 편입될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첫째로 기억과 관련되는 아름다움의 비밀을 추적한 작품으로서 우리는 다음의 시를 들 수 있습니다. 「꽃잎 속에 앉아 있는 나비」, 「단청」*, 「나무」, 「메밀꽃 필 무렵」, 「실종」, 「침례」, 「이름」.

 

나: 여기서 돋보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어진 사물 속의 허상 내지는 아름다움의 비밀을 추적하려는 시인의 시각입니다. 이를테면 명시에 해당하는「단청」을 고찰해 봅시다.

 

(...) 전등사였을까

대웅전 단청을 맛있게 보고 있는데

저게, 목수를 배반한 여자래요

지붕을 받든 채 쪼그리고 앉은

빨간 존재들을 가리키며

여자는 웃었다

식욕을 들킨 나는

침을 삼키며 얼굴을 붉혔다 (...) (「단청」의 일부)

 

시적 자아는 전등사 대웅전에 붉은 모습으로 붙어 있는 단청을 바라봅니다. 이때 곁에 있던 어느 여자는 단청이 “목수를 배반한 여자”라고 귀띔해줍니다. 이 말에 시인은 모골이 송연함을 느낍니다. 단청은 시인의 마음속에 “짙은 색을 탐하다가” 결국 “적멸 속에 갇히는” 여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아가 완전한 삶에 대한 오르가슴 내지 탁월한 작품을 형상화하려는 욕구와 관련됩니다.「나무」에서 시인은 나무를 바라보며, “한 손에 시집을 들고/ 동산위에 서 있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나아가 작품,「실종」은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물화될 수 있는가를 재미있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너: 그렇지만 「실종」은 자본주의 소비 사회에서 개개인들이 물신숭배의 분위기에 부응해서 소외된 객체로 살아가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하지 않는가요?

 

나: 비극적 주제를 유머러스한 풍자로 표현해낸 것이 시적 성취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 네, 이제 둘째로 실용적 가치만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삶을 비판하는 작품들을 살펴볼까요? 예컨대 이에 해당하는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주택」, 「러브레터 1」*, 「소풍」,

 

나: 「무주택」은 독자에게 두 가지 의미를 시사해줍니다. 그 하나는 집의 고유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일반 사람들의 부동산에 대한 집착을 냉소적으로 야유하는 것입니다. 집은 현대인에게는 휴식을 제공하는 안락한 공간이기 전에, 재화를 부풀리게 하는 수단으로 인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집은 시인의 눈에는 “공중에 그은 실선”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똑같이 축조된 아파트 건물은 차곡차곡 쌓인, “멋진 관”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시인은 “이 땅에 사람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 집이 사람의 우위에 있다.”는 처절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대, 기계

노동으로 젖산 불어난 이두박근 아래

가방을 감추고 걸어간다 (...)

가래침을 뱉고 나는 병원으로 들어간다

상한 늑골 두 개를 갈아 넣는다

자주 와서 갈아주세요

의사는 못 쓰게 된 뼈를 스테인리스 접시에 던지며 말한다 (...)

그대, 시 뽑는 기계

플라타너스 앞에서 당신과 헤어진다

오늘밤은 우동에 밥덩이를 말아먹고 자리에 누울 것이다

동전 만지던 손으로 자위를 하고 잠이 들 것이다

그대, 안녕 (「러브레터 1」 일부)

 

너: 「러브레터 1」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전히 기계로 전락해버린 인간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어요. 시적 자아는 “노동으로 젖산 불어난 이두박근 아래/ 가방을 감추고” 생활합니다. 병원에 가서 마치 배터리 충전하듯이 “상한 늑골 두 개를” 교체하기도 합니다. 그는 하루의 노동으로 번 돈으로 동전을 사서 ”시 뽑는 기계“의 구멍을 더듬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