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80

서로박: 브레히트의 라 시오타의 군인

“군인 정신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의리, 용기 그리고 희생정신 등이 이른바 군인 정신이라는 것이다. 핵폭탄이 터지기 직전이 아닌가? 나는 의리, 용기 그리고 희생정신을 중시하기보다는, 일단 삼십육계 줄행랑을 택하겠다.” (브레히트)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 라 시오타의 1년 시장 한복판에 살아 있는 군인 한 명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에 걸쳤던 청동 갑옷을 입고 있다. 그 군인은 베르뎅 전투 당시에 땅 밑에 파묻혔는데, 그 이후부터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간에- 오랫동안 버티고 서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이를 어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비범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그는 한마디로 동상 (銅像)이자, 인간이다...

46 Brecht 2019.06.27

서로박: '나의 동생은 비행사였네'

친애하는 B, 훌륭한 문학 작품은 평화를 지향합니다. “문학은 평화의 연구 작업이어야 한다.”라는 크리스타 볼프의 말을 생략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모든 문학은 만인의 평화 공존 그리고 자유와 평등이 지배하는 삶을 갈구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전쟁 문학만이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 구조를 꿰뚫는 대부분의 작품 내용 자체가 이미 평화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을 생각해 보세요. 비록 비는 많이 오지 않지만, 그런 대로 목초지가 아름답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양떼와 양치기의 피리 소리가 올려 퍼지던 천혜의 땅은 오래 전에 먼지 펄펄 날리는 황무지로 변해버렸습니다. 구소련은 7..

46 Brecht 2019.05.31

서로박: 브레히트의 전나무

친애하는 J, 당신은 시인 지망생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오늘은 브레히트의 단시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브레히트는 50년대에 짧은 시를 즐겨 썼습니다. 이것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코 비가』 연작시입니다. 오늘은 연작시 가운데, 전나무들이라는 시를 감상하려고 합니다. 브레히트는 일본의 전통적 2행시인 하이쿠에 대해서 무척 커다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브레히트를 매혹시킨 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이었습니다. 즉 단시 속에는 기발한 관찰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떨어지는 꽃잎 하나가/ 자신의 가지로 되돌아 날아가지: 어느 나비. (Die abgefallne Blüte fliegt/ zurück an ihren Ästen/ Ein Schmetterling)”..

46 Brecht 2019.04.10

서로박: 브레히트의 연극을 위한 작은 오르가논

베르톨트 브레히트 (B. Brecht, 1898 - 1956)의 「연극을 위한 작은 오르가논 (Kleines Or- ganon für das Theater)」은 1949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그는 1939년부터 집필한 "놋쇠 구입" 작업의 일환으로서 연극과 극예술에 관한 대화를 완성하지 못했는데, 평소에 이를 보완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본고에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오르가논”에 실린 77개의 경구적인 글에 착안하여) 연극에 관한 브레히트 자신의 구상이 담겨 있다. 감정 이입이라는 자연주의적 원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극 이론과 일맥 상통하고 있는데, 브레히트에 의하면 파시즘의 죄악을 지적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부르주아들이 “마약 판매”로 재화를 벌면..

46 Brecht 2019.03.31

서로박: 브레히트의 도덕경 시 (1)

노자가 망명길에서 도덕경 서적을 탄생하게 된 사실에 관한 전설 베르톨트 브레히트 1. 노자가 칠순이 되었을 때, 몸이 약해졌다, 쉬고 싶다는 충동이 솟아올랐다, 왜냐하면 이 땅에는 선함이 다시 약해졌고, 악이 창궐하여 세력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신발 끈을 매었다. 2. 그래서 필요한 것을 챙겨 짐을 꾸렸다. 아주 작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몇 개 되었다. 가령 저녁이면 언제나 사용하던 담뱃대, 언제나 읽곤 하던 작은 책 한 권. 눈대중으로 어림잡은 흰 빵 한 조각. 3. 산맥 속으로 길이 접어들자 그는 계곡의 정경을 즐기고 모든 것을 잊었다. 황소도 노인을 태우고 가면서 신선한 풀을 씹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도 좋았기 때문이다. 4. 그러나 넷째 날 암벽에 이르게 되자 세관원 한..

