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나의 동생은 비행사였네'

필자 (匹子) 2019. 5. 31. 11:47

친애하는 B, 훌륭한 문학 작품은 평화를 지향합니다. “문학은 평화의 연구 작업이어야 한다.”라는 크리스타 볼프의 말을 생략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모든 문학은 만인의 평화 공존 그리고 자유와 평등이 지배하는 삶을 갈구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전쟁 문학만이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 구조를 꿰뚫는 대부분의 작품 내용 자체가 이미 평화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을 생각해 보세요. 비록 비는 많이 오지 않지만, 그런 대로 목초지가 아름답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양떼와 양치기의 피리 소리가 올려 퍼지던 천혜의 땅은 오래 전에 먼지 펄펄 날리는 황무지로 변해버렸습니다. 구소련은 70년대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습니다. 구소련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였습니다. 전략적 효과를 위해서 그리고 무역을 위해서 소련은 세계의 거센 비난에도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습니다. 중동 국가들은 소련의 침공을 막으려 했고, 미국 역시 이를 저지하려 했습니다. 이로써 결성된 것은 무자히딘 군대이며, 바로 이러한 군대를 통해서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테러리스트가 거대한 세력을 키워갔습니다. 한마디로 아프가니스탄은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강대국의 권력 다툼으로 인한 희생양입니다.

 

이제 브레히트의 시 「나의 동생은 비행사였네」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나의 동생은 비행사였지

어느 날 그는 카드를 받았지

그는 비행기를 장착하여

남쪽으로 향해 날아갔지

 

나의 동생은 정복자였지

우리 민족에겐 얻어야 할

공간, 토대, 토양이 없지

우리에겐 오랜 꿈이었지

 

내 동생이 정복했던 땅은

과다라마 산맥 속에 있지

그 길이는 1미터 80이고

그 높이는 1미터 50지

 

Mein Bruder war ein Flieger,

Eines Tages bekam er eine Kart,

Er hat seine Kiste eingepackt.

Und südwärts ging die Fahrt.

 

Mein Bruder ist ein Eroberer,

Unserm Volke fehlt’s an Raum,

Und Grund und Boden zu kriegen, ist

Bei uns ein alter Traum.

 

Der Raum, den mein Bruder eroberte,

Liegt im Quadaramamassiv,

Er ist lang einen Meter achtzig

Und einen Meter fünfzig tief.

 

(질문) 1. 제 1연에서 시제는 어떠한 이유에서 과거형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2. 제 2행에서 카드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3. 제 1연에서 시인은 운을 맞추려고 단어를 잘못 골라 사용하였다. 찾아서 고치시오.

4. “우리 민족에게는 공간이 결핍되어 있다”는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인가?

5. “토대 (Grund)”와 “토양 (Boden)”이 뜻하는 바는? 어느 지역에서 “고향 사람”이 중시되면, 누가 피해를 당하게 되는가?6. 제 2연에서 “오랜 꿈”이 지니는 의미는? 낭만주의와 관련해서 대답해 보라.

7. 제 3연에서 죽은 동생이 위치한 곳은 어디인가?

8. 궁극적으로 “나의 동생”은 무엇을 정복하려고 했으며, 결국 무엇을 정복했는가?

 

(해설)

브레히트의 시 「나의 동생은 비행사였네」 는 1937년에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작품은 「나의 동생, 정복자 (Mein Bruder, Eroberer)」라는 제목으로 한스 아이슬러 Hans Eisler에 의해서 노래로 만들어졌습니다. ?칼렌더 이야기?에 첨가된 것은 1948년입니다. 이 시는 하나의 사건과 관련됩니다. 즉 히틀러는 1936년 6월 에스파냐 내전이 발발했을 때 비행 군단 콘도르 (Condor)를 그곳으로 보낸 바 있습니다. 이로써 독일 비행 군단은 에스파냐 전투 지역에 폭격을 가했고, 나중에 게르니카의 학살로 이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독일군은 1937년 4월 16일 게르니카에 폭격을 가했는데,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 사건을 “게르니카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통해 자세히 묘사하였습니다.

 

제목에서 우리는 비행사가 이미 세상을 하직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나”의 동생은 정복자로서 전쟁에 참여하였으며, “공간 없는 독일 민족”의 영화로움을 꿈꾸는 몽상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땅을 차지하려는 그의 꿈은 이제 죽은 뒤 현실화되었습니다. 제 3연에서 나타나듯이, 그의 꿈은 무덤으로 실현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인공 “나”의 동생은 낯선 지역, 마드리드의 북서쪽에 있는 과다라마 산맥에서 어떤 무덤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과다라마 산맥은 1936년에서 1939년 사이에 발생했던 에스파냐 내전 당시에 전략적 요충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독재자 프랑코 정권은 1939년에 이 지역을 정복한 바 있습니다.

 

이 시는 전사한 동생을 애도하는 노래입니다. 전사한 형은 비단 화자 “나”의 친동생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모든 독일인의 동생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수많은 독일인처럼 낯선 땅을 정복하려는 위험한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희생자에 대한 동정심은 전쟁의 원인으로 작용한 히틀러의 팽창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향합니다. 실제로 브레히트의 동생 발터 브레히트 (1900 - 1986)는 비행기에 관심을 보였고, 나중에 제지 공학을 연구하여 다름슈타트 공대의 교수로 일한 바 있습니다.

 

“오래된 꿈”은 낭만주의의 이념과 관계됩니다. 만약 낭만주의의 정신이 지배 권력으로 들어서면, 세계는 꿈이 되고 꿈은 세계가 된다고 합니다. 많은 독문학 연구가들은 낭만주의를 역사적으로 볼 때 독일의 순수한 운동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들은 어떤 긍정적인 의미를 배후에 깔았던 것입니다. 브레히트는 낭만주의에다 그다지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낭만주의자들이 추구한 죽음의 동경은 이미 파시즘의 이념 속에 내재해 있으며, 정복의 욕구는 죽음을 가져온다고 지적한 사람은 브레히트가 아니라 토마스 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낭만주의는 브레히트의 견해에 의하면 독일의 가장 훌륭한 전통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