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

필자 (匹子) 2022. 10. 7. 20:47

 

 

 

에우리피데스 (기원전 485 - 406년)의 비극 메데아는 기원전 430년경에 씌어졌다. 극작품은 메데아라는 어느 처녀에 관한 소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재에 의하면 메데아는 멀리서 온 낯선 용사를 사랑하여 그를 도와 온갖 모험과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고향으로 향한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버림받게 되어, 이에 대해 괴로워하다가, 잔인한 복수극을 감행한다.

대부분의 그리스 고대 비극이 그러하듯이 메데아 소재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령 아르고 호 선원들의 이야기는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 (Apollonios Rhodios)의 “아르고나오티카”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는 주제 상으로 영상학적 차원에서 그리고 사상적으로 나름대로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는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작품이다. 극작가는 (1) 극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여주인공의 심리 상태, (2) 청원하는 장면, 간계 및 술수를 사용하는 장면, 아테네를 찬양하는 장면, 잔인한 사건에 관한 수준 높은 수사학적인 대화 (3) 인간 이성의 가치와 그 영향에 대한 질문 등을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탁월한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프롤로그 (1행 - 130행)은 유모와 교사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줄거리 이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령 아르고호 선원들의 항해, 금량피를 찾기 위한 이아손의 투쟁, 메데아의 마력적인 도움, 사랑 그리고 결혼, 나아가 메데아와 이아손 사이의 갈등 등이 은근히 암시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메데아의 목전에 닥친 직접적인 위험 역시 묘사된다. 다시 말해 크레온 왕은 메데아를 코린트에서 추방시키려고 한다. 메데아는 자신에게 처한 고통을 피부로 느끼고 이에 대해 처절하게 격노한다. 나아가 극작가는 신하들이 무조건 군주에게 굴복하고 있는 모습을 은근히 비판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에우리피데스의 계몽주의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어지는 부분 (271행 - 356행)에서 코린트의 크레온 왕이 등장한다. 그는 메데아를 추방시키려고 하나, 메데아는 기지를 발휘하여, 추방 날짜를 연기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어리석은 권력자와 영리한 인민 사이의 놀라운 유희를 엿볼 수 있다. 연이어 이아손과 메데아는 서로 싸우듯이 대화를 나누는데, 우리는 극작가가 당시에 사용되던 궤변술 그리고 웅변술의 배후 부분에 대해서 아주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이아손과 메데아의 대화 (446행 - 626행)는 오랫동안 지속된다. 이 장면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의견 대립이 마치 놀라운 수사학적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아손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메데아를 배신해야 했다는 것을 설파한다. 메데아는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 격분하며, 이아손의 논리가 다만 터무니없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아손의 논거는 플라톤의 대화에서도 나온 바 있는 허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두 사람은 가상과 현실 사이의 빈 틈에 관해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대목은 고대 그리스에서 떠돌아다녔던 철학 논쟁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게우스의 장면 (663 - 763)에서 왕 아이게우스는 메데아에게 피난처를 마련해 준다. 이로써 극작가는 자신이 속했던 도시 국가의 친절한 태도를 은근히 내세우고 있다. 다음 장면 (866행 - 975행)에서 메데아는 다시금 이아손과 대화를 나눈다. 이때 메데아는 복수에 대한 욕망을 다시 드러내고, 무엇보다도 이성을 따르라고 권고하는 이아손을 비아냥거린다. 메데아의 발언 및 이아손에 대한 요구 사항은 자신의 복수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그를 관여시키려는 철저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열정과 이성의 대립은 메데아의 독백 (1021행 - 1080행)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미는 크레온 왕과 그의 딸에 대한 자신의 복수가 성공리에 끝나게 되리라고 확신하면서, 아울러 자신의 두 쌍둥이 아들을 죽일 결심을 굳힌다. 메데아는 자신의 계획이 참혹한 범죄 행위임을 인정하지만, 스스로 너무 커다란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러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고 술회한다. 메데아의 견해에 의하면 아이를 죽이는 일이야말로 이아손에 대해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메데아는 자신의 열정대로 계획을 실행하느냐, 아니면 모든 범행을 처음부터 포기하느냐를 놓고 번민을 거듭한다. 이러한 갈등은 에우리피데스와 소크라테스 사이의 논쟁을 연상시킨다. 두 사람은 인간의 이성이 인간 행위에 대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가를 놓고 논쟁을 벌린 바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에 편을 들었고, 에우리피데스는 이성 외의 다른 요소를 충분히 수용했던 것이다. 다음 장면 (1121행 - 1230행)에서 메데아는 크레온 왕과 그의 딸 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에 두 아들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러한 살해 행위를 통해서 메데아는 후세 사람들에게 인간의 척도로는 도저히 잴 수 없는 끔찍한 인물로 이해되었다. 마지막 장면 (1293행 - 1414행)에서 메데아는 이아손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이아손은 메데아가 죽은 아이들과 함께 용의 전차를 타고 도망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메데아는 여신 헤라의 성전에 두 아들을 묻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