46 Brecht 2019.03.12

서로박: 브레히트의 '어느 책읽는 노동자의 질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베르톨트 브레히트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바윗덩어리들을 끌고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된 바빌론 누가 그토록 여러 번 그 도시를 일으켜 세웠던가? 건축노동자들은 황금빛 찬란한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성된 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에는 개선문들이 많기도 하다. 누가 그것을 세웠던가? 시저 같은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개선했던가? 흔히도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비잔틴 주민들을 위한 궁정들만 있었던가? 전설적인 아틀란티스에서도 바다가 그 땅을 삼켜버린 날 밤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들이 그들의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벌했다. 그 혼자서 해냈던가?..

46 Brecht 2019.03.12

서로박: 브레히트의 코이너씨의 이야기 (5)

(9) 소크라테스: 브레히트는 불가지론을 거부하였습니다. 인식하려는 인간의 지적 노력은 사물의 본질을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고대의 소피스트들은 마치 아는 체하며, 사물의 본질은 인식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하며, 다른 소피스트들을 공격했습니다. K씨는 소크라테스를 역시 수많은 소피스트들 가운데 한사람이라고 규정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발언 역시 근본적으로 고찰할 때 불가지론을 부분적으로 용인하기 때문입니다. “사물의 본질은 전적으로 인식될 수 없다. 그렇지만 무지에 대한 인식만은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다.”라는 명제를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나온 것이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라는 명제였습니다. 소크라테..

46 Brecht 2019.01.25

서로박: 브레히트의 코이너씨의 이야기 (4)

(4) 현자의 방식은 그 자세에 있다: K씨는 어느 철학 교수를 만나 “지혜”에 관해서 듣고 있습니다. 이때 K씨는 대꾸합니다. “당신은 불편하게 앉아 있고, 불편하게 말하며, 불편하게 생각하는군요.” 그러자 철학 교수는 화내면서 말합니다. 지금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내용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K씨는 철학자의 자세가 불편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의 사고에 관해 전혀 알고 싶지 않으며, 그의 목표 역시 흥미롭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친애하는 M, 이는 무엇을 말할까요? 철학 교수는 이른바 산만한 교수로서, 자신의 사고에 함몰해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일상생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머릿속에서 자아낸 추상적 관념론을 논리적으로 밝히려고 시도합니다. 그렇기에 강단 철학자의 태도는..

46 Brecht 2019.01.25

서로박: 브레히트의 코이너씨의 이야기 (3)

친애하는 M, 이제 개별 작품에 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1) K씨와 자연: 브레히트는 자연 풍경을 몹시 좋아했습니다. 집주위의 아름다운 백양나무들을 관망하기를 매우 즐겼지요. 이때 누군가 “나무를 보려면, 왜 야외로 차를 타고 나가지 않는가?”하고 묻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코이너씨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브레히트는 자신이 일하면서, 아울러 즐기기를 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삭막한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휴식 시간에 인적이 드문 자연을 찾곤 합니다. 인간과 자연은 브레히트에 의하면 상호 보조적이며, 서로 동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자연에는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게 브레히트의 지론이었습니다. 만약 사람이 없으면, 자..

46 Brecht 2019.01.25

서로박: 브레히트의 코이너씨의 이야기 (2)

(7) 코이너 씨는 카를 코르쉬를 지칭할 수도 있다: 넷째로 우리는 또 한 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코이너씨는 30년대에 브레히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카를 코르쉬 Karl Korsch일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Y, 카를 코르쉬 (1886 - 1961)는 독일 뤼네브르크에서 태어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입니다. 그는 오늘날 이탈리아의 그람시 Gramsci, 헝가리의 루카치 G. Lukács 등과 함께 마르스주의 철학의 혁신자로 손꼽히는 학자입니다. 1923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전신인 “사회조사 연구소”의 창립 멤버로 일할 때, 코르쉬는 실증주의와 유물 변증법의 실천 사이에서 어떤 조정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후에 그는 당시 멤버였던 호르크하이머와의 불화로 인해서 “사회조사 연구..

46 Brecht 2019.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