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브레히트의 코이너씨의 이야기 (2)

필자 (匹子) 2019. 1. 25. 10:52

(7) 코이너 씨는 카를 코르쉬를 지칭할 수도 있다: 넷째로 우리는 또 한 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코이너씨는 30년대에 브레히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카를 코르쉬 Karl Korsch일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Y, 카를 코르쉬 (1886 - 1961)는 독일 뤼네브르크에서 태어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입니다. 그는 오늘날 이탈리아의 그람시 Gramsci, 헝가리의 루카치 G. Lukács 등과 함께 마르스주의 철학의 혁신자로 손꼽히는 학자입니다. 1923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전신인 “사회조사 연구소”의 창립 멤버로 일할 때, 코르쉬는 실증주의와 유물 변증법의 실천 사이에서 어떤 조정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후에 그는 당시 멤버였던 호르크하이머와의 불화로 인해서 “사회조사 연구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1923년에 코르쉬는 자신의 저서, 『마르크스주의와 철학 Der Marxismus und die Philosophie』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책은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Die Geschichte und das Klassenbewußtsein』,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 Geist der Utopie등과 함께 후기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서적으로 손꼽힙니다. 이 책에서 코르쉬는 “어째서 제 2인터내셔널의 사민당이 1918년에 혁명을 성공리에 완수하지 못했는가?”를 비판적으로 구명하며, 레닌 Lenin의 『국가와 혁명』에 기술된 레닌주의의 전언들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8) 바이마르의 지식인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K씨를 카를 코르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친애하는 Y, 작품을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즉 코이너씨는 바이마르 시대의 독일 지식인 같아 보입니다. 그는 사회 혁명적 목표에 동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계급 차이가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K씨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실제로 투쟁하고, 혁명 세력을 조직하는 일에 대해서는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는 혁명에는 동조하지만, 실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몹시 꺼려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카를 코르쉬 (Karl Korsch)의 그것을 방불케 합니다.

 

(9) 『코이너 씨의 이야기』는 어떻게 분류될 수 있는가?: 코이너 씨의 이야기는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명징한 분류는 어쩌면 불가능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신을 위하여 가급적이면 흐릿하고도 개괄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분류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철학과 종교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코이너 씨의 사상과 종교에 관한 견해가 은근히 담겨 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적」,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K씨와 자연」, 「설득력 있는 질문」, 「K씨가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둘째로 사회학과 정치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가령 다음의 글은 이에 해당됩니다.「폭력에 대항하는 조처들」, 「조국애」, 「나쁜 것은 천하지 않다」, 「굶주림」, 「힘없는 아이」, 「K씨와 고양이」, 「좋은 대답」 등. 상기한 글에서는 폭력과 살아남기에 대한 브레히트의 입장 등이 용해되어 있습니다. 셋째로 예술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독창성」, 「형식과 소재」, 「고대」, 「K씨와 서정시」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는 우화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예술론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들입니다. 넷째로 미덕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존속하지 못하는 예술」, 「신뢰성」, 「나약함의 권리」, 「우정에 관하여」, 「정의감」 등. 다섯째로 변증법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이에 속하는 글들은 의외로 상당히 많습니다. 「재회」, 「K씨가 애호하는 동물」, 「두 도시」, 「누가 누구를 아는가?」, 「낯선 곳의 K씨」, 「기다림」 등등. 요약하건대 상기한 글들의 분류는 일도양단 식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서로 중첩되기도 합니다.

 

(10) 친애하는 Y, 당신은 발표하기 전에 가급적이면 『코이너 씨의 이야기』를 모조리 통독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주어진 몇 편의 글만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 아무런 커다란 의미를 전해주지 않습니다. 작품들은 짤막짤막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번역본은 브레히트의 K씨의 이야기 전부를 싣고 있지 않습니다.) 1967년에 간행된 20권으로 이루어진 브레히트 전집에는 도합 87개의 코이너 씨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고, 1995년에 간행된 30권으로 이루어진 브레히트 대 전집에는 113개의 코이너 씨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읽어보면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글들의 3분의 2 이상이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작품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누군가 K 씨에게 18번 묻고 있으며, K씨 스스로 16번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 말입니다. K씨는 자신에게 단 한번 질문을 던지고, 두 번 되묻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코이너씨의 이야기』는 극작품의 집필을 위한 메모 내지는 비망록의 기능을 담당하는 대화 모음집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11) 다시 코이너씨에 관하여: 친애하는 Y, 작품을 읽으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K씨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단언할 수 없다는 사항 말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브레히트는 처음부터 코이너씨의 인물의 특성에 관심을 기울인 게 아니라, 코이너씨와 다른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의 관계를 중요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전편을 정독하더라도 K씨에 관한 사항을 충분하게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코이너씨는 비판적인 사상가입니다. 그는 대체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여러 번 읽으면 우리는 K씨가 처한 현실적 정황을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즉 K씨에게는 몇몇 친구들이 있습니다. K씨는 어느 여주인의 집에 거주하며, 여주인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하루하루 생활하고 있습니다. K씨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고, 작은 질녀가 한 사람 있습니다. 또한 그에게는 여배우로 일하는 애인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그가 작가 자신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그가 브레히트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12)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K씨의 태도이다: 친애하는 Y, 일단 코이너씨가 누군가? 하는 물음에 관해서는 접어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대신에 그가 처한 삶의 정황,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K씨의 태도에 관해서 주의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사실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논평하고 진단합니다. 이는 표정, 제스처, 어투 등에 의해서 분명히 인지되곤 합니다. K씨의 태도는 언제나 대화 상대자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작품 내에서 상호적으로 기능합니다. 따라서 등장인물의 관심사는 간주관적 (間主観的, intersubjektiv) 특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K씨는 주체와 주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내용 전달, 의사소통에 대해서 가장 커다란 관심을 기울입니다. 코이너씨는 몹시 신중합니다. 그는 상대방에게 어떤 특정한 일방적 가르침을 전달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오로지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피력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발언에 대한 대응 내지 반론의 셩격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그리니 스스로 상대방에게 말을 끄집어내는 경우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13) 다시 갈릴레이, 영웅을 필요로 하는 나라는 불행하다: 그렇습니다, 코이너씨는 지식의 전달자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론 및 계급투쟁의 철학을 위하여 함부로 목숨을 초개처럼 버려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코이너씨는 직접 총을 들고 싸우는 일을 꺼려합니다. 적어도 자신의 사고를 행동으로 관철시키지 못하는 한, 그는 우유부단한 지식인의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브레히트는 실제로 카를 코르쉬의 사고를 추종했지만, 그의 행동에 대해서 언제나 언짢게 여기면서 못마땅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렇기에 30년대 말에 일시적으로 레닌주의의 실천이 하나의 바람직한 사상적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브레히트 역시 지식인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무책임한 방식으로 처신하는 등 여러 가지의 우를 저질렀습니다. 브레히트 역시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조련사가 거둔다.”는 고통스러운 역사의 아이러니를 너무나 일찍 깨달았기 때문일까요? 그의 시구는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상어 떼를 피했다/ 호랑이를 무찔렀다./ 그러나 빈대에게 마구 뜯기고 말았다.” (M을 위한 묘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