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는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로
김해화
어린 동자승을 산 속 암자에 두고 스님이 양식을 구하려 내려왔다가
큰 눈에 길이 막혀 올라가지 못했답니다.
눈이 녹아 길이 열린 뒤에 서둘러 올라가보니
스님을 기다리던 모습 그대로 동자승은 죽어 있더랍니다.
그 무덤에서 피어났다는 슬픈 동자꽃 -
큰 눈처럼 갑자기 물려와서 길을 막아버린 IMF
길은 열렸지만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아비는 공사장을 떠돌고
어미는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로 세상 밖으로 날아갔답니다.
그래서 그래서 꽃 한 송이도 남지 않은 우리 세상
오늘은 그냥 비나 내립니다.
............
실린 곳: 김해화 시집, "꽃 편지", 삶이 보이는 창 2005, 118쪽.
동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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