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도니의 '이성적인 세계' (2)

필자 (匹子) 2020. 4. 8. 11:10

6. 『이성적인 세계 세계』사람들의 식사 그리고 의복: 모든 사람들은 근검절약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기며, 물품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습니다. 이는 토머스 모어의 경우와 대동소이합니다. 사람들은 점심시간에는 거대한 식당에 모여서 함께 식사합니다. 모든 물품과 음식은 사람 수에 따라 평등하게 나누어집니다. 모든 것이 공동 소유이기 때문에 재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싸우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모형의 의복을 걸칩니다. 특권을 누리는 자도 없고, 노예도 없으므로, 같은 곳의 규칙에는 어떠한 예외조항도 없습니다. 다만 나이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10년의 간격대로 다른 색의 옷을 착용합니다. 이로써 사람들은 상대방의 나이를 옷 색깔로 분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곳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과 취향 등을 외부로 드러낼 수 없으며, 오로지 자신이 행하는 직업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개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노동의 능률을 발휘하는가? 하는 물음이 『이성적인 세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관심사의 전부입니다.

 

7. 경제와 교육: 이미 언급했듯이 사유재산제도는 철폐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공동 소유로 되어 있으니, 화폐도 시장도 불필요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모든 물품들의 수와 양을 측정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계량기도 필요 없으며, 측량기도 필요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물품을 물품 보관소에서 그냥 가져가면 됩니다. 대신에 일하는 자만이 무언가를 소유할 수 있으며, 음식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절대로 먹을 것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은 기독교의 계율로 정착되어 있습니다.

 

『이성적인 세계』에서는 세밀한 규정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지만 경제의 영역이 너무 단순하기 기술되고 있기 때문에 모호한 측면 역시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누가 더럽고도 힘든 노동을 담당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도니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과학 기술 및 이에 대한 활용에 관해서 도니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교육 제도 역시 매우 단순합니다. 만 6세가 된 아이들은 공동으로 생활하며, 국가로부터 교육을 받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불구 내지 장애아이가 태어날 경우, 사람들은 그 아이를 우물에 빠뜨려 죽인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고대 도시 국가에서 행해진 관습이었는데, 도니의 유토피아에서 다시금 채택되고 있습니다.

 

8. 법과 정치 제도: 『이성적인 세계』는 그야말로 완전한 평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인간의 오만과 범죄를 척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제도를 고안해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노예 제도의 활성화였습니다. 그러나 도니의 유토피아는 복잡한 법령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특권계급도 없고, 노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지배계급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100명의 사제가 도시의 100개의 블록을 관장할 뿐입니다. 이들은 일상의 행정을 관장하며,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도시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은 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자인데, 그에게는 어떠한 특별한 권한도 부여되지 않습니다. 다툼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법정이 필요 없습니다. 결혼 제도가 없기 때문에 남녀 관계의 여러 가지 투쟁, 질투, 불화 등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외부로부터의 무력 도발의 가능성은 전혀 없으므로, 군대 조직 역시 처음부터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9. 결혼 제도의 폐지: 도니의 유토피아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결혼 제도의 폐지입니다. 결혼을 폐지하면, 가족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와 자식 사이의 끈끈한 관계는 사라지겠지만, 대신에 공동체를 중시하는 마음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도니는 믿습니다. 가족 제도가 사라지면, 죄악도 사라지게 되리라고 도니는 주장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가족 제도가 없으면, 남편과 아내가 치정 살인 당하지 않을 테고, 여성이 죄악의 모든 근원이라는 말도 사라질 것입니다. 게다가 지참금 등과 같은 결혼식과 결부된 재산 문제도 존재하지 않을 테고, 가문과 가문 사이의 자존심 대결도 존재하지 않겠지요.

 

섹스로 인한 사기 행각 그리고 갈등도 없을 테지요, 사악한 인간들은 여염집 규수들을 건드린 뒤에 남편에 의해서 살해당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결혼 시에 집안을 따지고, 남자의 명예와 자존심 등을 거론하며 결투를 벌이는 일도 사라질 것입니다.(Doni: 11f) 도니의 유토피아에서는 여성들이 공동 소유이기 때문에, 혈통을 따지거나 신분 차이를 내세우는 일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니는 어째서 가족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공언한 것일까요?

 

10. 결혼과 가족 제도는 사회악을 심화시키게 하는가?: 사실 토머스 모어는 이기심과 탐욕을 근절하기 위해서 사유재산 제도를 철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일부일처제의 가족 제도에 대해 과감한 메스를 가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서 모어가 서술한 유토피아의 어떤 결함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유산 제도입니다. 비록 『유토피아』에서는 사유물이 존재하지 않지만, 부모의 유산에 관한 문제는 재화의 크기가 크든 작든 간에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공유제라고 하지만, 가족이 존재하면, 사적인 소유물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어쨌든 도니는 일부일처제의 가족 제도가 국가와 사회의 가치와 중요성을 망각하게 한다고 합니다. 가족 제도를 고수한다는 것은 오로지 가문 내지 가족만을 중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바로 이기주의를 심화시키고 탐욕을 강화시키게 하는 동인이라고 합니다. 만약 가족 제도가 폐지된다면, 사회악 역시 제거되리라고 도니는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11. 결혼과 가족에 관한 캄파넬라의 사고: 나중에 캄파넬라는 세 가지 사항을 언급하면서 도니의 이러한 입장을 계승하였습니다. 첫째로 결혼과 가족 제도가 파기되면, 도적적인 죄악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결혼을 둘러싼 가문과 가문 사이의 대립 역시 더 이상 출현하지 않게 되며, 결혼 자금의 문제도 해결되리라고 합니다. 간통, 강간 그리고 치정 살인 역시 가족 제도가 존속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범죄라는 것입니다. 캄파넬라의 이러한 견해는 도니의 그것과 거의 일치합니다. 둘째로 결혼 제도와 가족 제도는 사회적 차별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혼과 가족 제도가 사라지면, 일차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경우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문과 혈통이 사라지게 될 테고, 어느 누구도 사회적으로 차별당하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셋째로 결혼과 가족 제도가 사라지면, 어느 누구도 짝사랑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으라고 합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영위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12. 요약: 지금까지 우리는 에벌린과 도니의 유토피아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에벌린의 경우 계층 사회가 폐지되지 않고, 관료주의의 이상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우리는 작품을 토머스 모어의 아류로 이해할 수 있으며, 종교사적 차원에서 재론되는 문헌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니의 유토피아는 이와는 다릅니다. 『이성적인 세계』는 모어의 유토피아보다도 더 철저한 평등한 사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특권은 사라지고, 노예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중에 페늘롱의 두 가지 유토피아 가운데 하나인 “베타케”의 전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도니는 모든 사회적 죄악을 척결하기 위해서 결혼 및 가족 제도의 폐지를 주장함으로써 플라톤의 여성 공동체의 생활 방식을 계승하였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뒤이어 출현할 캄파넬라의 질서 유토피아에 나타난 생활상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태양의 나라의 젊은 남녀들은 점성술의 시간에 맞추어 상대방을 찾아서 짝짓기를 행합니다. 그 대신 임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 짝짓기의 경우 점성술의 기준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캄파넬라는 결혼과 가족 제도를 폐지하고, 그 대신에 여성 공동체를 용인하였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사랑의 삶 그리고 사회적 삶에 있어서의 모든 부자유를 떨칠 수 있다고 캄파넬라는 굳게 믿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