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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란스마이어의 '키타하라 눈병' (2)

필자 (匹子) 2022. 6. 23. 10:03

(앞에서 계속됩니다.)

 

어느 날 미국의 록 콘서트가 개최됩니다. 베링과 릴리는 음악을 즐기면서 서로 가까워집니다. 그들은 고적한 탑에서 흥분한 채 열광적으로 키스를 나눕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암브라스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암브라스를 수소문합니다. 알고 보니 암브라스는 네오나치들에게 체포되어 갇혀 있었습니다. 베링은 이들과 격투를 벌이다가 암브라스를 구출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베링은 자신의 눈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감지합니다. 주위의 거리가 유독 캄캄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일순간 자신의 시력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 것입니다. 밖을 바라보면 외부가 어두운 점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어도 자신의 눈이 정상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행여나 자신의 눈이 멀먼 어떻게 하지 하고 베링은 전전긍긍합니다. 그의 병명은 “키타하라 눈병”으로 밝혀집니다. 그렇지만 그는 암브라스에게 이 사실을 탈어 놓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의 시력에 하자가 있다고 말하면, 일자리를 잃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릴리는 콘서트를 구경하다가 베링과 키스를 나누었지만, 뒤이어 거리감을 취합니다. 두 사람이 자연스러운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베링은 자신의 심리가 처음부터 파괴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했습니다. 베링의 아버지는 아들과 릴리의 도움으로 야전병원에 머물게 됩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데리고 어느 들판을 가로지릅니다. 이때 그들은 두 명의 도둑과 마주치게 됩니다. 도둑은 몸속에 살아있는 닭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나중에 닭을 요리해서 먹을 참이었습니다. 일순간 눈이 뒤집힌 베링은 릴리의 총을 잡아들고 도둑들을 그 자리에서 쏴죽이고 맙니다. 베링으로서는 과거의 끔찍한 트라우마로 인하여 닭을 학대하는 도둑을 순간적으로 증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릴리는 이러한 행동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미는 잔인한 살인자, 베링으로부터 더욱 거리감을 취하게 됩니다.

 

브란트 지역으로 향하는 도중에서 베링은 그미에게 한 가지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즉 서서히 나빠지는 자신의 시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그미는 다음날 야전 병원의 안과 의사를 찾아가라고 충고합니다. 그날 방 사람들은 횃불을 피우면서 축제를 벌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지 20년이 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원폭 투하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견해를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베링의 눈병 이름 또한 일본인의 이름으로 명명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서 세계의 평화를 자축한다는 식으로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다음날 베링은 야전 병원의 안과 의사를 찾아갑니다. 의사는 베링의 병명이 “키타하라 눈병”라고 말합니다. 베링의 동공에는 검은 반점에 생겨났는데, 나중에 운 좋으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의사는 언질을 줍니다. 베링은 릴리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모어로 되돌아옵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두 사람은 이곳의 늪지대를 정리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모어의 채석장은 더 이상 이윤을 남길 수 없으니, 그것은 차제에는 군사 훈련장으로 변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링이 인접 도시 브란트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암브라스는 서둘러 사람들을 동원하여 채석장 정리 작업을 정반 정도 끝냅니다. 치울 물건들은 많았지만, 그곳에서 돈으로 교환할 물건들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채석장이 더 이상 활성화되지 않자, 베링과 암브라스는 결국 브라질로 향하기로 결심합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철거 지역을 회복시키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때 릴리 역시 그들과 동행하게 됩니다. 릴리의 꿈은 원래 자신의 부모님과 산토스에서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세 사람이 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게 되었을 때 베링은 자신의 눈에 박혀 있었던 반점이 사라지게 된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눈에 박힌 반점이 오스트리아의 황량하고 음습한 늪지역과 관련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브라질은 다른 나라이지만, 전후에 나치 잔당들이 나라를 탈출하여 숨어서 살던 지역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언젠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1961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하여 이스라엘로 송치한 사건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바 있습니다.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써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습니다.) 베링과 암브라스는 거주지로서 브라질의 “파나토”를 선택합니다. 파나토Panato는 공교롭게도 포르투갈어로 “늪지”를 가리킵니다. 이는 도시 모어를 떠난 등장인물들이 여전히 황량하고 음습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말해줍니다.

