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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호: (3) P. M.의 "볼로 볼로"

필자 (匹子) 2023. 2. 7. 10:16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볼로의 구조와 크기: 모든 볼로는 제각기 사각형의 건축물로 축조되어 있습니다. 건축물은 8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00미터의 길이 그리고 20미터의 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복판에 정원이 위치하여, 사람들의 거주 공간에 사계절 항상 햇빛이 드리워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건축 형태는 최소한의 시설로 난방비를 절약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실 북반구의 육지는 남반구의 그것에 비해 다섯 배 크며, 이로 인하여 인구 역시 밀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반구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는 남반구의 에너지에 비해 월등히 많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원을 아끼고 절약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나중에 다시 언급되겠지만, 모든 볼로 사람들은 반드시 농업에 종사해야 합니다. 하나의 볼로에는 약 90헥타르의 논밭이 주어져 있습니다. 물론 지역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사람들은 이곳에서 유기농 기술을 실천하며 우유 그리고 감자 등을 생산해냅니다.

 

12. 문화적 다양성: 볼로는 전체주의의 일원성을 지양하고 개별 인간의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합니다. 건축 양식도 다양하고 이질적입니다. 볼로의 볼로는 문화적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러한 입장을 전 지구적 개별 공동체에게 전달하고 지지합니다. 공동체는 다양한 특징을 지닙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자신의 취미 내지 세계관에 따라,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을 고려하여 하나의 볼로를 선택하여 가입할 수 있습니다. 볼로스는 여러 볼로가 규합된 단체입니다. 이 경우 볼로스는 어떤 분명한 특징을 외부적으로 드러냅니다.

 

수많은 볼로 가운데에서는 다음과 같은 볼로가 존재합니다. 공생 볼로, 안티 볼로, 이스탄 볼로, 레스 볼로, 플레이 볼로, 사도 볼로, 채식주의 볼로, 아라 볼로, 헤브로 볼로, 맥주 볼로, 알코올 볼로, 대마 볼로, 도 (道) 볼로, 디스코 볼로, 네크로 볼로, 마르크스 볼로, 신기술 볼로, 생태 볼로, 사회 볼로, 소비에트 볼로 등 모든 볼로가 가능합니다. 볼로의 볼로는 결코 하나의 번체주의의 시스템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작은 세계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시스템으로서,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얼기설기 짜깁기한 양탄자와 같이 보입니다.

 

13. 볼로의 아나키즘의 정치 구조: 볼로의 정치 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주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볼로가 채택하고 있는 자치적 체제는 이를테면 스위스의 칸톤 주의 경우와 유사합니다. 스위스에는 26개의 칸톤 주로 분할되어 있고,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 모든 것이 지방분권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가의 존재는 실질 권한을 지니지 않으며, 연방 공화국의 행정 체제만 갖추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듯 세계는 수많은 볼로의 모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가 중심의 모든 행정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모든 볼로스들은 제각기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규정을 고수하며,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갑니다.

 

모든 볼로스들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연락을 취하며, 느슨한 방식으로 다른 볼로와 관계를 맺습니다. 사람들은 가령 “달라스 dalas”라고 불리는 “평의회”를 구성하여 서로 연락을 취하며, 평의회는 다시금 “아사의 달라”라고 불리는 “세계 평의회”를 소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느슨한 방식으로”라는 표현입니다. 평의회와 세계 평의회는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기구가 아니며, 어떠한 권한을 지니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오로지 회원들의 의사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기능만을 수행할 뿐입니다. 만약 평의회 내지 세계 평의회가 어떤 법이나 규정을 결정할 권한을 지닌다면, 이는 차제에 국가를 재구성될 수 있는 소지를 지닌다고 합니다.

 

14. 국가권력을 차단하려는 노력: 볼로는 결코 기존의 국가 내지 세계 국가를 결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집된 단체가 아닙니다. 작가, P. M.은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소통과 협력의 작업은 언제나 권력을 창출한다. 권력을 전유하려는 개체 내지는 그룹은 어디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간의 이러한 권력 지향적인 성향을 사전에 차단하지 않으면, 사회적 조직체로부터 국가가 자라나기 마련이다.” (P. M. 83: 142). 모든 볼로들은 제각기 독립성을 고수함으로써 국가의 권력 남용을 최대한 억제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사람들은 평의회 내지 세계 평의회의 참석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합니다. 대표자들의 남녀의 분포를 미리 정해 놓습니다. 대표자의 선출은 제비뽑기로 결정됩니다.

 

그밖에 대표자로 선출된 사람이 장기 집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근무 연한을 철저하게 제한합니다. 모든 논의는 철저하게 공개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만약 어느 볼로가 무력을 사용하여 인접한 공동체들을 공격할 경우, 인접한 볼로스들은 순식간에 힘을 연대하여 이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물론 전쟁이 발생할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비하면 볼로들 사이의 갈등은 거의 출현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공동체의 안전과 방어를 고수함으로써 다시금 국가라는 권력 체제가 형성되지 않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볼로의 볼로』의 유토피아는 어떤 특정한 인간상에서 출발합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자유에 대한 결코 제어할 수 없는 충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적 방어를 위한 동맹 체제는 그들의 과업이 끝난 뒤에는 다시 완전히 해체되고 맙니다. 다시 말해서 볼로와 볼로 사이에서 결성된 동맹 체제는 사건이 발생할 때 순식간에 결성되어, 사건이 해결되면 신속하게 해체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볼로의 경찰 조직 내지 군대 조직은 -실제 우리가 처하고 있는 현실과 비교한다면- 10분의 1 정도로 축소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군사적 과업을 찾아서 자신의 임무를 존속시키려고 애를 쓰는 NATO와는 전혀 다릅니다.

 

15. 새로운 인간상의 변화: 여기서 우리는 일단 다음의 사항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P. M.이 설계한 유토피아는 대부분의 문학 유토피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인간이라는 슬로건을 강하게 내세우지는 않는다는 사항 말입니다. 전통적으로 고찰할 때 과거의 유토피아는 이타주의를 견지하는 인간형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 전체의 안녕을 위해서 자신의 개인적 행복을 포기하는 인간을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유형의 이상적 이타주의는 20세기 초의 사회주의 유토피아에서 정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령 우리는 보그다노프의 『붉은 혹성』(1907)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세계대전의 파국이 끝난 뒤에는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을 희생하라는 강령은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니지 않는, 치졸어린 요구사항으로 치부되었습니다. 가미가제의 비행사, 미국의 63 빌딩을 파괴하면서 자폭하는 돌출 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위험한 짓거리로 이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70년대 이후에 출현한 유토피아는 보다 모호하고, 파괴적인 성향을 지닌 인간형을 기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