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옐리네크의 '성욕'

친애하는 E, 오늘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완강한 페미니스트이자 소설가인 엘프리데 옐리네크 (1945 -)의 󰡔성욕 (Lust)󰡕에 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 작품은 1989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원래 그미는 조르주 바타이유의 외설 비평 󰡔눈의 역사󰡕 (1924)에 대한 반대되는 문헌에 해당하는 여성적 포르노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여성적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의 성적인 열망을 작품 속에 담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섹스의 문제가 여성에 의해서 집필된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문헌은 가령 파울린느 레아제 Pauline Réage의 󰡔오양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별로 재미없는 것들이 태반이었습니다. 옐리네크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데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그미의 관심사는 다음의 사실을 고발하는 데 있습니다. 즉 남성들이 가정에서 그리고 상업적 포르노 산업에서 여성에 대해 끔찍한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기에 소설은 따뜻하고 감미로우며, 포근하고 유려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차갑고, 냉혹하며, 쓰라리고, 표독스러운 느낌은 소설 전편에 퍼져 있습니다.

 

소설 제목 󰡔성욕󰡕은 1889년에 이탈리아 작가 단눈치오의 소설과 동일합니다. 단눈치오는 이 작품에서 파시스트의 광적인 성적 탐닉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도마조히즘은 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결국 음란한 섹스의 광란으로 연결되고 있지요. 그렇지만 옐리네크에게 성의 문제는 이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지배의 문제와 동일한 차원에서 이해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미가 사용하는 “성 정치 Sex-Politik”라는 말은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의 이론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닙니다. 옐리네크의 소설에서 다만 새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포르노 산업에서 여성을 경멸하는 내용 그리고 주인공인 공장주, 헤르만이 비디오를 보며 떨치려고 하는 일상적 권태감 등에 관한 묘사입니다.

줄거리는 상투적이고 별반 새로운 게 없습니다. 제지 공장주 헤르만은 알프스 산맥으로 가서 스키 여행을 즐깁니다.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는 더 이상 홍등가를 찾지 않는다. 창녀를 상대하는 대신에 헤르만은 자신 가까이에 있는 여성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이들에게 접근합니다. 그는 가정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명령하며 살아갑니다. 그의 아내 게르티는 집에 혼자 남아 잇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미는 자신이 늙어가는 데 대해 안타까워하며, 알코올을 애용합니다. 그미는 심리적으로 이제 장성한 아들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합니다. 아들은 권력과 성을 탐한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축소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들의 소개로 게르티는 젊은 대학생 미하엘을 만나 친분관계를 쌓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결국 성 관계로 이어집니다. 나이든 게르티는 자식이나 다름이 없는 어린 청년을 자신의 연인으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미하엘은 스포츠 (주로 스키)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를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게르티는 미하엘의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들에 의해 성폭력을 당합니다. 이는 어쩌면 미하엘의 사주에 의해서 발생했는지 모릅니다. 게르티는 자신이 성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낍니다. 다른 한편 남편 헤르만은 난봉꾼으로 살아온 삶을 청산하고, 아내 게르티와 함께 편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에 비하면 게르티는 남편과 젊은 애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 미하엘의 친구들에 의해서 성폭력까지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게르티는 미하엘에게 절교를 선언하지 않습니다. 게르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미하엘과의 관계는 그미로서는 삶의 유일한 돌파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미하엘은 나이든 여자, 그것도 친구의 어머니와 절교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게르티가 뒤늦게 임신했다는 사실입니다. 게르티는 남편, 미하엘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임신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미가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아들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아버지가 먹인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듭니다. 이때 게르티는 미하엘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목 졸라 죽입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그미는 어느 개울가에서 죽은 아이를 낳습니다.

 

친애하는 E, 모든 이야기는 시골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것입니다. 이는 플로베르 Flaubert의 소설, 󰡔보바리 부인󰡕 그리고 아르투르 슈니츨러 Arthur Schnitzler의 소설, 󰡔베르타 가를란 부인󰡕을 아이러니하게 원용한 것과 같습니다. 게르티가 결국 자식을 죽이는 장면은 참으로 끔찍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한편 여성에게 부여된 역할을 일탈하겠다는 결의를 암시해주기도 합니다. 그미는 한편으로는 성의 소비 사회에서 음탕한 삶을 즐기다가 희생당한다는 점에서 객체의 존재이며, 다른 한편 헤르만이 저지르는 남성적 폭력에 희생되는 주체의 존재입니다. 그미는 스스로 결혼이라는 미명 하에서 창녀처럼 살아가는 존재나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헤르만이라는 이름은 지극히 의도적입니다. 그의 이름은 “주인 (Herr) + 남자 (Mann)”의 합성어로서 남성적 마초의 전형을 암시합니다. 이로 미루어 우리는 남성 사회, 도착적인 남성의 성, 시각에 바탕을 둔 남성적 성욕만을 채워주는 포르노 산업 등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옐리네크는 사랑과 성에 관한 전통적인 논의를 받아들이며 동시에 파괴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반 포르노의 구상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남성 중심적으로 이데올로기화한 성적인 언어 표현에 대한 예리한 성찰 말입니다. 그밖에 작품 속에는 많은 작가의 작품들이 소설 속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Mathias Claudius, 괴테 Goethe, 실러 Schiller, 릴케 Rilke, 특히 횔덜린 Hölderlin 등의 작품 구절이 인용되고 있지요. 이러한 인용은 사랑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남성적 사고에 대한 패러디일 뿐, 상기한 작가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옐리네크는 예외적으로 D. H. 로렌스를 철저히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그미는 로렌스의 󰡔연인들󰡕을 인용하며,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남성적 성으로 신비화시킨 로렌스를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