 

브라질에 도착하게 되었을 때 세 사람을 맞이한 사람은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미는 “무브라”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미는 세 사람에게 새로운 채석장을 안내해줍니다. 채석장 지역은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멀리 줄지어선 섬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개들의 섬”이라고 불렸는데, 현지인들의 설명에 의하면 과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개들만이 섬에서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암브라스와 베링은 보트를 빌려 그곳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동안 릴리는 초조하게 두 남자를 기다립니다.

 

이때 두 명의 어부가 나타나서 릴리를 해안가로 데리고 갑니다. 그미는 두 사람을 기다리다가 행여나 산토스로 가는 버스를 놓칠까 전전긍긍합니다. 무이라는 헤어질 때 그미에게 자신의 군복 외투를 선물로 건네줍니다. 그러자 릴리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미에게 선물합다. 다른 한 편 베링과 암브라스는 섬을 샅샅이 탐색합니다. 이때 두 사람은 모어에서 고독하게 보낸 힘든 삶을 떠올립니다. 자고로 누구든 간에 과거에 대한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려운 법입니다. 두 사람이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소설은 끔찍한 사고로 끝납니다. 베링은 릴리에 대한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릴리는 자신을 사랑하기는커녕 증오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심리적 상흔과 문제점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상대방 여인에게서 발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떠나기 전에 릴리를 반드시 죽여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베링은 릴 리가 아니라, 무이라를 죽이고 맙니다. 멀리서 사실 릴리로 향해 방아쇠를 당겼는데, 그미의 외투를 입고 있던 무이라가 급습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베링은 다시금 무고한 사람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자신의 존재는 언제나 불안 속에서 벌벌 떠는 잙 한 마리의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베링은 절망을 떨치려고 암벽을 타고 산정으로 올라갑니다. 이때 암브라스에게 밧줄을 단단히 잡고 있으라고 청원합니다. 그러나 암브라스는 일순간 혼란에 사로잡혀 베링의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일순간 과거의 수용소 간부가 절벽의 바위 위로 올라간다고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암브라스는 자신이 붙잡고 있던 밧줄을 놓아버립니다. 바닥으로 낙하하는 동안 암브라스는 죽기 전에 드디어 자신의 팔이 어깨에서 자유롭게 빠져나가는 것을 감지합니다.

 

작품을 이해하려면 전후 오스트리아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 전에는 독일 지역이었으나, 전후에 하나의 나라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빈과 같은 대도시와 소도시는 그야말로 폐허가 되었는데, 오스트리아 지역의 복구는 무척 더딘 편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전쟁 이후에 새로운 국가 건설을 체험했습니다. 말하자면 오스트리아라는 국가가 독일로부터 떨어져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곳 사람들에게는 히틀러 정권에 대한 죄의식은 독일인들에 비해 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항상 국제 정세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전쟁의 피해 복구 사업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졌습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복구를 위해 강제 노동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1944년에 미국의 재정 장관이었던 헨리 모르겐토는 전쟁이 끝난 뒤에 독일 지역의 모든 땅을 농토로 변화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특히 오스트리아 지역은 알프스 산맥과 인접해 있으므로, 대대적인 농지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처음부터 희박했던 것입니다.

 

원래 인성은 유전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주위의 환경에 의해서 자극을 받고 그 특징이 각인되곤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암브라스와 베링의 인성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암브라스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다만 유대인 여자와 함께 살았다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갇혔으며,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해방 후에 미군 장교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득을 챙기며 살아가는데, 문제는 그가 고문의 흐유증으로 끔찍한 혼란에 빠진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그의 목숨을 앗아가고 맙니다. 베링은 한마디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닭-인간입니다. 그는 주위의 누구와도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외톨이입니다. 그는 기계 다루는 일과 총기 관리에 집착하면서도 외로움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 또한 현저히 약화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폐허로 변한 도시의 음습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항만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키타하라 눈병에 관한 것입니다. 베링은 눈에 커다란 검은 반점이 박혀서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중심성망맥락막염 Chorioretinitis centralis serosa”을 가리키는데, 우리는 의학적 해명보다, 문학적 상징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가 란스마이어는 이러한 눈병을 키타하라 눈병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키타하라 눈병이라는 표현은 작가 란스마이어가 가상적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원자 폭탄의 피해를 입게 된 일본인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작품의 주제를 고려하여 키타하라의 눈병의 상징성을 발견해내어야 할 것입니다. 키타하라 눈병은 (1)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현실 감각의 상실, (2) 정서적으로 파괴된 한 인간의 암울함, (3) 황량한 자연과 동일시되는 자아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불안 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