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 22

만인을 위한 병원

1. 요즈음에는 그렇지 않지만, 병원이나 약국은 나에게 무척 생소하게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천혜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결벽증”인지는 몰라도 잔병이 났을 경우 나는 대체로 약을 멀리하고, 마치 병든 개처럼 며칠 드러누워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으니까 말입니다. 오늘 아들의 치료를 위해서 실로 오랜만에 대학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 입구에서 많은 직원들이 열 지어 병원 방문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내 눈에는 그것이 무척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그들이 병원 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한번도 고개 숙여 인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그들의 눈빛은 몇몇 표독스러운 교도소 경비자의 그것을 방불케 했습니다. 왜 병원은 들어오는 자를 반기고, 나가는 자를 ..

2 나의 글 2022.10.20

박설호: (2) 사랑은 이별을 연습하는 격정적 트레몰로. 슈테핀의 시

2 “축축해졌는가 하고 그가 처음 물었을 때” 너: 일단 작품 「축축해졌는가 하고 그가 처음 물었을 때」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편의상 제1행을 제목으로 붙여보았습니다. 기이하게도 슈테핀의 작품에는 제목이 없습니다. 나: 슈테핀의 시작품은 주로 브레히트의 소네트에 대한 답신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작품 발표를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축축해졌느냐 하고 그가 처음 물었을 때 그게 대체 뭐람? 하고 생각했어요. 한 번 살펴볼까? 하고 다시 물었을 때 매우 부끄러웠어요, 축축해졌으니까요. 맨 처음 나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는 물었지요, 감이 오는가? 하고. 김이 무엇인지 나는 몰랐답니다. 대답하지 않았어요, 감이 왔으니까요. 나이 어린 소녀처럼 그리 행동했어요. (정확히 4년 반 동안 한 남자와 그런 식으로 동거하..

21 독일시 2022.10.18

박설호: (1) 사랑은 이별을 연습하는 격정적 트레몰로. 슈테핀의 시

1. “즐기면서 함께 창조하기” 너: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1898 - 1956)의 연인이자 공동 작업자, 마르가레테 슈테핀 (1908 - 1941)의 시편을 다루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슈테핀의 시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나: 슈테핀이 남긴 시작품은 불과 15편에 불과합니다. 작품들은 1991년에 간행된 슈테핀의 작품집 『공자는 여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에 실려 있습니다. 시작품을 살펴봄으로써 시인의 삶과 문학을 논하고 싶습니다. 너: 작품들은 주로 사랑과 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흔히 성격은 성(性)의 격식(格式)이라고 하지요? 나: 그렇다고 무조건 성과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이 인간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만 말입니다. 너: 그런가요? 성격은 심리학에서 거..

21 독일시 2022.10.17

(명저 소개) 장영태 역: 횔덜린 서한집

2022몀 임다 출판사에서 횔덜린 서한집이 간행되었습니다. ............... 나의 관심은 1798년 이후의 편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횔덜린은 자신의 삶, 사회의 발전 그리고 역사적 진보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자신의 모든 노력이 더 이상의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당시의 문학적 풍토는 괴테와 실러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젊은 작가를 돕고 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비난하는 등 낭만주의의 다양한 흐름을 수용하지 못하고, 그것을 오로지 하나의 부정적인 성향으로 치부했습니다. 둘째로 유럽 중부의 정치적 사회적 풍토는 진부한 봉건주의를 탈피하지 못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조금씩 발전되던 초기 자본주의는..

1 알림 (명저) 2022.10.17

정신분열증 (조현병) 테스트

1.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도,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할 일이 많은데도 아무런 생각 없이 인터넷 서핑을 행한다. 가. 아니오. 나. 가끔. 다. 그렇다. 2. 과거에 비해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 같다. 가끔 내일 할 일을 망각하곤 한다. 누가 이를 알려주면 그제야 즉시 처리할 일을 떠올린다. 가. 아니오. 나. 가끔. 다. 그렇다. 3.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도 방안을 맴돌거나 TV를 켜고, 막연히 채널을 돌린다. 가. 아니오. 나. 가끔. 다. 그렇다. 4. 동물 학대의 장면을 바라보아도, 화가 나지 않는다. 영화의 끔찍한 장면이 그다지 잔인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가. 아니오. 나. 가끔. 다. 그렇다. 5. 자주 듣던 노래의 가사 구절을 흥얼거리는 습관이 있다. 노래의 내용을 잘 모..

