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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란스마이어의 "키타하라 눈병" (1)

필자 (匹子) 2022. 6. 23. 10:03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Christoph Ransmayr, 1954 - )의 『키타하라 눈병』은 1995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자신을 “절반의 유목인”이라고 칭한 바 있는 소설가 란스마이어는 오스트리아와 아일랜드를 오가면서 거주하며 살았습니다. 작품 『키타라 눈병』은 유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는데, 그의 유년은 결코 밝고 찬란한 분위로 착색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금까지 란스마이아는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 기억과 망각 등의 주제를 즐겨 다루었습니다. 작품 『최후의 세계』는 흑해로 망명을 떠난 오비디우스의 마지막 삶을 조명하고 있는데, 장희권 교수의 번역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간행된 바 있습니다. 그의 소설 『빙하와 어둠의 공포』 또한 우리에게 소게된 바 있지요. 작가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되, 현재 현실과의 망각과 차단 등이 한 인간을 어느 정도로 편협하게 만들고 도덕적으로 파괴시키는가? 하는 문제를 천착하려고 했습니다.

 

모어는 트라운 호숫가의 가상적인 요양 도시입니다. 모어는 독일어로 “늪지”를 가리키는데, 그만큼 주위 환경이 음습하고 축축하며 폐허가 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대장장이로 일하며 살았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징집되어 수년에 걸쳐 북부 아프리카의 전선에서 싸웠습니다. 그의 아내는 폴란드 수용소애서 탈출한 여자와 함께 지하 벙커로 피신합니다. 그곳에서 그미는 베링을 출산합니다. 아기는 예상보다도 3주 빨리 세상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2년 후에 남편은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호적에는 베링이 그의 둘째 아들로 입적되어 있지만, 아들의 존재는 아버지에게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나이어린 베링은 거의 방치 당한 채 지내야 했습니다. 닭들과 함께 동물의 숙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베링이 맨 처음 배운 단어는 “꼬꼬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베링을 “새의 새끼”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얼마나 참담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부모의 수수방관, 가난 그리고 외로움 등은 주인공, 베링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전후에 도시 모어를 장악한 자들은 미군이었습니다. 미군은 이곳에 주둔하면서, 전쟁 포로들을 발전소라든가 공장 등에서 일하게 했으며, 철도 그리고 도로와 같은 사회 간접 자본을 확충하는 데 투입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과업은 “스텔라모어 플랜”이라고 칭해졌습니다. 문제는 도시 모어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필품을 조달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러한 플랜을 실행에 옮긴 미국의 장교는 엘리어트 소령이었습니다. 채석장은 실존했던 마우트하우젠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연상하기에 충분합니다. 장교는 이러한 일 외에도 채석장에 전사자 추모비를 건설하게 했습니다. 당시에 11972명의 사람들이 이곳의 독일군에 의해서 살해되었던 것입니다. 기념일에 모어 사람들은 수인의 옷을 입고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은 탈산업의 정책에 침울한 감정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재물을 약탈하는 강도로 활약하기도 합니다. 간간이 방화사건이 발발하기도 합니다. 강도들도 날뛰고 있었습니다. 힘센 남자들은 마을 주민들을 보호해준다는 미명 하에 그들로부터 안전 분담금을 갈취하곤 합니다. 엘리어트 소령이 이제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 미군정은 더 이상 오스트리아의 도시 모어를 더 이상 통치하지 않게 됩니다. 어느 날 베링은 무장 강도에 의해서 급습을 당합니다. 이때 집안으로 도망친 베링은 아버지가 숨겨 놓은 피스톨을 꺼내서 침입자를 쏴죽입니다. 이때부터 베링은 살인자라는 죄의식에 사로잡힙니다. 그의 아버지는 주위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채 멍하니 지냅니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삶은 전쟁에 관한 후유증으로 나락에 빠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베링의 어머니는 거의 광적으로 종교에 집착하다가, 정신착란 증세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전쟁의 끔찍한 경험이 가족 전체를 불행의 나락으로 빠지게 한 것이었습니다. 베링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타인에 대한 연민도 사랑도 깊이 느끼지 못하는 인간으로 자라납니다.

 

베링은 이때부터 부모님의 집에 머물면서, 가사를 돕습니다. 다행히 그는 도시 모어의 대장간에서 일자리 하나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장간의 노동을 통해서 자신에게 기계를 다루는 놀라운 솜씨가 있다는 것을 체득합니다. 베링이 23세가 되었을 때 채석장의 관리, 암브라스를 알게 됩니다. 이때 베링은 폐차장에 방치되어 있는 암브라스의 차를 고쳐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놀라운 자동차 수리 솜씨를 발휘하자, 암브라스는 베링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베링은 채석장에 있는 그의 빌라로 이주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그는 암브라스와 무서운 그의 개 한 마리와 함께 살게 뙨 것이었습니다. 암브라스의 집에는 수많은 레코드판이 가득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감지하게 됩니다. 그밖에 엘리어트 소령이 남겨둔 피스톨도 발견했는데, 베링은 암브라스의 보디가드 내지 운전사로 일합니다.

 

암브라스는 기이한 남자였습니다. 왕년에 사진사로 일하다가, 유대인 여자와 동거했는데, 이로 인하여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후유증으로 한쪽 팔을 거의 못 쓰는 지경이었습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한쪽 팔이 그냥 어깨에 매달려 있다고 했지요. 암브라스는 수용소에서 빠져나온 뒤에 실종된 연인을 찾아 헤맸는데, 끝내 찾지 못합니다. 그는 엘리어트 대령의 신임을 얻어서 채석장을 담당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직책 때문에 그는 이웃 주민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미군의 앞잡이로 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나중에 그의 보디가드인 베링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가끔 릴리라는 여인이 빌라로 찾아옵니다. 그미는 브라질 출신으로 국경 너머의 물건을 밀수하여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릴리는 미군들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미는 이곳 뿐 이니라, 인접 지역의 지리를 상세하게 알고 있으며, 석유라든가 식료품 등을 구하는 재주를 지니녔기 때문이었습니다. 릴리는 빈에 거주하던 나치의 딸이었습니다. 그미의 아버지는 먼 지역의 수용소의 감독관으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강제 수용소에서 출옥한 유대인들이 그미의 아버지에게 총격을 가했습니다. 중상을 입은 그미의 아버지는점령 군인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릴리와 그미의 어머니는 수년 동안 그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19년 후에 그미의 어머니는 사망했고, 릴리는 기상 탑 속으로 들어와서 그곳에서 노숙생활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그미는 베링과 함께 마을에서 유일하게 무기를 소지하는 사람입니다. 릴리는 우연히 산책하다가 무기고에서 망원경 달린 사수 총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일 년에 두 세 번 그미는 사냥을 떠나는데, 항상 사수 총을 소지했습니다. 그렇기 않을 경우 여성은 황량한 산속에서 사내들에 의해 겁탈당하거나 살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