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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호: (1) 미하엘 엔데의 유언

필자 (匹子) 2023. 11. 20. 18:55

 

돈으로 비싼 침대를 살 수 있으나, 단잠을 살 수는 없다.” (인도의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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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K, 오늘은 미하엘 엔데의 유언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엔데는 1995년에 사망하였습니다. 죽기 전에 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현대 사회는 돈이라는 질병에 걸려 있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Michael Ende: Der Spiegel im Spiegel. München 1990, 미하엘 엔데: 돈을 근원적으로 묻는다, 김형수 옮김. 실린 곳: 녹색평론, 2010년 9/10월호, 통권 114호.) 돈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참혹한 삶은 제3차 세계대전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엔데는 돈으로 인한 질병을 “우리 자손들을 파멸로 이끄는 시간 전쟁”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전쟁 극복의 유일한 길을 바로 문학에서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 흔히 말하기를 문학은 현실 도피 내지는 동화적 세계의 환상적 모험을 다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 사항에 대한 언급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가상적인 현실, 주어진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학적 현실을 통해서 미래의 찬란하거나 암울한 사실을 추론해낼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학이 지니는 예견의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돈은 재화의 대용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과거 사람들은 물물교환으로 재화를 교류하였습니다. 불편을 느낀 사람들은 화폐를 창안해내었습니다. 처음에 나타난 것은 금화 내지는 은화였습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유통하는 재화”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돈은 수많은 은행들에 의해서 유통되는 추상적인 액수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와 국가 그리고 세계은행에서 장악하고 있는 돈의 액수는 과히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경제의 본질적인 문제가 “지폐Geldscheine”의 발명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입니다. 미하엘 엔데는 바로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폐는 동전과는 달리, 물적 가치를 지닌 게 아니라, 가치를 상징하고 있을 뿐이지요. 과거에는 금이 유통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금과 은은 무한정하게 만들어낼 수 없는, 다시 말해서 “제한된 금속”입니다. 로마 제국의 멸망은 따지고 보면 무엇보다도 금의 고갈에 기인하는지 모릅니다. 금은 모두 페르시아 인들에게 지출되고, 페르시아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지만, 로마 제국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폐가 발명된 다음부터 사정은 달라집니다.

 

지폐가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아시는지요? 바로 중국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는 중국으로부터 인쇄된 지폐를 가지고 베네치아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은행이라는 것이 서서히 생겨났습니다. 지폐의 발명은 무엇을 초래하였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무한대의 이윤 추구의 열망을 품도록 자극했던 것입니다. 자고로 돈은 무조건 찍어내면 됩니다. 무한대로 발행한 화폐를 뒤쫓게 되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재화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사람들은 무한대로 발행되는 지폐의 재화를 따라잡기 위해서 밤낮으로 뛰어다니고, 허겁지겁 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돈 때문에 이웃을 살해하고, 돈 때문에 부모 형제를 배신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미하엘 엔데는 이 모든 불행이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 때문이며, 지폐의 발명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미하엘 엔데는 이에 대한 예를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찾습니다. 호반의 사람들은 지폐가 도입되기 전에는 평화로운 삶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매일 고기잡이의 성과는 달랐지만, 물고기를 잡아서 자급자족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폐가 이곳에 도입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서 큰 배를 샀고, 더욱더 효율이 높은 어로 기술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냉동 창고가 세워지고, 잡은 물고기를 멀리 운반할 수 있도록 트럭도 구매하였습니다. 높은 이자를 상환하기 위해서 어부들은 더욱 열심히 물고기를 잡았는데, 아뿔싸, 나중에는 바이칼 호수에 물고기의 씨가 마른 게 아니겠습니까? 어부들로서는 경쟁이 이기기 위해서는 더 빨리, 더 많이 고기를 잡아야 했습니다. 바이칼 호수에 고기가 사라지게 되었지만, 아무도 이에 대한 책임을 떠맡지 않았습니다. 친애하는 K, 바이칼 호수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들과 같습니다. 생존을 위하여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려다가 결국 지구의 자원은 고갈되어갑니다. 오늘날 동식물의 절멸 현상이라든가, 기후 변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까?

 

바이칼호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