5 사회심리론 2022.10.10

서로박: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

에우리피데스 (기원전 485 - 406년)의 비극 메데아는 기원전 430년경에 씌어졌다. 극작품은 메데아라는 어느 처녀에 관한 소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재에 의하면 메데아는 멀리서 온 낯선 용사를 사랑하여 그를 도와 온갖 모험과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고향으로 향한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버림받게 되어, 이에 대해 괴로워하다가, 잔인한 복수극을 감행한다. 대부분의 그리스 고대 비극이 그러하듯이 메데아 소재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령 아르고 호 선원들의 이야기는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 (Apollonios Rhodios)의 “아르고나오티카”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는 주제 상으로 영상학적 차원에서 그리고 사상적으로 나름대로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

37 고대 문헌 2022.10.07

서로박: 자먀찐의 우리들 (3)

12. D-503, 자신이 꼭두각시라는 것을 깨닫다: 갑자기 I-330과 만났던 오래된 집이 수상스럽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D-503은 어느 날 옷장에 몸을 숨겨서 그 집의 지하로 잠입해봅니다. 그 집의 지하는 알고 보니 지하에서 활동하는, 체제에 반대해서 싸우는 사람들의 은닉장소였습니다. I-330 역시 그들 단체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I-330은 일부러 과학자이자 로켓 기술자 D-503을 야권단체에 포섭하기 위하여 접근했을까요, 아니면 우연의 일치 때문이었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부차적이라고 느껴집니다. 주인공에게 중요한 것은 그미의 접근 의도가 아니라, 주어진 권력의 지형도이며, 그미의 구체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어느 날 I-330은 투명한 노란색 명주 원피스를 길친 채 당황함을 느끼..

31 동구러문헌 2022.10.07

서로박: 자먀찐의 우리들 (2)

6. 알프레트 쿠빈의 『세상의 다른 측면』: 자먀찐에게 영향을 끼친 직품은 아무래도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알프레트 쿠빈의 『세상의 다른 측면 Die andere Seite』일 것입니다. 쿠빈의 상상 소설은 1909년에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디스토피아의 이중적 가상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인 “나”는 친구의 부름을 받고 아내와 함께 동방의 사마르칸트라는 오지 (奥地)로 떠납니다. 작품은 기괴한 꿈의 세계, 파테라스 그리고 미국인 헤르쿨레스 벨이 설계한 질서와 행복의 파괴적인 제국을 서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두 국가의 묵시록적 투쟁은 결국 세계의 몰락으로 귀결됩니다. 이로써 세상은 광활하고도 황량한 폐허의 영역으로 귀결됩니다. 한마디로 알프레트 쿠빈은 데미우르고스를 자웅양성의 존재로 형상화..

31 동구러문헌 2022.10.07

서로박: 자먀찐의 우리들 (1)

1. 자먀찐의 디스토피아: 친애하는 S, 이제 전체주의 사회에 출현한 부정적 유토피아 내지 디스토피아의 작품들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디스토피아의 작품들은 19세기 말부터 서서히 태동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바로 이 시기에 거대한 국가의 체계가 완성되었으며, 거대한 국가적 권력의 힘이 개개인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흔히 디스토피아 문학으로 체계화되고 있지만, 디스토피아, 즉 부정적 유토피아 속에는 주체의 근본적인 자유에 해당하는 자기 보존의 욕망이 처음부터 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유토피아는 대아 유토피아로 명명될 수도 있습니다. 대아 유토피아는 개인의 최소한의 권리 내지 자유를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지에서 출발합니다. 그러한 한, 주체 유토피아..

31 동구러문헌 2022.10.07

서로박: 호프만슈탈의 그림자 없는 여인

오스트리아의 시인, 극작가, 평론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 (Hugo v. Hoffmannstahl, 1874 - 1929)의 오페라, 「그림자 없는 여인 (Die Frau ohne Schatten)」은 1911년에서 1914년 사이에 탈고되었다. 리햐르트 슈트라우스는 여기다 곡을 붙였으며, 1919년 10월 10일 빈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수년에 걸쳐 작가는 동화의 소재로 계속 작업하여 1919년에 비로소 한 편의 오페라 텍스트를 완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림자 없는 여인은 유령 왕의 딸이다. 유령 왕은 결코 죽지 않는 존재들이 거주하는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그미가 한 마리의 하얀 가잴 영양으로 변신했을 때, 남동쪽 섬나라의 황제는 그미를 체포하였다. 그미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

43 20전독문헌 2022.10.02